업계에서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 다행스럽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분명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간과 계기가 있었지만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이다.
◇ 무너진 빅 3
이번 실적 쇼크로 조선 빅 3의 위상은 무너질대로 무너졌다. 한때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생산성을 자랑했던 국내 조선 빅 3다. 하지만 누적된 해양 플랜트 부실로 수조원의 손실을 입으면서 과거의 명성은 이제 무색해졌다. 소는 소대로 잃고 외양간은 외양간대로 완전히 망가진 셈이다.
조선 빅 3가 이처럼 무너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부실 발생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과거 상선 건조 당시의 방법을 해양 플랜트에도 적용한 것이 낭패를 본 원인으로 꼽힌다. 해양 플랜트는 상선과 건조 과정 및 프로세스가 다르다. 상선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
하지만 조선 빅 3는 해양 플랜트를 건조해 본 경험이 부족했다. 상선 건조시의 원가 예측과 비용 산정 방법으로 해양플랜트를 가늠했다. 그러다보니 늘어나는 부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공사 기간은 지연됐고 설계 변경에 따른 비용은 늘어만 갔다. 이에 따라 쌓아야 할 공사손실충당금도 더욱 커져갔다. 결국 조선 빅 3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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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빅3는 해양플랜트 건조시 원가 예측과 비용 산정 시스템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건조에 들어갔다. 해양 플랜트 경험 부족으로 상선 건조때의 시스템을 해양플랜트에도 적용한 것이 패착이라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까지 겹치며 국내 조선 빅 3는 대규모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
도덕적 해이도 문제였다. 부실이 늘어갔지만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임시 방편에만 급급했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부실을 실적에 반영하지 않고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수익을 낸 것처럼 발표 했지만 실제로는 곪아 터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에는 스스로의 부실을 철저히 숨겼다.
경영진들은 부실을 알고서도 자기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했다. 작년 대우조선해양의 등기 이사와 감사 등 8명은 평균 2억14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고재호 전 사장의 경우 급여 5억2800만원에 상여금 3억6100만원 등 총 8억8900만원을 받았다. 대우조선해양의 올해 손실액은 3조원이 넘는다.
작년 3조2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은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이재성 전 현대중공업 회장과 김외현 전 현대중공업 사장에게 퇴직금을 포함해 각각 36억9900만원과 17억9300만원을 지급했다. 올해 1조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은 삼성중공업의 경우 작년 박대영 사장에게 10억4700만원의 연봉을 지급했다. 결국 조선 빅 3의 붕괴는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 무리한 수주가 나은 참사였다.
◇ 메스 제대로 댄다
이제 남은 것은 수습이다. 실적 쇼크 이후 제대로 된 수습을 하지 못한다면 제2, 제 3의 실적 쇼크를 맞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번 기회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선 빅 3는 이미 고강도 구조조정을 예고한 상태다. 대규모 손실 이후에 이뤄지는 구조조정인 만큼 그 강도는 어느 때보다도 강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작년 미리 매를 맞았던 현대중공업은 현재까지도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임원의 31%를 감축하고 과장급 이상에 대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또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의 영업조직을 통합하고 사업본부 아래 부문단위를 줄였다. 플랜트부문은 해양부문으로 통합하는 등 조직 슬림화를 진행했다. 여기에 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그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던 자원개발사업도 정리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대기업금융, 현대기술투자, 현대선물 등 금융관련 3개사에 대한 재편 작업도 진행했다. 최근에는 하이투자증권을 통해 계열사인 현대기업금융이 보유한 현대선물 주식 300만주를 취득하기로 했다. 하이투자증권을 중심으로 한 금융 사업 재편의 일환이다. 이를 통해 재무구조개선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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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조선 빅 3중 해양 플랜트 손실을 가장 먼저 실적에 반영한 현대중공업은 지금까지도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인력 감축은 물론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이 시행되고 있다. 나머지 업체들도 올해 현대중공업과 같은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해 전반적인 사업 재편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
삼성중공업은 이미 작년에 신규 투자를 중단했다. 해양플랜트 부문의 부실이 점점 가시화되면서 투자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대규모 손실을 입은 만큼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할 계획이다. 우선 책임경영 차원에서 임원수를 감축하고 유사기능 통폐합 등을 통해 중복기능을 제거하기로 했다. 또 조직을 개편함과 동시에 생산과 직결되지 않는 비효율 자산을 매각키로 했다.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조선 빅 3 중 가장 많은 분기 손실을 기록한 데다, 부실 은폐 의혹까지 받고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강도는 조선 빅 3 중 가장 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새롭게 정성립 사장 체제가 들어선 만큼 회사 전반에 대한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대우조선해양은 풍력사업 철수는 물론 최근에는 계열사 정리에 나서는 등 비핵심 자산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정성립 사장도 조선을 제외한 비핵심 사업은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산업은행의 실사가 끝나는대로 대우조선해양은 인력 감축, 사업재편, 재무구조 개선 등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 근본적인 체질 개선 시급
문제는 조선 빅 3가 계획한대로 구조조정을 통해 환골탈태가 가능할 것인가다. 조선 업황 침체기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현재 조선 빅 3에게는 현상 유지도 버거운 상태다. 여전히 선박 발주 규모는 저조한 데다 중국과 일본 조선업체들의 추격이 거세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조선 빅 3가 체질개선을 이뤄야한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실적 쇼크의 주범인 해양 부문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해양 플랜트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기자재 국산화가 선행돼야 한다. 그동안 조선 빅 3의 해양 플랜트 건조는 대부분 해외 기술과 기자재에만 의존해왔다. 또 인력도 해양 플랜트 전문 인력이 부족해 큰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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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에서는 조선 빅 3가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기본적인 체질개선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내부 감사 기능을 강화해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이에 따라 비핵심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이를 해양 부문에 재투자해기초 체력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양 부문의 손실이 많이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시공을 제외한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최근 일부 업체들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플랜을 통해 해양 관련 기술과 기자재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회계와 감사 기능의 강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불거진 실적 쇼크의 이면에는 조선 빅 3 내부의 감시와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 통합·재편과 더불어 감사 기능의 강화가 절실하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한 대형 조선업체 고위 관계자는 "이번 실적 쇼크의 가장 큰 책임은 그동안 우리가 현상을 너무 안일하게 보고 쉽게 대처해왔던 것에 있다고 본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부적으로도 반성의 목소리가 많았다. 다시 시작하자는 분위기가 강한 만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비롯해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 조선업체 고위 관계자는 "이번 실적 쇼크의 가장 큰 책임은 그동안 우리가 현상을 너무 안일하게 보고 쉽게 대처해왔던 것에 있다고 본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부적으로도 반성의 목소리가 많았다. 다시 시작하자는 분위기가 강한 만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비롯해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