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구글 갑질방지법'을 통과시킨 정치권이 국내 빅테크 기업에 칼끝을 겨누고 있다. 빅테크 기업 중 카카오를 정조준했다. 카카오는 내달 국정감사 역대 최초로 4곳의 국회 상임위원회로부터 '핀셋 감사'를 받을 전망이다.
사실 카카오가 골목상권 침해 이슈로 국정감사에서 타겟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다음과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운 이후 거의 매년 국회에 나와 상생을 약속했을 정도다. 2018년에는 창업주 김범수 의장이 직접 출석하기도 했다.
이번엔 무게가 다르다. 그간 빅테크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여권이 칼을 쥔 주인공이어서다. 택시요금 상한선과 데이터 독점에 대한 실질적인 법안도 마련했다.
국회의 '카카오 때리기'
카카오는 지난 14일 상생안을 발표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있는 일부 사업을 과감히 접고 내수보다 해외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3000억원 상당의 상생 기금을 조성, 중소 협력사들을 위해 사용하겠단 내용도 포함시켰다.
카카오가 외부 압박에 즉각적인 상생안으로 대응한 건 이번이 최초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올 때마다 골목상권을 이유로 한 정치권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 "사회가 강력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며 대안을 먼저 제시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카카오에게 이번 사안이 무겁게 다가오고 있단 의미다.
대부분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빅테크 기업도 국감 시즌 대표이사(CEO)나 주요 임원이 소환돼 여야 의원들로부터 호통을 받고 변화를 약속한다. 다만 이런 '사후수정'은 단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카카오 역시 2015년과 2017년, 2018년 세 차례 국감장에서 택시 등 골목상권 침해 소지 사업을 시정하겠다고 다짐했으나, 크게 돈이 되는 사업에서 손을 뗀 이력은 없다.
그랬던 카카오가 국감 전 상생안을 다급히 꺼낸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이슈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빅테크에 우호적이었던 여권이 이번 이슈를 좌우하고 있다는 점이 지금까지의 사정과는 다르다. 21대 국회는 빅테크 기업 CEO를 소환하지 않는 등 유례없는 모습을 보여서다.
혁신의 상징인 카카오가 단번에 '탐욕의 상징'이 된 데는 여권의 프레이밍이 작용했다. 금융당국의 카카오페이 제재가 거의 확실시된 시점인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과 이동주 의원은 카카오를 저격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당정 토론회에서 특정 기업의 사업 구조가 집중 타겟이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공룡 카카오의 문어발 확장: 플랫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을 주제로 한 이 토론회에서 일부 여권 인사들은 "카카오가 독점과 문어발 확장의 대명사가 됐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의 조속한 처리도 성토했다. 이 토론회가 열린 날부터 불공정 거래 당사자로 네이버를 배제한 카카오에게만 눈총이 쏠렸다.
카카오의 손발을 묶는 실질적인 법안도 잇달아 발의되고 있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일정 규모 이상 전기통신사업자는 이용자가 생성한 데이터를 쉽게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또 14일 이용호 의원은 플랫폼 사업자가 택시호출중개요금을 임의대로 인상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택시호출비 상한법'을 대표 발의했다.
민심 잃은 K-방역, '공정경제'로 뒤집기
국회는 왜 카카오에 등을 돌렸을까? 전반적으로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고려한 계산이 깔린 행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달 말 구글 갑질방지법이 뜨거운 관심 속에 통과된 직후 '국내 빅테크 기업의 갑질에도 대응하라'는 각계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이 거세지자 카카오를 주 타겟으로 전환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빅테크 생태계 '공정경제'는 장기간의 K-방역으로 중소상공인의 신뢰을 잃은 여당이 다시 민심을 붙잡을 수 있는 테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8세 이상 국민 500명 중 절반 이상인 51%는 정부와 여당의 빅테크 규제 강화를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며 찬성의 의견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소상공인의 반발이 거센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저지하고 지지층을 확보한 이력이 있다. 지난해 초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민족을 인수해 점유율 90%를 확보하려 했을 때다. 위원회는 합병을 저지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엄격한 심사를 촉구했고, 실제 공정위는 요기요 매각을 전제한 '조건부 합병안' 카드를 꺼냈다.
이번 카카오 사태 역시 택시·대리운전업계가 불을 댕겼다. 장기간 카카오모빌리티와 대치한 중소택시 업계는 카카오가 논의없이 일반 호출에도 유료화 상품을 도입하는 등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공정위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사 가맹택시인 카카오T블루에 콜을 몰아줬는지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대리운전 단체인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도 카카오가 전화콜 방식의 대리운전 사업에 진출한 것을 규탄하며, 철수하거나 축소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카카오는 상생안을 통해 대리기사에게 돌아가는 수수료 체계를 개편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가 대리운전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어 최악의 경우 사업 전면 철수도 예상된다.
올해 국감에서 카카오는 무려 4곳 상임위에서 질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무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골목상권 침해 및 독과점 이슈로, 횐경노동위원회는 직장 내 괴롭힘 및 근로감독 결과 문제로, 국토교통위원회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독과점 및 수수료 인상 문제로 카카오 관계자를 국감장에 세울 예정이다.
김범수 의장의 국감 출석 가능성도 있다. 김 의장은 지난 2017년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국감 출석 명령을 받았으나, 해외 출장으로 이에 불응해 상임위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이듬해인 2018년 국감에는 최초로 증인으로 출석해 "카카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대해 큰 기업으로서 배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