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M&A)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졌는데요. 올해 안에 수년간 부재했던 삼성전자의 '빅딜'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에서는 인수 대상이 누가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죠.
'대어' 노키아 노릴까
특히 최근에는 블룸버그 통신이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핀란드 통신장비 제조사 노키아의 모바일 네트워크 사업부 인수 희망자 중 삼성전자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하며 관심을 끌었는데요. 노키아는 전 세계 통신사에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입니다. 기존 주력 사업이었던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애플 등에 밀린 후, 이동통신 네트워크 장비 및 솔루션 서비스 사업을 주로 영위하고 있죠.
하지만 최근 중국 화웨이가 점유율을 확대하고, 유럽 통신사의 신규 장비 도입이 지연되면서 노키아는 시장에서 다소 고전하고 있는데요.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통신장비 시장의 1위는 화웨이(점유율 31.3%)입니다. 스웨덴 통신장비 업체인 에릭슨은 점유율 24.3%로 2위에 올랐고요. 노키아는 점유율 19.5%로 3위에 머물렀습니다.
이에 노키아는 새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모바일 네트워크 사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블룸버그 보도 이후 노키아는 "현재 관련 프로젝트가 없다"고 부인했지만, 업계에서는 노키아의 경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매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업계에서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눈독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노키아의 사업을 흡수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려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작년 세계 통신 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6.1%의 점유율로 5위에 올라있습니다. 만약 삼성전자가 노키아의 모바일 네트워크 사업부를 흡수하게 되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위 에릭슨보다 높은 25.6%가 됩니다. 노키아의 점유율을 온전히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단숨에 시장 선두 업체들과 겨뤄볼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는 것이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첫 경영 행보로 삼성리서치를 찾아 6G(6세대)를 포함한 차세대 통신 기술 동향 및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M&A 물망에 올렸다는 주장에 근거를 더합니다. 6G는 인공지능(AI)을 내재화해 더 높은 에너지 효율과 더 넓은 네트워크 범위를 제공하는 기술입니다. AI뿐 아니라 자율주행차, 로봇, 확장현실(XR) 등 첨단 기술을 일상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기반 기술로 꼽히죠.
이에 당시 이 회장은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있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선제적 R&D와 흔들림 없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과감한 도전을 통해 기술을 선점하고 미래를 준비할 것을 당부한 것인데요. 삼성전자가 노키아 관련 논평을 거부했음에도, 업계에서는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인텔까지 손 뻗치나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인텔이 매각을 추진하는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부문 '알테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현재 인텔은 막대한 설비투자 부담으로 실적이 악화되며 경영 위기에 직면한 상태인데요. 이에 인텔은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고 자본 지출을 개편하는 계획을 이달 중 이사회에 제시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죠.
업계에서는 여러 방안 중 알테라 매각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는데요. 인텔은 2015년 알테라를 167억 달러(약 22조원)에 인수한 후 올해 1분기 이를 별도 자회사로 분사한 바 있습니다. 당초 인텔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알테라 지분 일부만을 매각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전체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 이 개편안에는 파운드리 분리·매각이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지난 2021년 파운드리 시장에 다시 발을 들인 인텔은 삼성전자를 제치고 '파운드리 2위'에 오르겠다고 공언해 왔습니다. 하지만 손실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탈출구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죠.
인텔의 개편안을 두고 아직 소문은 분분하지만, 두 분야 모두 삼성전자가 관심을 보일 만한 사업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의 견고한 1위인 대만 TSMC를 추격하고 있고 있지만, 점유율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인텔이 현재 미국 현지에 짓고 있는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 매물로 나올 경우,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인수를 고민해 볼 수 있겠죠.
FPGA의 경우 파운드리·네트워크·전장(자동차 전자·전기부품) 등 삼성전자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입니다. FPGA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달리 제조가 완료된 뒤에도 업데이트가 가능한 시스템 반도체인데요. AI, 로봇, 방산, 자율주행차, 네트워크 장비 분야 등에서 활용도가 높죠.
올해 M&A 가시화?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하만을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눈에 띄는 M&A 행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이토록 잠재적 매수 후보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삼성전자가 올해 대형 M&A를 예고한 상태기 때문인데요.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주주들이 기대하는 큰 M&A는 아직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200개 이상 스타트업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며 "대규모 M&A는 현재 많은 상황 진척돼 있고 조만간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고요.
앞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도 한 부회장은 "M&A 환경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없지만, 기존 사업 강화와 미래 성장 동력 발굴 차원에서 M&A 대상 회사를 지속 검토하고 있다"며 "삼성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대형 M&A가 올해는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이재용 회장의 발언도 눈길을 끕니다. 이 회장은 최근 프랑스 파리 출장에서 귀국한 뒤 기자들과 만나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많은 분과 (비즈니스 미팅을) 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요. 그러면서 그 성과를 "실적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자신했습니다.
보통 귀국길에서 출장 관련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던 이 회장이 이처럼 언급한 것은 다소 이례적인데요. 조만간 시장이 기대하던 대형 M&A를 통해 출장의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죠.
두둑한 곳간에 기대감↑
두둑한 곳간도 M&A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삼성전자 반기보고서를 보면,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가 단기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현금 등 자산은 100조7655억원 수준입니다. 현금 등 자산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 단기상각후원가금융자산 등을 포함하는데요. 2023년 1분기 이후 5개 분기만에 1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같은 기간 차입금도 16조4814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입니다. 차입금비율도 4% 수준에 불과하죠. 이에 따라 순현금도 84조3141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3% 늘어났습니다. 이는 빌린 돈을 제외하고도 곳간에 80조원 이상이 쌓여있다는 뜻인데요. 삼성전자의 순현금 규모는 지난해 4분기(79조7212억원) 70조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올 1분기(81조8886억원) 이후로 회복세에 접어들었죠.
반도체 실적 개선에 따라 삼성전자 실적 우상향 흐름이 올해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것도 긍정적입니다. 삼성전자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7조499억원으로, 작년 상반기(1조3087억원)에 비해 13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45조983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 늘었고, 이에 따라 영업이익률 또한 1.1%에서 11.7%로 10.6%p(포인트) 성장했죠.
그간 부진했던 실적이 완연한 성장세에 올라탄 만큼, 삼성전자는 M&A 등을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커진 관심 속 베일을 벗을 삼성전자의 빅딜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