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외환위기(IMF)를 겪은 우리나라는 경제가 어려울 때면 이 때를 회상하게 됩니다. 하나의 기업이 아닌 핵심 산업군을 '통'으로 구조조정을 해온 뼈아픈 기억이 있는데요. 우리나라만큼 구조조정이라는 피바람을 주기적으로 맞은 나라는 드물죠.
최근에도 구조조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산업군이 있습니다. 석유·화학 업종인데요. 아직 구체화된 건 없지만 관련법 제정, 민간 기업들의 핵심 자산 매각 가능성이 서서히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본격화 하기 전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짚어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그간 '국가' 주도로 산업군 재편이 이뤄졌는데 정부 개입은 최소화하고 민간 중심으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잊을만 하면 몰아치는 구조조정
우리나라 경제가 구조조정의 쓴맛을 본건 IMF 때입니다. 이전에도 구조조정이 있기는 했지만, 그 규모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죠.
IMF 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기업은 물론 국가 금고까지 바닥나면서 나라밖에서 돈을 빌려왔는데, 조건 중 하나가 대규모 구조조정이었거든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 체질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당시 수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 살생부에 이름을 올렸죠. 전자, 철강, 조선, 금융 등 대부분의 산업권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하나의 기업으로 흡수합병 되거나 아예 문을 닫는 곳도 생겨났습니다.
여파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집니다. IMF 당시 진행했던 구조조정 이후 전세계 산업 지형 변화로 인해 추가 구조조정이 필요했거든요. 특히 한때 우리나라 산업의 주축이었지만 경쟁력을 좀처럼 갖추지 못했던 조선업, 중공업, 섬유 등 경공업 등이 구조조정의 여파에 휩쓸렸고요. 이후 섬유업과 같은 제조업은 더는 한국 산업의 '핵심'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졌죠.
이후 10년이 지난 2010년대 이후 다시 구조조정의 큰 기류가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조선업과 해운업에 집중됐는데요. 2000년대 초반 과잉성장 시기를 보낸 조선 및 해운업이 투자를 대폭 확대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재무구조가 악화, 그대로 독이 됐기 때문입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중국 기업들의 저가 물량 공세도 쏟아졌고요.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아직도 친숙한 이름의 기업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10년여 만인 지금 '산업군'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조정이 또 시작될 모양샙니다. 이번엔 석유·화학 업종입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더해 이번에도 중국발 저가 물량공세의 직격탄을 맞아서죠. 석유·화학업종은 이제 밑빠진 독처럼 비용만 잡아먹는 하마가 됐습니다.
정부 역시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관련 부처에서는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죠. 민간 기업들 역시 핵심 자산을 매각하면서 구조조정 채비에 나선 모습입니다.
'정부' 주도했던 과거의 구조조정
과거 구조조정을 주도한 건 국가였습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나 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해 구조조정 명단에 오른 기업들의 지분을 사들이고 회사를 정상화 시키는 방안을 추진한거죠.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건설, LG카드, 한진해운, 현대상선, STX조선 등이 있습니다. 이들 기업 모두 정부가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지분을 사들여 정상화 한 뒤 민간기업에 합병시키는 방식을 통해 재기에 나서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됐습니다. 현재 대우건설은 중흥건설을 대주주로 두고 있고요. LG카드는 신한카드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일부 사업 부분은 HMM으로 넘어갔습니다. STX조선해양은 일부 사업은 청산, 나머지는 HD현대로 귀속됐죠.
이러한 구조조정은 사실상 '나랏돈'을 들여 민간기업을 정상화시키는 형태입니다. 산업은행이나 자산관리공사 모두 공적금융기관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국가는 왜 이런 구조조정에 직접 나서는 걸까요. 이유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먼저 하나의 산업군이 완전하게 주저앉도록 방치하면 국가적 경제에 미치는 손실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조선업의 경우 거제, 울산 등 일부 지역을 먹여살리는 핵심 산업이었죠. 조선업이 흔들릴 때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망하게 내버려 둔다면 지역사회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겁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앉아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거죠.
아울러 매우 빠른 속도로 구조조정을 마무리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나랏돈이 들어가는 만큼 정부정책 방향에 따라 적극적으로 자구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거든요.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한데 당장의 지분 가치 하락 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욱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거죠.
더이상 '나랏돈' 안된다…민간 주도 목소리도
하지만 국가 주도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왜 국민의 세금을 들여 민간 기업을 살리는데 쓰냐는 게 대표적이죠. 게다가 헌법에서도 우리나라의 경제 체계에 대해 '자유시장경제'라고 명시하고 있어 국가 개입이 올바르지 않다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실제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국가 주도 구조조정 사례는 드문 편 입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최소한의 '틀'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시장 흐름에 맡기는 편입니다. 실제 국가 주도 구조조정이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처럼 정부의 힘이 막강한 경우죠.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정부 개입시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을 양산시켜 경제 전체가 활기를 띄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써야하는 부작용 등이 있습니다.
이번에 진행되는 석유·화학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은 이 같은 부작용등을 고려해 정부 보다는 민간이 중심이 돼 구조조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집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산업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생하는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죠.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석유·화학업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방안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과거처럼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부분은 최소화 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논의 되는 내용 중에는 세제 혜택 확대, 각종 비용 감면 등을 통해 부담을 줄여주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정부가 합의점을 도출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방향이 될 것이란 설명입니다.
구조조정은 당장은 뼈아픈 현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활력을 다시 불어넣어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조선업처럼요. 석유·화학 업종 역시 이번 위기를 잘 넘어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