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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HS효성·코오롱, 10년 특허 전쟁 접은 속내

  • 2026.02.25(수) 06:50

10년 넘게 이어진 해묵은 특허 분쟁 마침표
수백억 소송비·중국 추격에 위기감 공유
실리 택한 리더십…소송 리스크 털고 체질 개선

그래픽=비즈워치

살다 보면 이게 대체 언제 끝날까 싶은 지루한 싸움들이 있습니다. 층간소음이나 담벼락 경계를 두고 벌이는 이웃 간의 분쟁처럼 말이죠. 처음엔 사소한 오해나 작은 욕심으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조차 잊은 채 오직 상대방에게 지지 않겠다는 오기만 남기도 합니다. 국내 섬유·소재 산업의 두 거인, HS효성과 코오롱의 관계가 딱 이랬습니다.

타이어 속에 들어가는 실 한 가닥의 주도권을 잡겠다고 지난 10년간 법정을 안방처럼 드나들던 이들이 지난 13일 돌연 총구를 내렸습니다. 양사는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협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죠. 대승적 결단이라는 포장지를 한꺼풀 벗겨보니 그 속엔 변호사비로만 수백억원을 썼다는 뒤늦은 탄식과 이러다 중국에 다 먹힌다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슈퍼 섬유'에서 시작된 10년의 평행선

이미지=아이클릭아트

갈등의 씨앗은 2015년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등록한 '하이브리드 타이어코드(HTC)' 특허였습니다. HTC는 전기차와 SUV처럼 무겁고 힘 좋은 차들이 도로를 달릴 때 타이어가 변형되지 않게 버텨주는 핵심 보강재입니다. 아라미드와 나일론을 결합한 이 고난도 기술을 두고 코오롱은 "독자적 성과"라 주장했고 효성은 "이미 누구나 아는 기술"이라며 특허 무효를 주장해 왔습니다.

본격적인 소송전은 2022년 코오롱이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터져 나왔습니다. 양사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도합 수백억원의 소송 비용을 쏟아붓는 소모전을 이어왔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법정 공방 속에 두 회사가 쏟아부은 소송비용만 도합 수백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입니다. 그러다 지난해 한국 특허법원이 효성의 손을 들어주며 판세가 요동쳤습니다. 법원이 코오롱의 특허를 무효라고 판결하며 효성이 승기를 잡은 것입니다.

그러나 효성은 샴페인을 터뜨리는 대신 협상 테이블을 택했는데요. 법적 승리가 반드시 비즈니스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코오롱이 대법원에 상고할 경우 확정판결까지 또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데다 본궤도에 오른 미국 소송의 결과 또한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한국에서 이겨도 미국에서 지면 수출길이 막히고 양국에서 모두 이기더라도 그 무렵엔 시장 주도권을 이미 중국에 뺏긴 뒤일 수 있다는 냉정한 판단이 선 것입니다. 결국 법적 완승을 기다리기엔 시간과 비용이라는 매몰원가가 너무 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사이…중국만 웃었다"

허성(왼쪽)코오롱인더스트리 대표와 성낙양 HS효성첨단소재 대표가 지난 13일 특허 분쟁 종료 협약을 맺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HS효성

또 명분보다 실리가 중요해진 건 양사의 실적표가 그리 밝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최근 석유수지와 필름 등 전통적 주력 사업의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30% 가까이 하락하며 수익성 개선이 시급한 과제가 된 상황에서 기약 없는 소송비 지출은 경영진에게 커다란 비용 리스크였습니다.

HS효성첨단소재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전기차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로 인해 주력인 타이어코드 판매가 둔화됐고 이익 체력도 예전만 못합니다. 

이들이 수백억원의 소송 비용을 쓰며 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사이 중국의 '싱다(Xingda)' 등 경쟁사들은 그 공백을 틈타 글로벌 점유율을 무섭게 잠식했습니다. 국내 기업 간의 소모전이 중국 기업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뼈아픈 현실이 양사를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결정적 도화선이 됐습니다.

이번 합의는 양사의 새로운 리더십이 보여준 실리 경영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2024년 독립 지주사로 공식 출범하며 홀로서기를 시작한 HS효성의 조현상 부회장은 과거의 감정적 앙금보다는 실질적인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에 뒀습니다. 신설 지주의 안정적 연착륙을 위해서는 발목을 잡던 낡은 소송부터 정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허성 대표 또한 취임 이후 스페셜티 소재 중심의 사업 재편을 위해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양사는 이제 특허의 선을 긋는 대신 차세대 보강재 시장의 기술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협력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0년간 갈아온 칼날을 거두고 실을 꿰기로 한 두 회사의 앞으로의 10년은 어떨까요. 이들의 악수가 위기 앞의 일시적 휴전일지 아니면 진정한 K-소재 연합의 탄생일지는 향후 이들이 내놓을 실질적인 협력 결과물이 증명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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