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좋은 직장은 굳이 찾아나서지 않아도 입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꼼꼼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최고의 직장을 찾아주는 곳이 있다. 매년 경제전문 잡지 포춘지는 일하기 좋은 직장(GWP:Great Work Place)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최고의 직장'이란 책도 내놨다. 미국 직장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 역시 또 다른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와 손잡고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매년 발표한다.
이와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좋은 직장에 대한 평가가 활발하지 않다. 한국 기업문화가 여전히 경직되고 엇비슷한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GWP가 존재하고 매년 100대 기업을 선정하지만 아직까지 모집단 부족과 기업정서를 고려해 순위를 매겨 발표하지 않고 있다.
◇ 구글·SAS, GWP 상위권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일하기 좋은 곳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 분야에서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로버트 레버링 박사는 1980년대 초 미국 경제불황 속에서 안정적인 이익을 내는 기업의 특징을 찾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상사에 대한 신뢰와 업무에 대한 자부심, 즐겁게 일하는 동료애가 공통요소라고 결론지었다.
이후 기업의 GWP 수준을 진단하는 도구로 신뢰경영지수가 개발됐고 1998년부터는 포춘과 함께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발표하고 있다. 이후 포춘이 매년 선정하는 100대 기업의 경영철학과 관리 방식은 많은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GWP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았다.
GWP는 개인보다 조직 단위의 건강한 일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전체 조직구성원 중 자신의 회사를 일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직원의 비중을 평가하고 있다. 직업훈련이나 보상 외에도 직장 분위기와 자부심, 소통, 상사에 대한 평가 등을 고르게 반영한다.
구글이나 SAS,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은 GWP 조사에서 매년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면서 이미 꿈의 직장으로 정평이 나있다. GWP 기업들은 100대 기업에 속하지 않은 기업들보다 재무성과는 물론 조직의 효율성이나 고객 만족도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글래스도어도 6년째 일하기 좋은 최고의 기업을 발표하고 있다. 오로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라 이뤄지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반응이 폭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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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GWP 걸음마 단계
국내에도 GWP가 있을까. 그렇다. 평가 역사는 13년 정도로 짧지만 매년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정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GWP와 달리 1등부터 100등까지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순위를 매기게 되면 참여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나타난다. GWP 중국 역시 비슷한 이유로 순위를 매기지 않고 있다. 대신 일정 점수를 넘은 기업들을 묶어 좋은 기업으로 발표한다.
참여기업도 아직은 현저히 적다. GWP는 기업에서 자발적인 신청을 받아 심사를 거치는데 내부 구성원들이 직접 조사에 참여해야 하는 만큼 전사적인 차원의 결정이 필요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수백개 기업들이 신청하기 때문에 100위권 진입이 의미가 있지만 한국은 신청기업 수 자체가 적다. 이에 따라 2012년에는 47개사, 지난해는 52개사만 선정됐다. 응모하는 모집단이 작다보니 100대 기업이 추려지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
이는 그만큼 한국의 기업문화가 경직돼 있음을 보여준다. 자사의 매력적인 기업문화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이 많지 않고 익히 좋은 기업문화로 소문난 정보기술(IT) 기업들도 리스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대기업과 금융사, 공기업 등 그나마 복지수준이 높은 기업들이 주로 참여한다.
하지만 기업문화를 중시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신청 기업도 증가하면서 과거보다 기업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선정 리스트가 축적되면서 미국의 구글이나 SAS처럼 지속적으로 상위권에 드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해상과 신한카드, 부산은행, 신한은행, 롯대백화점 등은 수년연속 대상을 차지했다.
홍석현 GWP 코리아 팀장은 "한국 등 아시아 기업들은 조직구조가 수직적이다보니 아직은 참여도가 낮은 편"이라며 "하지만 기업문화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머지 않은 장래에 선진국과 같은 리스트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