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조직문화 쇄신에 잰걸음을 하고 있다. 전일 자율복장제 도입에 이어 최근에는 이른 퇴근을 위한 독려에도 나섰다.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조직으로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금감원으로서는 급진적인 변화다.
다만 이미 금융권 전반에서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조직내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늘어나면서 일과 삶이 양립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거스르기 어려운 시류가 됐다. 이에 금감원도 최근 들어 부쩍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이른 퇴근·티셔츠가 '기본값'…이복현 원장, 솔선수범
금감원은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마다 조기 퇴근하는 기존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제도를 지난달 28일부터 개편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필요 근무시간을 충족한 직원은 금요일 오후 2시간 빨리 퇴근할 수 있게 한 이 제도는 원래 품의를 올려서 결재를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는 신청이 '기본값'이 됐다. 조건을 충족한 직원은 금요일 조기 퇴근이 시스템상 자동으로 신청돼, 일을 더 하려면 오히려 직접 이를 취소해야 한다. 금감원은 안내방송으로도 이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직원들의 이른 퇴근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기 퇴근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절차상 편의성을 높인 것"이라며 "특정 기간 일이 몰린 부서들은 일부 취소를 할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워라밸 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9월에는 전일 자율복장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 역시 매주 금요일에는 복장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옷을 입는 '캐주얼 프라이데이'를 모든 근무일로 확대한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청바지나 티셔츠, 스니커즈 등도 가능하다는 사내 공지까지 더해졌다. 이에 최근 금감원에서는 정장이 아닌 자율복장을 한 직원들이 여럿 보인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취임 이후 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에 면바지와 셔츠를 입고 등장한 바 있다. 지난 8월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빅테크·핀테크 업계 간담회'에도 그는 카라티와 면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MZ세대 절반 넘어선 금감원…변화 따라간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금감원 조직문화를 감안할 때 최근의 이같은 변화는 파격에 가깝다. 불과 최근까지도 금감원에서는 임원 보고에 들어갈 때는 무조건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러나 권위를 탈피한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금융권 전반에 단단히 뿌리내렸다. 자율복장은 물론이고 직급 호칭까지 없앤 금융회사가 다수다. 효율적인 의사 결정과 빠른 실행을 위해서는 상명하복의 위계 구조에서 일 중심의 수평적인 문화로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금융권 전반을 감독하고 이끄는 금감원으로서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빠르게 늘어나는 MZ세대의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다. 이들은 낡은 조직문화에 저항감이 크고 워라밸을 중시한다. 지난해 금감원에서 4급 이하의 선임조사역과 조사역의 퇴사가 늘어난 점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젊은 직원들이 속한 이들 4급 이하 비중은 이미 전체의 절반을 넘어선 상태다. 금감원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직원 2026명 가운데 59% 이상인 1204명이 4급 이하 직원이었다. 올해에는 그 비중이 60%로 더 뛴 상태다. 여기에 현재 신입직원 채용을 진행 중인 만큼 이후에는 MZ세대 비중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세대 갈등을 위시한 과도기를 넘어 이제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금융권에서도 대세가 됐다고 봐야한다"며 "보수적인 금감원까지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