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증권사 신용등급 조정 움직임이 시작됐다. 연초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가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리며 등급 하향 가능성을 시사한데 이어 국내 신평사도 하나증권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신용평가사들은 향후 등급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PF 관련 추가 손실에 주목한다. 최악의 경우 추가 손실이 4조원 넘게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적립금을 많게는 1조원가량 더 쌓아야하는데 재무적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나 부동산 경기가 연착륙에 실패할 경우 중소형사 상당수가 적자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연이은 등급전망 조정…문제는 PF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15일 하나증권의 장기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다만 신용등급은 AA를 유지했다.
등급변동 가능성을 의미하는 등급전망(아웃룩) 기호는 △긍정적(Positive, 상향 가능성) △안정적(Stable, 유지 가능성) △부정적(Negative, 하향 가능성) 순으로 표기한다.
나신평은 등급전망 하향조정 이유로 부동산 PF 관련 IB 수익이 급감한 동시에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 발생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기종 나신평 금융평가본부 금융평가1실장은 "국내 PF는 만기 연장을 통해 손실을 이연해 인식할 수 있는 반면 해외 건은 대부분 국내 금융회사들이 중·후순위로 들어가 있어 선순위투자자들의 요청을 받으면 당장 추가 출자를 해야하는 상황에 놓인다"며 "출자를 하지 않더라도 바로 손실을 인식해야 하는 등 국내 PF와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증권은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쌓으면서 적극적으로 손실을 인식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3월에는 S&P가 지난달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등급은 BBB등급을 유지했다. 당시에도 부동산 관련 리스크를 문제삼았다. S&P글로벌은 "국내외 부동산 시장의 둔화가 국내 증권 산업에 하방 압력을 가할 것"이라며 "향후 1~2년동안 부동산 관련 리스크가 한국 증권사들의 자산건전성과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소형 증권사는 지난해부터 등급전망 하향이 이뤄졌다. 한국기업평가는 작년 11월 다올투자증권의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다만 등급은 A등급으로 유지했다. 나신평은 작년 5월 BNK투자증권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면서 등급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낮췄다.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제시됐다는 건 실제 등급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증권사들의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자금조달 금리가 높아지고, 투자 유치 등 IB 사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신평사 관계자는 "부동산이라는 큰 소용돌이에 엮이지 않은 금융회사는 없다"며 "등급 방향성이 부정적으로 바뀌다 보니 등급 하향 가능성이 작년보다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권업 환경이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지 않은 가운데 (PF 리스크를) 각사 신용도에 얼마나 반영할지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송기종 실장은 "부동산을 대체할 수익구조를 갖고 있는지, 부동산PF나 대체투자에서 손실이 얼마나 인식할지 두 가지가 핵심"이라며 "1분기에 추가적으로 충당금을 반영하는 것을 보고 추가 등급 조정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PF 추정손실 7.6조
신평사들은 증권업 신용등급 주요 모니터링 요인으로 부동산 PF 추가 손실 부담에 주목하고 있다.
한신평에 따르면 26개 증권사(자기자본 3조원 이상 9사+그 외 중소형사 17개사)가 작년 말까지 손실에 대비해 적립해 둔 충당금(3조2000억원)을 고려할 때, 예상 추가 손실 규모는 1조4000억~4조4000억원에 달한다.
한신평은 세 가지 시나리오별로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했다. 첫 번째는 부동산 경기침체가 연착륙하고 정부의 시장 안정화정책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가정이다. 또한 본PF 부실이 일정수준 통제되고 브릿지론 부실은 지속된다는 설정을 추가했다. 이 경우 브릿지론의 부도확률은 40~80%이며 본 PF의 부도위험은 3~5%, 경공매로 넘어갔을 때 낙찰가율은 60~80%라는 가정이 적용된다.
이때 전체 추정 손실 규모는 시나리오 기준 총 4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규모별로 보면 대형사와 중소형사는 각각 2조4000억원과 2조1000억원이며, 손실률은 각각 12%과 25%로 추정했다. 특히 브릿지론은 손실률이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대형사 브릿지론과 중소형사 브릿지론 손실률은 각각 19%, 44%까지 올라간다.
두 번째는 부동산경기침체가 심화되고 정부 정책의 효과가 다소 약하게 발휘돼 현재 위기가 경착륙한다는 시나리오다. 본 PF 부실이 본격화되고 브릿지론 부실이 심화되는 상황을 가정했다. 이때 브릿지론의 부도확률은 50~90%, 본PF 부도위험은 5~10%로 커지고 경공매 낙찰가율은 55~75%로 형성된다는 가정이 적용된다 .
이 경우 증권사 전체 추정 손실은 5조7000억원이다. 대형사는 3조1000억원, 중소형사는 2조6000억원으로 예상했다. 손실률은 대형사와 중소형사 각각 15%, 31%로 나타났다. 브릿지론만 따져보면 23%, 53%로 올라간다.
세 번째는 최악의 위기 상황이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크게 확대되고 정부 정책의 효과가 미약하며, 본PF와 브릿지론이 전방위적 부실에 처하는 경우다. 브릿지론의 부도확률은 60~100%, 본PF 부도위험은 15~20%로 설정했다. 경공매율은 50~70%로 가정했다.
이 경우엔 증권사의 추정손실이 7조6000억원으로 치솟는다. 대형사 4조2000억원, 중소형사 3조3000억원으로 예상했다. 손실률은 대형사와 중소형사 각각 20%, 39%로 커질 전망이다. 브릿지론만 따졌을 땐 대형사 브릿지론 손실률은 28%, 중소형사의 손실률은 61%까지 올라간다.
앞서 나신평도 국내 25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시나리오별 PF 손실을 3조1000억~4조원으로 추정했다. 이미 적립한 충당금 2조원을 감안하면 추가 손실은 1조1000억~1조9000억원이다.
나신평은 경락가율에 따라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경락가율이 2023년 평균 수치의 하위 40%인 경우, 하위 30%인 경우, 하위 25%인 경우 총 세 가지다. 경락가율은 감정평가액 대비 최종 낙찰가의 비율을 의미하며, 신규 경매가 늘어나는 반면 수요는 여전히 부진할 경우 이 지표는 하락할 전망이다. 충당금 부담에 중소형사 적자 '경고등'
신용평가사들은 한 목소리로 충당금 추가 적립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신평이 가정한 부동산 경기 연착륙 시나리오에서 추정하는 손실 대비 현재 적립한 충당금을 비교해보면 대형사는 88%, 중소형사는 69%을 쌓아뒀다. 각각 12%, 31%씩 추가 적립이 필요하다. 부동산 경기가 경착륙한다면, 대형사와 중소형사는 각각 31%, 46%씩 더 쌓아야한다.
나신평에 따르면 초대형사의 추가 적립금은 3000억~6000억원에 불과한 반면 대형사는 6000억원~1조원 더 쌓아야한다. 중소형사는 2000억~3000억원 추가 누적이 필요하다. 자기자본 대비로 따지면 대형사와 중소형사가 각각 자기자본의 약 3~6% 규모를 추가 손실로 인식해 부담이 큰 편이다.
자본규모가 작을수록 브릿지론이나 중후순위 대출 비중이 높은 탓이다. 가장 고위험 익스포저로 간주되는 중후순위 브릿지론 비중의 경우 초대형사는 8%에 불과한 반면 대형사와 중소형사는 20%를 웃돈다.
충당금을 추가로 쌓을 경우, 재무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신평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경착륙하는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대형사의 충당금적립전영업이익 잠식률(추가 충당금을 충당금적립전영업이익으로 나눈 값)이 35%, 중소형사는 평균 110%로 올라간다.
부동산 경기 위기가 심화되는 경우에는 이 수치가 각각 57%, 153%까지 올라간다. 중소형사 17곳 중 13곳이 추가 충당금이 충당금적립전영업익보다 커져 영업적자에 빠지게 된다.
나신평 분석결과,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경우 초대형사 대비 국내 부동산 PF 손실 관련 수익성 하방 압력을 더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형사는 경락가율이 30% 스트레스 시나리오 가정하에서 적자로 전환한다.
이예리 나신평 책임연구원은 "대부분 초대형사의 경우 위탁 매매, 전통 IB등 부동산을 제외한 사업 부문에서 경상적으로 창출하는 이익 규모가 많아 손실을 충당할 여력이 충분하다"며 "반면 중소형사와 부동산 영업을 중심으로 외형을 확대해온 대형사는 부동산을 제외한 타사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열위해 감내 가능한 손실 규모가 적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