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여혜경(39)씨는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갔다가 낯선 경험을 했다. 영화 '투 더 원더(To the Wonder)'를 보고 일어날때 쯤 주변 사람들 눈치를 봐야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 자막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관람객 대부분이 자리에 앉아 영화음악을 감상하며 여운을 되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작품성 있는 예술영화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내 예술영화 전용관도 39개 극장에 47개 스크린(영화진흥위원회 2013년 통계기준)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흑자를 내는 예술영화 전용관은 매우 드물다. '예술을 하면 배고프다'는 공식이 영화극장에도 통용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씨네큐브만이 유독 흑자 경영에 성공한 다양성 영화(예술영화·독립영화·다큐멘터리영화 통칭) 전용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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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신문로 소재 씨네큐브 전경 [사진=티캐스트] |
◇8만+∝ 흥행몰이 '현재진행형'
씨네큐브가 지난해 12월19일 개봉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개봉 24일만인 1월12일 현재 8만 관객을 돌파했다. 3일마다 1만 관객이 늘고 있는 추세다.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인 사례다.
영화속 주인공은 자신을 닮은 아들,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지내다가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이윽고 6년간 키운 아들이 친자가 아니며,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을 통해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사려 깊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아버지와 아들을 잇는 것이 핏줄인지, 함께 보낸 시간인지 말이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비롯한 세계 유수 영화제 상을 휩쓴 바 있다. 반대로 표현하면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개봉하는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유수한 수상경력을 가졌다. 그런데 왜 씨네큐브가 개봉한 예술영화에 관객들은 더 호응할까. 정답은 콘텐츠 선정에 있다.
씨네큐브는 예술영화관 운영과 함께 예술영화 수입·배급을 직접한다. 예술영화를 단순히 상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좋은 예술영화를 더 많은 관객들에게 소개하고자 콘텐츠를 선정하는 남다른 노력이 뒷받침 됐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2011년 개봉작인 그을린 사랑은 6만8000명, 2012년 아무르 8만명, 2013년 마지막 4중주 10만명이라는 관람기록을 세웠다. 2013년말 개봉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흥행기록은 현재진행형이다.
씨네큐브를 운영하는 티캐스트 관계자는 "2011년 1월부터 예술영화를 직접 수입·배급해 예술영화 관객층 확대에 다각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면서 "자체 수입·배급을 시작한 이후 작품성도 뛰어날 뿐더러 화제성까지 갖춘 예술영화를 엄선한 결과 다수의 작품이 흥행면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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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창동 감독이 지난해 12월20일 씨네큐브에서 진행한 씨네토크에 나와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티캐스트] |
◇콘텐츠 집중토록 관객 배려
씨네큐브는 운영중인 2개관에서 1년 내내 다양성 영화만 상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멀티플렉스와 맞먹는 관객수와 좌석점유율을 보일 정도로 유명하다.
그 배경에는 씨네큐브만의 독특한 관람문화 원칙도 자리한다. 영화 한 편을 온전히 집중해 관람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씨네큐브 상영관에선 영화 시작 전 광고를 볼 수 없다. 일반 멀티플렉스에선 영화시작 시간에 착석해도 5∼10분씩 반복적인 광고영상을 보기 일쑤다.
생수 이외의 음식물 반입도 금지된다. 음식물 냄새나 소리가 다른 관람객에 방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상영 시작 10분 이후로는 지각 입장이 불가능하다. 또 영화가 끝나더라도 엔딩 크레딧, 일명 자막이 완전히 올라간 후에야 상영관 내 불이 켜진다.
양질의 콘텐츠를 알리기 위한 마케팅도 씨네큐브의 경영전략 중 하나다.
씨네큐브는 개관일인 12월2일을 기념, 매년 12월 첫째주에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이 행사는 작품성과 화제성을 갖춘 미개봉 예술영화들을 엄선해 상영하는 행사로 '씨네큐브 라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니아층을 고려했다.
또 다채로운 기획전과 씨네토크 행사를 통해서도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특히 개봉영화와 기획전에 맞춰 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영화기자 등과 함께하는 씨네토크를 마련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씨네큐브는 2011년 연간 관객수 22만명을 기록하면서 전년대비 40% 성장했고, 2012년에는 개관 이래 역대 최다 관객수인 26만명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