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시작해 두 달여 동안 방송된 드라마 tvN의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는 복고 열풍, 지역 사투리, 드라마 삽입곡에 이르기 까지 시청자와 네티즌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응사 앓이' 신드롬을 낳았다. 응사의 대히트는 그만큼 지난해 미디어 업계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케이블 방송이 지상파 방송의 벽을 허물었을뿐만 아니라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충격파를 던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딱히 드러나는 성과물은 없다. 그러나 해법은 먼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시청자들의 드라마 소비를 공중파 중심의 편식에서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균형 식단'으로 바꾼 응사 처럼 창조경제 성공의 키워드는 콘텐츠에 있다. [편집자]
응사는 신드롬급 인기를 모으며 케이블 드라마의 시청률 역사를 다시 썼다. 시청률조사기관 TNmS에 따르면 응사 마지막회가 방송된 작년 12월29일 시청률(전국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은 10.4%를 돌파, 자체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상파와 케이블채널간 시청률을 비교할 수 있는 가구기준 시청률(전국 유료 플랫폼 가입·비가입 합산)에서도 9.9%를 나타냈다. 동시간대 방송된 KBS 뉴스9(12.0%)을 제외하곤 다른 지상파 방송사의 주말드라마 시청률을 모두 따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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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산업 뒤흔든 응사의 비밀
응사는 1994년을 배경으로 지방 사람들의 눈물겨운 상경기를 비롯해 농구대잔치, 서태지와 아이들 등 사회적 이슈를 담은 드라마다. 응사의 성공 비결은 무엇보다 '낯선 과거'를 '낯익은 과거'로 되돌려놓은, 기존 지상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창의성에 있다. 90년대 사건사고와 당시 애청 프로그램이었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가수 서태지의 등장, 삐삐·공중전화 등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추억의 물품 등이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시켰던 것이다.
여기에 가슴 두근거리는 첫 사랑,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등장인물의 구수한 사투리, 극중인물 성나정(배우 고아라)의 남편은 누구인가를 맞추는 재미 요소 등 드라마적 스토리가 한데 엮여 탄탄한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케이블 프로그램은 시청률 1%만 넘어도 대박이란 말이 공식이었다. 하지만 응사의 성공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시청률은 따라 온다는 새로운 법칙을 만든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케이블 시청률이 10% 정도였다면 아마 그 콘텐츠 그대로 지상파에서 방송했을 경우 30%를 육박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지상파니 케이블이니, 어느 채널 프로그램이니를 따지기에 앞서 프로그램 자체가 브랜드가 됐다"고 밝혔다.
◇10년후를 본 파괴적 비즈의 예술
최근 인기를 끌었던 케이블 프로그램은 tvN의 응사,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를 비롯해 JTBC의 마녀사냥, 히든싱어 등 다양하다.
꽃보다 할배는 평균연령 76세의 이순재(80)·신구(78)·박근형(74)·백일섭(69)이 짐꾼 겸 통역사 이서진과 함께 유럽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어서 만들어진 꽃보다 누나 역시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등 톱 여배우들과 그들 사이에서 짐꾼 역할을 하는 이승기가 함께 배낭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한 포맷 같지만 평소 볼수 없었던 배우들의 진솔한 캐릭터가 여행을 통해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마녀사냥의 경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젊은 남녀들이 가질 수 있는 연애와 결혼에 관한 갈등을 솔직하고 거침없는 표현으로 이야기 나누는 네 남자의 토크가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프로그램 내용은 달라도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파괴적 비즈니스의 예술이 10년 후를 상상하는 것처럼, 꾸준한 콘텐츠 투자가 존재한다. 지금 기준으로는 무의미할 수 있지만, 그 10년 후를 대비하는 비즈니스를 미리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tvN을 운영하는 CJ E&M 관계자는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꾸준한 투자와 함께 제작 기회를 제공한 것이 주효했다"면서 "몇몇 인기 프로그램이 나오기까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지속적으로 투자를 감행했던 수많은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말했다.
JTBC도 종합편성채널 중 가장 콘텐츠 투자가 활발한 곳이다. 증권업계에서도 "JTBC는 선제적인 콘텐츠 투자 확대를 통해 다수의 핵심프로그램 편성 → 경쟁사 대비 시청률 우위 → 안정적인 광고 수입확보 → 콘텐츠 투자 여력 확보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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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산업 신데렐라 될까
'밑 빠진 독에 물붓기'만 같았던 콘텐츠 투자가 하나 둘씩 결실을 맺자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시장반응도 달라지고 있다. 아주 작은 사업 밖에 안될 것이라고 했던 비즈니스가 어느덧 덩치 큰 '골리앗'들의 주력 제품을 대체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민정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CJ E&M에 대해 4분기 매출액이 성장세로 전환된데다 대표채널인 tvN 드라마들이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성장세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종영한 응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꽃보다 누나는 지상파를 포함해 시청률 1위을 달성하고 있다"면서 "CJ E&M의 대표채널 tvN 채널번호 인지도 상승은 지상파 만큼의 위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정희석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JTBC 관계사인 제이콘텐트리를 분석하면서 "콘텐츠 경쟁력 확보를 위한 JTBC의 공격적인 방송투자로 제이콘텐트리의 콘텐츠 제작·유통사업의 성장은 지속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