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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워치]유튜브가 답하라

  • 2025.01.26(일) 11:00

"그놈의 유튜브 좀 그만 보세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지난 2023년 9월 아마추어 골퍼가 명심해야할 팁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우스갯소리처럼 흘린 말이다. 유튜브 프로들의 스윙을 어설프게 따라하다 폭망한 경험이 있는 골프 입문자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웃픈' 얘기다. 우즈가 콕 짚었다.

트럼프 시대 '골프외교'를 대비해 8년만에 골프채를 잡았다는 그도 우즈의 이런 조언은 귀담아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즈의 말을 따랐다면 유튜브를 아예 끊는 생각도 해봤을 터. 끊임없이 이용자를 유인하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마치 중독과 같아서 금연과 금주처럼 큰 마음 먹고 끊어내지 않으면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가 유튜브에서 탈출했다면 12·3 비상계엄도 탄핵도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오명도 피하지 않았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유튜브가 문을 연지 올해로 딱 20년을 맞았다. 지난 2005년 채드 헐리·스티브 첸·자웨드 카림 등 20대 청년 3명이 영상을 공유하고 시청하는 사이트를 만든 게 시작이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이 자신의 사이트가 아니면 다른 곳에선 영상 재생이 안되게 막을 때 유튜브는 '플래시(그래픽을 랜더링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라는 기술로 이 벽을 허물었다. 이용자들은 유튜브의 비디오 플레이어 박스를 다른 웹사이트에 붙여넣어 기존 업체들이 설치한 가두리 양식장에서 벗어났다.

무엇보다 콘텐츠가 자유로웠다. 초창기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이들은 아마추어 음악가, 유명하지 않은 코미디언, 연기 지망생 등 주류에 끼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완결성을 중시하는 레거시 미디어가 엄숙주의에 갇혀 비주류를 배척할 때 유튜브에선 비주류가 올린 영상이 평범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소소한 일상과 지식, 경험, 놀라움, 감동 등이 공유됐다. 레거시 미디어는 고양이 영상의 폭발력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유튜브는 잃을 게 없었다. 덩치가 커진 구글이 영상 하나하나에 문제가 될 만한 건 없는지 스크리닝에 집중할 때 유튜브는 이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영상을 올려 바로 볼 수 있게 했다. 오늘 올리면 며칠 뒤에 영상이 뜨는 구글의 시스템과 문화는 올리면 바로 떠 공유할 수 있는 유튜브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구글이 2006년 설립 2년도 안된 신생 스타트업 유튜브를 16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도,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유튜브를 놓치면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원하는 곳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해주는 '검색'을 업(業)으로 했던 구글과 덜 정확하더라도 최대한 오래 이용자가 머무르길 바랐던 유튜브는 DNA 자체가 달랐다. 유튜브가 여지껏 구글과 별개의 브랜드와 사이트로 유지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기존의 룰에 얽매이지 않던 유튜브는 강산이 두번 바뀌는 시간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잡았다. 방송사, 종이신문, 인터넷신문도 영상을 제작해 앞다퉈 유튜브에 올린다. 계엄군이 지상파 방송사가 아닌 유튜버 김어준 씨 사무실로 먼저 향한 건 미디어세계 힘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변방에서 하위문화의 놀이터로 여겨지던 플랫폼이 주류로 등극한 것이다. 기존 질서의 빈틈을 노린 발칙함과 당돌함이 거둔 승리다.

이제는 유튜브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이 많이 사용한 앱 1위가 유튜브다. 카카오톡과 네이버를 제쳤다. 하지만 커진 영향력만큼 우리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2021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을 난입했을 때만 해도 먼나라 이야기로 치부하던 일이 2025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법원을 습격해 기물을 파손하고 판사를 잡겠다며 찾아나선 장면을 실시간 중계하는 극단적 유튜버들을 보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나오는 '화살촉'이 허구가 아니었구나하는 섬뜩함을 느낀다. 혐오(hate speech)가 돈이 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폭력·차별·증오를 부추겨 조회수를 얻고, 민주주의를 슈퍼챗과 입금계좌로 맞바꾸는 이들의 몰염치함까지 우리 사회가 허용해야할까. 이들과 이익을 나누고 있는 유튜브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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