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반포대교를 넘어 이태원을 향해 녹사평대로를 지나다보면 길 오른편 용산구청 아래 나무와 수풀로 우거진 땅이 나온다. 시쳇말로 '핫(hot)'하다는 이태원에 어찌 빈 땅이 다 있나 싶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다.
남산 자락 비탈에 있지만 축구장(7350㎡안팎) 6개가 넉넉히 들어갈 만한 면적(4만4935㎡)의 이 땅은 이번에 최소 8031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값에 입찰에 올려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각에 나선 용산 유엔사령부 부지다. 한남뉴타운과 용산공원 사이에 대규모 주상복합 단지를 지을 수 있는 이 땅을 두고 일각에서는 낙찰가가 1조원을 웃돌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 유엔사 부지 매각을 주도하는 김동섭 LH 미군기지사업본부 사업기획부 부장의 생각은 가격에만 있지 않다. 유엔사 부지 옆 캐피탈 호텔에서 만난 그는 "지금은 저렇게 수풀로 덮여 있지만 이태원 관광특구, 외국 대사관 밀집 지역이 가까워 우리 시민들과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소통하는 글로벌 교류공간이 될 수 있는 땅"이라고 소개했다.
서울의 정중앙에 위치한 용산은 도심 중심업무지구와 가깝고 교통도 편리한 데다 남산과 한강까지 끼고 있는 탁월한 입지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미군기지가 그 중심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는 게 땅의 가치를 억눌러왔다.
김 부장은 "그나마 미군기지와 용산공원 서쪽의 한강대로변은 업무용 빌딩이나 주상복합 등이 많이 들어서 있지만, 동쪽 녹사평대로 축선은 개발에서 소외돼 왔다"며 "이 부지에 멋진 복합단지가 들어서면 일대의 가치를 높이는 앵커(anchor) 시설이 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옛 유엔군사령부가 있던 이 땅은 2008년 말 한·미 합의로 용산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이 결정된 뒤 빈 터로 남았다. 한쪽 면과 반대쪽 면의 고저차(단차)가 20여미터 정도 나는 부정형의 약간 경사진 땅이다. 사실 평평하고 네모반듯한 땅보다는 개발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 캐피탈호텔에서 본 유엔사 부지. 가건물 뒤쪽 매각부지 옆으로 청화아파트가 서 있다./윤도진 기자 spoon504@ |
하지만 김 부장은 "그렇기 때문에 민간기업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더욱 필요하고, 또 그로 인해 부가가치가 더 극대화될 수 있는 땅"이라며 "입지가 워낙 빼어나기 때문에 LH가 직접 건설사업까지 맡아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민간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이 부지 개발사업 자체뿐 아니라 주변을 활성화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사 부지는 용적률 600%, 건폐율 60%를 적용받는다. 주거와 상업, 업무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주상복합 타운을 조성할 수 있는데, 아파트는 전용면적 85㎡ 초과 규모로 최대 780가구를 지을 수 있다. 비슷한 입지의 '한남더힐' 등 고급 주택단지 시세를 감안할 때 3.3㎡당 분양가(공급면적 기준)는 4000만~4500만원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부지 바로 옆에는 준공한 지 25년된 청화아파트가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는 이 아파트 전용 105㎡가 올 초까지 8억5000만원 안팎에 거래되다가 지난 4월 9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현재 시세는 9억5000만원선, 3.3㎡당 가격(공급면적 기준)으로 2700만원선이다. 유엔사 부지의 대대적 개발이 주변에도 호재가 된 셈이다
LH는 유엔사 부지와 한강대로변 '캠프킴', 유엔사 남쪽 '수송사' 부지를 팔아 미군부지 이전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김 부장은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에 따라 우선 LH가 미군 평택기지를 건설해 이전할 곳을 마련해 주고, 유엔사 캠프킴 수송부 등 산재부지를 팔아 비용을 충당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LH가 미군기지 이전에 들이는 돈은 4조원대로 추정된다. 세 부지를 그 이상 가격에 팔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김 부장은 "캠프킴과 수송부는 아직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땅이어서 기지 이전이 늦어지고 있다"며 "캠프킴의 경우 입지규제를 완화한 뒤 국방부로부터 2019년께 땅을 넘겨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수송부는 그 이후다.
문재인 정부 들어 LH도 더욱 바빠졌다. 최근 LH는 도시재생 등 새 정부 핵심 부동산 공약인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5년간 50조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을 위해 기존 '행복주택본부'를 '도시재생본부'로 개편하고 '도시재생계획처'와 '도시정비사업처'의 직제 순위를 상향했다.
김 부장이 몸담고 있는 미군기지사업본부도 도시재생과 무관하지 않다. 민간이라면 단순히 비싸게 땅을 팔아 회사에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게 일이겠지만 공공기관인 LH이다 보니 목표가 남다르다. 이 부지를 차질없이 매각해야 도시재생의 '허파' 역할을 할 용산공원 조성이 순탄하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땅을 비싼 가격에 파는 것보다 서울 복판에 더욱 가치있는 공간이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며 "창의적인 민간 기업들이 서울 복판에 새로운 글로벌 교류공간을 만드는 이 사업에 관심을 가지길 기대한다"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