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국토교통부가 공공 사전청약의 '전면 중단'을 밝힌 이후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당국은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이유로 '구조적 한계'를 내세웠죠. 처음부터 모르고 시행한 제도도 아닌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니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요.
더군다나 10여 년 전에도 실패했던 전적이 있는 만큼 실망이 더 큽니다. 수요 분산을 위해 무리하게 시행한 정책 탓에 혼선만 가중됐다는 지적이 잇달아 나옵니다. 사전청약 당첨자나 대기자들은 이대로 '내 집 마련' 꿈을 접어야 하는 걸까요.
사전청약이 걸어온 길…'틀린 정책 또 틀리기?'
국토교통부는 지난 13일 '사전청약 시행단지 관리방안'을 발표하면서 공공 사전청약의 신규 시행 중단을 알렸습니다. 사전청약 이후 문화재 발굴, 법적 보호종 발견 등으로 사업 일정이 지연되자 이를 '제도적 한계'라고 보고 더 이상 운영하지 않겠다고 한 거죠. ▷관련 기사:'늦어지고 비싸지는' 공공 사전청약 전면 중단(5월14일)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유는 아닙니다. 사전청약뿐만 아니라 모든 주택 사업에서 변수로 작용하는 이유거든요. 정부가 이로 인한 본청약 및 입주 지연 등의 가능성을 모르고 정책을 시행한 것도 아니고요. 과거 선례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공공 사전청약은 이명박 정부였던 2009년 '사전 예약제'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강남 세곡 △서초 우면 △고양 원흥 △하남 미사 등의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 4곳에서 시행했는데요. 일부 단지에서 본청약이 크게 미뤄지면서 2011년 제도가 폐지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 제도가 '사전 청약'이란 이름으로 부활했을 때도 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부터 나왔는데요.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지구 계획, 토지보상 등 일정 절차가 완료된 곳에 우선 사전청약을 적용하겠다고 했습니다.▷관련 기사:9년만에 부활한 '사전청약제' 이번엔 꽃길 걸을까(2020년5월13일)
사전 청약은 2020년 5·6대책(수도권 주택공급기반 강화 방안)에서 수요 분산 카드로 재등장했습니다. 집값 상승세가 꺾이질 않자 사전청약으로 미래 수요를 빼놓으려는 취지였죠. 집값 과열이 뜨거운 수도권에서 공공택지에 공급하는 9000가구를 사전청약 받기로 한 게 첫 시작이었는데요.
같은 해 8·4대책(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에서 규모를 확 키웠습니다. 2021~2022년에 걸쳐 총 6만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하겠다고 했고요. 2021년 2·4대책(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인 확대방안)에선 공급 계획을 6만2000가구로 더 확대했습니다.
흥행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정부는 2021년 7~12월 총 4차례에 걸쳐 3만2202가구, 2022년 2~3월 두 차례에 걸쳐 5040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했는데요.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입지에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추정 분양가가 저렴해 청약 대기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윤석열 정부(2022년 3월 출범)도 공공 사전청약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2022년은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집값 상승세가 서서히 꺾였는데요. 그럼에도 청년·서민의 주거안정을 목표로 사전청약 공급을 시행했습니다.
윤 정부의 첫 공급 대책인 8·16대책(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에서 3기 신도시 사전청약 3000가구를 공급하기로 했고요. 이어 10·26대책(청년·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주택 50만호 공급계획)에선 수도권 1만1000가구의 뉴홈(뉴:홈) 사전청약 공급 계획을 밝혔습니다.
뉴홈은 윤석열 정부의 대표 공공분양 주택인데요. 집값 상승세는 멈췄지만 공사비 인상 등으로 분양가가 오르고 주택 경기가 꺾이면서 공급이 위축되자 공공분양 주택에 수요자 눈길이 쏠렸습니다. 정부도 1년 내내 뉴홈을 홍보하며 적극적으로 사전청약을 실시했고요.
2023년 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1만2308가구를 공급하는 동안 단지마다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는데요. 그러나 지구마다 각종 변수가 생겨 군포 대야미 등 일부 단지는 본청약 시점이 3년이나 밀리는 등 과거의 실패가 되풀이, 공공 사전청약은 부활 4년 만에 또다시 폐지됐습니다.
오락가락 정책에 당첨자들 앞날은?
시장에선 공공 사전청약 제도의 두 번째 실패를 예상했다는 반응이 다수 나옵니다. 정부도 자평했던 '구조적 한계'가 부동산 경기 하락기 때는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죠.
사전청약은 집값 상승기 때는 어느 정도 수요 분산 역할을 합니다. 집값이 빠르게 오르면 매수 심리를 자극하면서 '패닉 바잉' 하는 사례가 많아지는데요. 일종의 '선선(先先)분양'을 받으면서 수요를 분산하고 매수 심리도 일부 안정시킬 수 있거든요.
사전청약 당첨자에 대한 제한도 크지 않습니다. 본청약 때까지 자격만 확보해 놓으면 분양이 확정되고 그 사이 민간 청약에 당첨돼서 사전청약을 포기해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고요. 주택 사업자 입장에서도 경기가 좋고 정부 정책인 만큼 인허가 등에서도 힘을 받을 테니 안 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부동산 하락기 때는 어떨까요. 공공분양 주택은 상한제를 적용받아 시세에 비해 저렴하게 책정해야 하는데요.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주택사업자들이 이익을 크게 남기기 힘든 사업에 뛰어들긴 쉽지 않겠죠.
여기에 최근 인건비, 자재비 등이 '줄인상'하면서 사업 환경은 더 척박해졌고요. 여러 변수까지 겹치면서 사업 일정이 지연될수록 사업 기간이 늘어나 비용 부담은 커지겠죠. 이렇게 되면 본청약 때 확정되는 분양가 리스크는 더 커질 테고요.
정부가 먼저 백기를 든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사전청약 단지들의 본청약 시점이 오는 9월부터 줄줄이 도래하거든요. 본청약 지연에 따른 분양가 인상이 불 보듯 뻔하니 혼란이 더 커지기 전에 중단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되는데요.
실제로 본청약 시점이 1년4개월가량 밀린 위례 A2-7의 경우 사전청약 때 추정 분양가가 3억8074만원이었으나 본청약 때 나온 기본형 확정 분양가는 최고 4억2060만원으로 11.9% 상승한 바 있고요.▷관련 기사:[눈물의 분양가]②사전청약 당첨자도…'고분양가 폭탄?'(5월2일)
인천계양 A2 블록의 경우 2022년 1월 사업계획승인 당시 총사업비가 2676억원이었는데 최근 3364억원으로 변경, 2년 만에 25.7% 증가했습니다. 이를 분양가에 반영하면 본청약 시점에 나올 확정 분양가는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3년 12월까지 공공 사전청약을 받은 단지 총 99개, 5만2000가구 중 13개 단지(13.1%)만 본청약이 완료됐거든요. 나머지 단지의 본청약이 예상보다 크게 지연될 경우 청약 당첨자들의 혼란이 예상됩니다.
국토부는 기존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차질 없이 입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는데요. 지원 범위가 크진 않습니다. 우선 본청약이 지연되는 단지는 얼마나 늦어지는지 일정을 미리 안내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1~2개월 전에 안내하던 것을 최대 1년 전에 알려주겠다는 거죠.
본청약이 6개월 이상 지연되면 본청약 계약 체결 시 계약금 비율을 10%에서 5%로 조정하고 중도금 납부 횟수도 조정하고요. 전세매입임대도 추천해 주기로 했는데요. 정부 말만 믿고 본청약만 기다리던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지원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응입니다.
사전청약에 당첨돼서 본청약을 기다리며 주거 계획을 세워놓은 대기자들은 그 사이 다른 청약 기회를 잃은 셈이거든요. 본청약까지 청약 자격을 유지해놨는데 막상 본청약이 미뤄지며 분양가가 크게 오르면 그때 가서 포기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요.
결국 정부가 일시적 수요 분산, 공급 숫자 확대 등 '급한 불 끄기' 정책을 쓰다가 수요자들만 손해를 보게 생겼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책 신뢰도 추락으로 추가로 내놓은 대책이나 새롭게 나올 정책에 대한 수용도 쉽지 않을 테고요.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본청약을 포기한다고 당장 큰 불이익은 없지만 그동안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좋은 청약단지 도전의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땅에 떨어진 정책의 신뢰가 이제 지하실로 내려가고 있다"며 "허겁지겁 급하게 숫자 목표만 바라보며 달릴 게 아니라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꾸준히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