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의 소독약 냄새 논란이 일단락됐다. 지난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비맥주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의 원인이 ‘산화취’라고 결론 내렸다. 산화취는 고온에서 맥주의 맥아가 산소와 반응을 일으켜 이상한 냄새가 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은 오비맥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고 신고했지만, 식약처는 ‘젖은 종이’ 냄새가 난다고 결론을 내면서 소비자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정부와 소비자가 전혀 다른 냄새를 맡았단 얘기다. 또 식약처가 산화취의 원인 물질인 T2N(trans-2-nonenal)의 안전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 식약처 "젖은 종이 냄새" vs 화학과 교수 "소독약 냄새"
지난 26일 식약처는 소비자가 신고한 23개 오비맥주 제품에서 산화취 원인 물질인 T2N이 평균 134ppt(1ppt=1조분의 1)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민감한 사람은 100ppt부터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문제가 된 오비맥주는 시중에 유통되는 국내외 맥주 37건의 평균(62ppt)보다 2배 많았다. T2N은 젖은 종이나 가죽, 볼펜잉크와 같은 냄새가 난다고 식약처 측은 설명했다.
이번 식약처 조사에 참여한 정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는 27일 “문제의 맥주를 시음한 결과, 젖은 종이 냄새가 났다”며 “산화취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양조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다.
식약처는 이번 조사에서 “제조용수와 자동세척공정 등 소독약 냄새 원인을 조사한 결과, 세척후 잔류염소농도 관리 등이 기준대로 이행되고 있었다”며 “이번 이취는 소독약 냄새는 아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소독약 냄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여인형 동국대 화학과 교수는 “T2N에서는 젖은 종이 박스나 오이 냄새가 난다”며 “논란이 되고 있는 소독약냄새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여 교수는 이번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최근 ‘소독약 냄새’가 나는 카스를 직접 마셔봤다며 이번 정부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한 모임에서 카스를 마셨는데, 정말 옛날 수돗물에서 나던 소독약 냄새가 났다”고 주장했다. 염소 계열 소독약 성분과 알데하이드 냄새의 산화취는 일반인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 교수는 “맥주 원료나 제조과정에서 들어가는 화학약품에 대해 다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 맥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딴 A씨는 지난 26일 블로그에 "산화취와 소독약 냄새는 발생하는 원인도 다를 뿐아니라 근본적으로 냄새도 다르다"고 글을 남겼다. 그는 "냄새만 맡아도 이가 아픈것 같은 치과향이 소독약 냄새"라며 "원인은 물의 문제이거나 발효조 혹은 탱크에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산화취는 며칠전 배송된 택배용 종이 상자를 실내에 보관해둔 곳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라며 "훈련되지 않는 일반인도 쉽게 맡을 수 있다"고 썼다.
이번 조사 결과를 접한 소비자도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카스에서 소독약 냄새를 경험한 한 소비자는 “이번 식약처의 조사 결과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며 “정부의 조사 결과라 믿어야 하겠지만, 신뢰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장을 맡고 있는 고재윤 경희대(관광대학원 부원장) 교수는 “문제의 카스를 먹어보진 않았지만, 만약 소독약 냄새가 난다면 물을 정제하거나 병을 세척하는 과정상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T2N은 100% 안전할까?
식약처는 오비맥주 산화취의 원인 물질인 T2N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T2N는 합성착향료로서 일일섭취허용량을 설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는 JECFA(FAO·WHO 합동 식품첨가물 전문가위원회)의 평가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가 운영하는 의학학술지 데이터베이스 사이트(NCBI Pubmed)에 따르면, 2005년에 발간된 한 논문은 “시험관 내에서 T2N이 단백질과 결합했을 때 다양한 세포 독성 및 세포 사멸 효과를 강력하게 유도한다는 것을 나타낸다”며 “이 같은 화합물의 농도가 높을 경우 유기체에 잠재적으로 심각한 독성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평균 134ppt의 T2N이 검출됐는데, 1ppt는 1조분의 1의 아주 미미한 양”이라며 “굉장히 극미량의 향미 물질이라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여인형 동국대 화학과 교수도 “1ppt는 엄청나게 작은 양으로, 안전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식약처가 T2N 물질 자체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일체의 언급 없이 일방적으로 인체에 무해하다는 사실만 전달한 점은 오해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