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신동빈(왼쪽)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오른쪽)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 |
'신동주의 반란인가? 신동빈의 항명인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우세로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던 일본 롯데의 경영권이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의 일본 현지 언론 인터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 신동빈 체제 굳어지나 했는데…
사건의 발단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등이 일본으로 건너가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롯데홀딩스 임원들의 해임을 통보한 지난 27일이다. 당시 신격호 총괄회장은 임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해임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신동빈 회장 등 롯데홀딩스 임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튿날(28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신격호 총괄회장을 해임했다. 고령으로 거동과 판단이 어려운 신격호 총괄회장이 이번 사건을 주도한 신동주 전 부회장에 의해 이용당할 것을 걱정했다는 게 롯데측 설명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그날(28일) 오후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과 함께 빈손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하루 뒤인 29일에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내 '왕자의 난'으로 불리던 형제간 다툼은 표면적으로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굳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롯데측도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 지분을 과반 이상 확보했다"며 경영권 확보에 자신감을 보였다.
◇ 신동주의 반격.."동생이 아버지 지시 거부"
하지만 불과 하루도 안돼 이 같은 판세에 균열이 생겼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올해 초 롯데홀딩스에서 경질된 이후 언론 노출을 꺼리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먼저 "신동빈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가 왜곡된 정보를 아버지께 전달하며 내가 영구추방에 가까운 상태가 됐다"고 토로했다. 자신이 일본 롯데 주요 직책에서 해임된 배경을 설명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의 오해가 풀리기 시작한 시점을 5월쯤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난 3일 신격호 총괄회장이 직접 쓰쿠다 대표이사 등의 해임을 직접 지시했는데 쓰쿠다 대표는 평소와 같이 출근했고, 신동빈 회장에게도 18일 사퇴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지금의 롯데홀딩스 임원들이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반기를 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뷰 내용대로라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주변의 음해에 의한 피해자고,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동생(신동빈 회장)의 역공을 당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까지 물러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판단력이 흐려진 아버지를 이용해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롯데측 설명과 거리가 있는 얘기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는 일관되게 신동빈을 쫓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며 "그러나 (신동빈 회장이) 듣지 않아 일본으로 와서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 ▲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이 지난 29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 가열되는 형제간 공방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배경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은 달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왜곡된 정보 때문"이라고 주장한 반면 롯데측은 "일본 롯데의 실적부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의 중국사업과 관련해서도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도 중국 사업을 비롯해 한국 롯데 실적을 아버지께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롯데측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매번 사업실적을 보고 받아왔다. 보고가 누락되거나 거짓 보고가 있었다는 부분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롯데는 현재 중국에서 백화점과 마트, 제과, 홈쇼핑, 화학사업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롯데마트의 경우 현지의 경쟁격화로 지난해 매출이 10% 가까이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언급한 중국사업의 보고누락이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롯데쇼핑 전체적으로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20% 감소했다.
◇ 주총이 분수령, 서로 승리 자신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은 롯데홀딩스 주주총회가 될 전망이다.
"아버지의 뜻"을 명분으로 롯데홀딩스 경영권을 쥔 신동빈 회장이나 똑같이 "아버지의 뜻"을 내세워 동생을 내몰려고 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나 지금은 정당성과 도덕성을 둘러싼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기업의 세계에선 결국 누가 더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느냐가 최종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도 양측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서로 자신이 더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며 세(勢)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가 대표로 있는 자산관리회사(광윤사)가 롯데홀딩스 지분 33%를 갖고 있다. 나는 2％ 미만이지만 32％가 넘는 종업원 지분을 합하면 3분의 2 정도 된다"며 자신의 우세를 자신했다.
롯데측은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의 신동빈 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고 28일 이사회에서 하루전 조치(신동주 전 부회장에 의한 신동빈 회장 등 롯데홀딩스 임원 해임시도)가 무효로 된 것은 우호지분이 우세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신동빈 회장이 이미 과반이 넘는 지분을 확보했음을 재확인했다.
| ▲ 신격호(가운데) 총괄회장의 뜻을 둘러싸고 형제간 다툼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본 롯데의 지배권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
◇ 주총 결과 따라 형제간 운명도 갈려
아직까지 롯데홀딩스의 주총시기는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주총 개최시기와 안건의 결정은 일차적으로 신동빈 회장을 주축으로 한 롯데홀딩스 이사회가 쥐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로선 신동빈 회장측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동빈 회장으로선 충분한 우호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주총을 열려고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총 결과에 따라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변곡점을 맞이할 전망이다.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롯데홀딩스 이사진이 지금의 자리를 지키면 한일 양국에 걸쳐 신동빈 회장의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지는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주장대로 이사진이 교체되면 신 회장은 일본은 물론 한국내 롯데그룹에서 입지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롯데홀딩스를 정점으로 한 일본 롯데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지분 99%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30일 오후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의 모친인 시게미츠 하츠코(88) 씨가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형제간 다툼이 한창인 가운데 그녀의 역할이 주목된다.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신동빈 회장도 이르면 이날 오후 입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