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家) 경영권 다툼에서 태풍의 눈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물 중 하나는 신영자(73·사진) 롯데재단 이사장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첫째 부인인 노순화 씨 사이에서 낳은 롯데가의 장녀다.
신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아버지 신 총괄회장을 모시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동빈 회장을 포함해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하는 자리에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 이사장은 부산여고와 이화여대를 나와 1973년 호텔롯데 이사로 출발해 롯데쇼핑 사장 등을 역임했다. 롯데가에서 그녀에 대한 평가는 신 총괄회장의 둘째 부인인 시게미쓰 하츠코 씨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자는 저도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자지만 남자 못지 않게 사업 추진력이며 아이디어가 뛰어나지요. 꼼꼼하고 일을 즐겨하는 성격이 아버지와 꼭 닮았습니다." (주부생활 1990년 4월호)
1990년은 신동빈 회장이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한국 롯데그룹에서 첫발을 내딛던 때다. 아버지를 닮았다던 신 이사장은 그러나 동생의 부상과 함께 서서히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는 수순을 밟는다.
동생인 신동빈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2011년)한 이듬해 실시한 정기인사에서 그녀는 롯데쇼핑의 사장직도 내놓고 현업에서 완전히 물러난다. 당시 롯데그룹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하길 원하는 본인의 뜻을 존중했다"고 밝혔다.
신 이사장은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장남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 편으로 알려져있다. 이에 대해 신 전 부회장은 "신 이사장은 중립적 입장"이라며 "아버지가 걱정돼서 (일본에) 따라간 것"이라며 이러한 관측을 부인했다.
하지만 롯데그룹 내부에선 경영권 분쟁의 핵심 당사자 가운데 하나로 신 이사장을 지목하고 있다.
한국 내 기반이 취약한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의 뜻대로 한국 롯데까지 맡을 경우 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신 이사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신 총괄회장과 롯데그룹 임원들의 접촉을 차단하는 장본인이 신 이사장이라는 음모론도 제기하고 있다.
비록 신 이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있어도 그녀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다. 두 동생이 박빙의 차이로 국내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이사장으로 있는 롯데재단은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어서다. 그녀 자신도 롯데쇼핑·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건설·대홍기획 등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