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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5분간의 사과, 5분간의 父子상봉

  • 2015.08.03(월) 20:07

신동빈 회장 귀국 후 첫 행보
취재인파 몰려.."국민께 죄송"
냉랭한 분위기속 호텔 방문

 

3일 오후 2시41분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린 김포공항 입국게이트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란색 줄무늬 넥타이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신 회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머리를 단정히 빗어 올린 모습이었다. 입을 굳게 다문 그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이윽고 신 회장이 미리 준비된 포토라인에 섰다. 그는 먼저 허리를 90도 숙였다. 5초 뒤 몸을 일으킨 신 회장은 두 손을 모은 채 입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께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 진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잠시 입을 닫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일본 어투가 섞인 어눌한 말투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신 회장은 얼마 전 명예회장으로 추대한 아버지의 직책을 전처럼 ‘총괄회장’이라고 불렀다.

신 회장은 기자들의 이어지는 질문에 ‘어머니(시게미쓰 하쓰코 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아버지를 만난 건 지난달 8일이나 9일쯤이다’ ‘앞으로 형(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 아버지(신격호 총괄회장)를 만날 것이다’ ‘주주총회는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진행할 거다’ ‘해임 지시서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본다’ 등 단편적이고 짧은 대답을 이어갔다.

롯데그룹 지분 문제와 신 총괄회장의 건강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했다. ‘아버지를 치매환자로 만들었다’는 돌발 질문이 나오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긴장된 분위기에서 5분여의 인터뷰가 끝나자 신 회장은 곧바로 신 총괄회장이 있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향했다. 여기에도 30여명의 기자들이 미리 진을 치고 있었다. 3시30분쯤 호텔에 도착한 신 회장은 이번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호텔 로비를 지나 승강기로 이동했다.

 

약 1시간이 넘도록 신 회장이 다시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기자들 사이에 여러 관측이 흘러나왔다. '대화 시간이 길어지는 걸 보면 부자 간에 나눌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신 회장과 신 총괄회장의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틀림없이 정문으로 나올 것이다' 등등 ….

오후 5시께 호텔 출입구 쪽으로 취재진이 갑자기 우르르 몰렸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님이 3시30분부터 5분 정도 집무실에서 아버지와 면담한 뒤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이동했다”고 전했다. 맥이 풀린 기자들 사이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이 관계자는 이날 부자간 만남이 ‘화해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신 총괄회장과 화해하신 게 맞냐’고 거듭 묻자 잠시 눈을 깔고 뜸을 들이다 “언제든 부자간 만남에는 따뜻한 정이 오고 가는 것이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롯데그룹측 설명과 달리 이날 부자간 만남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산사스식품 사장은 “신 회장은 방문에 앞서 허락을 받지도 않았고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며 “둘은 방에 들어오려는 순간 얼굴을 맞댔을 뿐 만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신 회장은 들어올 때와 달리 롯데호텔 정문을 거치지 않고 지하주차장 등 다른 경로를 통해 롯데호텔을 빠져나갔다. 아버지와 아들의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부자간 껄끄러운 만남을 뒤로 한 채 잠실 롯데월드타워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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