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석 쿠팡 대표는 3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2017년까지 총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일자리 4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
"제게는 기회가 주어진 것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저와 똑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저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분명히 나타났을 겁니다."
쿠팡의 김범석 대표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표현했다. 또래 친구들은 대리나 과장을 달았을 나이에 김 대표는 연간 2조원 이상의 거래가 이뤄지는 쿠팡의 대표를 맡고 있다.
우리나이로 서른여덟,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근무한 그는 흔한 말로 '엄친아'에 가깝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웃음기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고생을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킨 소셜커머스 '그루폰'을 모델로 삼아 5년전 쿠팡을 설립했다. 당시 쿠팡과 같은 회사가 우후죽순 생겼지만 현재 국내 소셜커머스시장은 쿠팡·티몬·위메프가 삼분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곳에선 느끼기 어려운 감동을 고객에게 주는데 힘을 쏟았다.
예를 들어 쿠팡은 전담택배기사인 쿠팡맨을 두고 배송과정에서 생기기 쉬운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는데 주력했다. 이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택배를 이용했을 때 소비자의 배송만족도는 39%인데 비해 쿠팡맨에 의한 배송(로켓배송) 만족도는 99%에 달했다.
30대 청년사업가인 김 대표는 전자상거래기업 그 이상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3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쿠팡은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서비스기업"이라고 규정했다. 올해 3월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1위 전자상거래기업인 '아마존'을 경쟁상대로 거론하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100년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이날 김 대표는 "앞으로 2년간 쿠팡을 통해 일자리 4만개를 만들겠다"는 깜짝 발표도 했다. 정부나 대기업도 전전긍긍하는 일자리 문제를 30대 최고경영자가 해결하겠다고 공약(公約)한 셈이다. 그의 약속이 실현되면 우리 사회는 한 명의 '스타 CEO'를 넘어서는 '젊은 지도자'를 얻는 행운을 누릴지도 모른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그에게는 실패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껏 기억에 남는 실패담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생각해봐야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만약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다면, 글로벌 유동성이 넘쳐나지 않았다면 쿠팡은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행운과 기회만으로 100년을 버틴 기업은 없다. 이제는 지난 5년간 쿠팡이 거둔 성과가 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숙제가 김 대표에게 주어진 것은 아닐까. 쿠팡은 9회말 야구경기에서 1회초를 끝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