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은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시장에서 가장 후발주자입니다. 선발주자인 '아이코스(IQOS)'와 '글로(glo)'의 단점들을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애연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내 담배1위 업체인 KT&G가 만드는 제품이라는 점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외국기업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A/S나 가격 등의 측면에서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시장은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가 열었습니다. 지난 5월 국내시장에 처음으로 선보인 아이코스는 지금까지 약 25만개 가량이 판매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뒤이어 8월에는 BAT가 글로를 선보이면서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은 급성장중입니다. 여기에 KT&G가 도전장을 내민겁니다.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일반 궐련형 담배가 가진 단점들을 크게 줄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애연가들에게 고민이었던 유해물질 배출을 감소시켰다는 업체들의 주장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흡연을 하면서도 늘 건강을 걱정했던 소비자들에게 궐련형 전자담배는 여전히 유해성 우려가 있지만 대체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업체들도 이런 점들을 잘 압니다. 필립모리스와 BAT가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여부에 대해 공을 들여 설명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일반 궐련형 담배보다 유해 물질 배출이 훨씬 적다는 점을 강조해야 더 많은 소비자들이 찾을테니까요. 필립모리스와 BAT는 모두 자체 조사 결과 자신들의 제품이 일반 궐련형 담배보다 유해 물질 배출이 90% 가량 적게 나온다고 공표했습니다.
필립모리스는 최근 별도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아이코스를 한국에서 시판 중인 일반 궐련형 담배와 비교한 결과 발암 물질 등 유해 물질 배출이 크게 줄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아이코스에 대해서는 비교 대상이 한국담배가 아닌, 실험용 표준형 담배였던 것이 많은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필립모리스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둔 듯 이번에는 한국 시판 담배와 비교한 겁니다.
반면 KT&G의 경우에는 이런 유해성 논란에 대해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쟁 업체들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KT&G가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서둘러 제품을 출시하느라 관련 연구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자칫 아이코스와 글로에 시장을 전부 내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시장에 나섰다는 해석입니다.
실제로 출시 기자간담회 당시 임왕섭 KT&G 제품혁신실 상무는 "릴의 유해성 배출 수준은 경쟁사와 동등한 수준"이라고만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수치 등을 요구하자 그는 "경쟁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유해성 관련 데이터는 엄밀한 검증이 돼 있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유해성에 대한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우리는 충분히 준비된 이후에 정확한 정보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만 봐서는 KT&G가 유해성 연구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일각의 주장처럼 '제대로 준비를 못해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KT&G의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KT&G는 국내 담배시장에서 KT&G가 가진 독특한 지위와 환경 등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이 때문에 대외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것은 발표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정해뒀습니다.
KT&G 관계자는 "우리도 자체적으로 실험한 결과를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도 엄연히 담배다. 그런데 담배회사에서 담배가 무해하다는 실험 결과를, 그것도 담배회사가 자체적으로 실험한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에 대해 부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외부의 공인된 기관을 통해 정확한 실험 결과를 받은 후에 발표할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KT&G는 국내 1위 담배 업체입니다. 따라서 경쟁업체 행보에 맞춰 자체 실험 결과를 내놨다가 이후 외부 검증기관에서 오차가 있는 수치를 내놓을 경우 다른 업체에 비해 더 많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아직은 궐련형 전자담배보다 일반 궐련형 담배 시장이 큽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마케팅을 하기가 부담스럽습니다.
KT&G는 담배를 제조·판매하는 곳입니다. 한때는 공기업이었습니다. 담배에 관한 국내 최대의 유통망과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담배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목이 집중되는 곳입니다. 문제는 담배가 건강에 좋지않다는 점입니다. 그런 담배를 다루는 곳인 만큼 여론의 동향이나 시장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수치 하나라도 정확해야 나중에 뒤탈이 없습니다. KT&G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KT&G가 내놓은 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KT&G는 드러내놓고 좋다고 표현하지 못합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담배를 출시해놓고 잘 팔린다고 좋아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서입니다. 한 외국계 담배업체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들은 우리같은 외국계보다 KT&G에 대해 더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며 "그래서 KT&G가 더 신중을 기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좋아도 좋다고 하지 못하는 KT&G의 속사정입니다.
총 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댓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