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기대가 컸습니다. 당시 두산그룹 본사가 있는 동대문 두타 주변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났습니다. 두타를 중심으로 한 동대문 상권은 중국인 관광객을 기반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두타 방문은 필수코스였습니다.
두산은 이를 눈여겨봤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면세점 사업입니다. 동대문을 가득 메운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다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박용만 전 회장의 장남 박서원 전무가 면세점 사업을 담당하면서 그룹 안팎의 관심을 한눈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두산면세점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작년 3월부터 시작된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애초 중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했던 만큼 타격은 컸습니다. 롯데나 신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업력도 짧아 더욱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애초 두타면세점은 '국내 최초 심야 면세점'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매출이 좀처럼 나오지 않자 7개월 만에 영업 종료 시간을 기존 '층별 밤 11시, 새벽 2시'에서 자정으로 일원화했습니다. 이마저 사드 사태 이후 밤 11시로 앞당겼습니다. 여기에다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뷔통 등 '3대 명품' 유치에도 실패했습니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그래서일까요. 그동안 두산면세점은 면세점 업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면세점 업계 전반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유독 두타면세점은 더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장사가 잘 안 되는 데다 시내 면세점이어서 더욱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최근 조용했던 두타면세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두타면세점을 운영하는 ㈜두산은 최근 두타몰을 흡수합병키로 했습니다. 두타몰은 두타에 입점한 상점들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두타몰은 두타면세점과 달리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도 선전해왔는데요. 비결은 이렇습니다.
두타몰은 6층에 대규모 식음료 공간을 만들고 서울 시내 각 지역의 맛집을 유치했습니다. 작년에는 두타몰 1층에 수제 햄버거 매장인 쉐이크쉑을 입점시켰죠. 현재 두타몰 식음료 매장은 총 31곳에 달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마트 노브랜드 매장, 타요 키즈카페 등을 유치해 고객 끌기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고객들이 두타몰을 찾기 시작했고 그 효과는 두타면세점으로 이어졌습니다. 만년 적자를 면치 못했던 두타면세점은 작년 4분기 4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습니다. 분기 기준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한 셈입니다. 작년 4분기 매출도 1246억원으로 전년보다 132.6% 증가했습니다. 천덕꾸러기였던 두타면세점이 환골탈태한 겁니다.
관세청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두타면세점의 작년 매출은 4436억원으로 전년보다 299.6%나 성장했습니다. 작년 시내 면세점 중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았죠. 두타면세점은 작년 시내 면세점 매장별 매출 순위에서도 상위 10개 매장 중 8위에 오르며 본격적인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 자료:관세청, 윤호중 의원실. |
탄력이 붙은 ㈜두산은 본격적으로 일을 꾸미기 시작합니다. 100% 자회사인 두타몰을 아예 흡수합병키로 한 겁니다. 그리고 두타면세점과 합쳐 본격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효과를 본 터라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두산도 합병 이유에 대해 "면세사업과 두타몰의 쇼핑몰 운영 및 임대업 간 유통사업 시너지를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두타면세점의 공격적인 행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선 두타몰 합병을 통해 그동안 부진했던 면세점 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큽니다. ㈜두산은 두타몰과의 합병 시너지를 바탕으로 올해 면세점 사업에서 연 매출 7200억원, 시내 면세점 점유율 7% 달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면세점 사업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입니다.
아울러 면세점 사업을 진두지휘해온 박서원 전무의 경영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습니다. 두산 오너가(家) 4세인 박 전무는 그동안 디자인 업계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기업 경영에선 아직 제대로 검증받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이번 두타몰 합병을 통해 박 전무가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면세점 업계 매출은 대부분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 탓에 사드 보복의 후폭풍을 가장 세게 맞기도 했죠. 현재 면세점 업계의 매출을 그나마 지탱하고 있는 것은 중국 보따리상들입니다. 한국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중국에 판매하는 상인들입니다.
다만 중국 보따리상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과 비교해 매출 효과가 떨어집니다. 지속 가능성도 의문입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탓에 보따리상이 주목받고 있을 뿐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두타면세점이 모처럼 기회를 잡고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객 타깃층을 다변화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힘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두타면세점과 두타몰의 합병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무척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