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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롯데면세점을 위한 변명

  • 2018.04.23(월) 15:55

인천공항 T1면세점 입찰 참여…경쟁사 비난 봇물
롯데는 임대료 등 조건 개선에 따른 당연한 판단

면세점 업계가 뒤숭숭합니다. 롯데면세점이 포기한 인천국제공항 제 1터미널(T1) 면세점 운영권 때문입니다. 이미 설명회는 끝났고 업체들은 주판알을 튕기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업체 간에 보이지 않는 물밑 싸움도 치열합니다.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은근히 특정업체를 '디스'하는 이야기들도 부쩍 많이 들립니다.

이번 입찰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곳은 롯데면세점입니다. 롯데면세점은 이번 입찰에 참여키로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모양새가 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이번 입찰은 롯데면세점이 자진 반납한 운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들이 반납한 면세점 운영권을 다시 따내기 위해 입찰 참여를 선언한 겁니다. 업계 일각에서 '그럴 거면 왜 반납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롯데면세점을 가장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곳은 신라면세점입니다. 롯데에 이어 업계 2위인 신라면세점은 이번 입찰에 관심이 큽니다. 롯데가 내놓은 인천공항 T1 면세점 운영권이 알짜여서입니다. 이것을 신라가 가져간다면 단숨에 롯데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신라는 이미 제주공항 면세점 운영권도 획득한 터라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롯데면세점이 반납한 인천공항 T1 면세점 사업권은 총 3곳입니다. DF1(향수·화장품)과 탑승동 DF8(전 품목), DF5(피혁·패션)입니다. 인천공항공사는 이 중 DF1과 탑승동 DF8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입찰 대상은 총 2곳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DF1과 탑승동 DF8을 합친 구역을 가져가는 것이 알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는 이 두 군데 모두를 노리고 있습니다.

▲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지난 20일 있었던 입찰 설명회에는 국내외 업체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롯데도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높다는 이야기겠지요. 인천공항공사는 이번 입찰을 진행하면서 자격 요건을 대폭 낮췄습니다. 면세점 사업 경험이 없는 유통기업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더불어 그동안 쟁점이던 임대료도 예전보다 30%에서 최대 48% 낮게 정했습니다.

롯데면세점이 다시 이번 입찰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공사와 임대료 인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는 완강히 거부했고 결국 롯데면세점은 부분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계 2위, 국내 1위 면세점 업체인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에서 철수하면서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롯데면세점이 철수를 선택한 이유는 중국의 사드 보복 때문입니다. 그동안 국내 면세점 업체들은 매출의 80% 이상을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의존해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하면서 정말 거짓말처럼 이들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주요 매출처가 사라지자 면세점 업계는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낙관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인천공항에 높은 임대료를 써내 입점했던 롯데면세점으로서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롯데면세점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계속 유입될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드 사태가 터졌고, 롯데면세점의 판단은 결과론적으로 '오판(誤判)'이 됐습니다. 이는 롯데면세점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너무 낙관했다'는 게 롯데면세점의 뒤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 인하는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천공항은 끝내 임대료 인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도 모두 물어냈습니다. 금전적 손실은 물론 브랜드 가치에도 손상을 입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토록 완강했던 인천공항공사가 롯데면세점이 철수를 결정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임대료 인하를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롯데가 떠난 그 자리에 새로운 업체들을 유치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공교롭게도 임대료 인하였습니다. 업계에서는 인천공항공사가 롯데를 겨냥해 보란 듯이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롯데면세점은 분통이 터졌습니다. 정작 자신들과 협상할 때는 꿈쩍도 안 하더니 이제 와서 임대료 인하 카드를 빼든 속내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롯데면세점 내부에서는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롯데면세점 입장에서는 일종의 수모를 겪은 것으로 받아들일 법도 합니다.

하지만 롯데면세점은 입찰에 참여키로 했습니다. 내부의 비판에도 가장 큰 걸림돌이던 임대료 조건이 개선된 만큼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입찰 참여가 이득이라는 분석입니다. 비록 이번 입찰은 여러 상황이 불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5년 뒤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연속성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겁니다. 

사실 롯데면세점 내부에서도 이번 입찰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솔직히 안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천공항공사는 이번 입찰부터 계약을 완료하지 못한 상황에서 재입찰에 참여할 경우 '페널티(penalty)'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 페널티 점수를 얼마나 줄 것인가는 현재 논의 중입니다.


롯데면세점이 이번 입찰에서 낙찰을 받기 위해서는 높은 금액을 써낼 수밖에 없습니다. 페널티 점수를 고려해야 하는 데다 다른 여러 항목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격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 입장에서도 롯데면세점에 다시 운영권을 줄 경우 모양새가 좋지 않아집니다. 이래저래 양측 모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롯데면세점의 이번 입찰 참여는 사실 과도하게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천공항공사의 임대료 인하 조치는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더불어 계약 파기에 따른 책임도 이미 졌습니다. 형식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입찰 참여입니다. 다만 일종의 도의적인 책임은 분명 있을 겁니다.

롯데면세점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입찰의 공정성입니다. 이미 신라를 비롯한 경쟁업체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롯데면세점의 입찰 참여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천공항공사도 우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일각에서는 인천공항공사 관계자가 "롯데는 이미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공정성은 훼손된 겁니다.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한 언급 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패배한 룰(rule)로 다시 내가 승리할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다"라는 말입니다.

롯데면세점은 큰 시각에서 보면 사드 보복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그것을 견디다 못해 링 위에 수건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 다시 링 위에 설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은 반드시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합니다. 부디 이번 입찰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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