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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이마트가 왜 그럴까

  • 2018.07.13(금) 16:24

비주력 계열사 오너 일가 지분 일괄 매입
승계 준비·일감 몰아주기 규제 사전 대응


이마트의 '이상한'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마트는 최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가지고 있던 이마트의 계열사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지분 매입에 들어간 비용은 343억원 정도 입니다.

이마트가 지분을 매입한 계열사는 신세계그룹의 SI업체인 신세계I&C와 신세계건설, 식음료를 담당하고 있는 신세계푸드입니다. 모두 이마트가 최대주주로 있는 곳들입니다. 이마트는 이미 신세계I&C 지분 29.01%, 신세계건설 지분 32.41%, 신세계푸드 지분 46.1%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마트는 신세계그룹 오너 일가가 가지도 있던 이 업체들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면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강화가 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더불어 "이들 업체가 이익을 내는 만큼 지배력을 강화하면 연결 기준으로 이마트의 실적도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지분 매입으로 이마트의 신세계I&C 지분율은 35.65%, 신세계건설 42.70%, 신세계푸드 46.87%로 올라가게 됐습니다. 물론 최대주주의 지위도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계열사 지분율이 올라가는 만큼 더 강력한 최대주주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마트의 설명을 따라가면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들 업체의 최대주주인 이마트가 굳이 오너 일가의 지분을 더 매입해 지배력을 높이겠다고 밝힌 대목이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신세계I&C의 영업이익은 154억원, 신세계건설은 247억원, 신세계푸드는 30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작년 연결기준 이마트의 영업이익이 5669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이들을 연결해 이마트가 취할 실적 상승 효과는 미미합니다.


업계의 관심은 이마트가 도대체 왜 오너 일가들의 지분만 콕 집어 매입했는지에 쏠려있습니다. 대외적으로 밝힌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 강화라는 설명으로는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한' 일을 벌였기에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일을 크게 두 가지 이유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선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앞서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이마트가 지분을 매입한 신세계I&C와 신세계건설, 신세계푸드 등은 공통적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높습니다. 일각에서는 신세계가 이들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실제로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I&C의 내부거래 비중은 전체 매출의 76%에 달합니다. 신세계건설은 61%, 신세계푸드는 31%였습니다. 신세계푸드의 경우 상대적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작지만 다른 경쟁업체와 비교하면 꽤 높은 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입니다. 현행법상 상장사일 경우 오너 일가의 지분이 30%를 넘어서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됩니다.

이들은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낮아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일감 몰아주기 근절 차원에서 대기업 총수 일가가 보유한 비주력 계열사 지분의 자발적 매각을 주문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신세계가 미리 손을 쓴 것이 아니겠냐는 의견이 나옵니다. 괜히 들고 있다가 매를 맞느니 미리 처리해버리자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최근 신세계그룹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승계'입니다. 신세계그룹은 그동안 착실히 승계작업을 준비해왔습니다. 이미 기본적인 얼개는 갖춰진 상태입니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를 비롯해 복합쇼핑몰, 푸드 등을 담당하고,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백화점과 패션, 화장품 등을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이미 수차례 증여와 지분 맞교환 등으로 지금의 얼개가 완성됐습니다. 마지막 남은 것은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가지고 있는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 각각 18.22%를 언제, 어떻게 자식들에게 넘겨주느냐입니다. 이 지분이 넘어가면 신세계의 승계작업은 끝이 납니다.

신세계그룹은 이를 위해 최근 승계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나섰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재은 명예회장이 가지고 있던 신세계인터내셔날 지분을 정 총괄사장에게 증여한 겁니다. 이를 통해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개인 주주로는 최대주주에 올랐고 그 덕분에 패션과 화장품 사업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이마트의 계열사 오너 일가 지분 매입도 같은 시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의 개인 주주로는 이명희 회장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번 지분 매각으로 정 부회장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계열사가 이마트(9.8%)와 광주신세계(52.1%), 신세계인터내셔날(0.1%)로 줄었습니다.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사진=이명근 기자/qwe123@)
 
대신 이마트가 계열사의 지분 매입을 통해 지배력을 높인 만큼 정 부회장의 계열사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지분구조도 단순해졌습니다. 앞으로 정 부회장이 이명희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받게 되면 정 부회장의 이마트 지분은 28.02%로 최대주주가 됩니다. 이마트를 정점으로 다른 계열사들을 더욱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이번 이마트의 계열사 오너 일가 지분 매입은 정 부회장의 영역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 풀이됩니다. 이마트는 대외적으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강화라고 밝혔지만 속내는 승계를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 이명희 회장이 최대주주인 상황에서 이마트가 섣불리 '승계'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업계에서는 이마트의 이번 지분 매입이 본격적인 승계 작업을 위한 신호탄이 아니겠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정 부회장이 가지고 있는 광주신세계와 신세계인터내셔날 지분을 신세계가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영역은 더욱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다만 신세계가 정 부회장의 광주신세계 지분을 인수하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재원 마련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신세계그룹의 승계 작업은 이미 상당부분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다른 대기업과 비교하면 조용하면서도 치밀하게 잡음 없이 준비해온 덕분입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퍼즐을 어떻게 맞춰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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