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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셋]최저임금 인상 ④중소기업은 곡소리

  • 2018.07.27(금) 10:53

벌어지는 대기업과 격차…알바와 차별성 줄어
채용 규모 줄였는데도 구인난은 여전 '딜레마'

 
'월 180만원 받는 중소기업에서 일할까, 아니면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할까'

부산에서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직장인이 월 180만원을 받으며 살려니 비참하다는 글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그는 일자리도 없고 계속 실직자로 있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취직했다고 합니다. 이 글에는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구직활동을 하라거나 공무원 준비를 하라는 조언들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같은 돈이면 그래도 고용이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보다는 기업에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요즘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다른 중소기업 직장인은 "굳이 따지자면 중소기업의 고용 안장성이 아르바이트보다는 더 높아야 하는데 요즘은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며 "급여 수준도 예전에는 대기업의 70~80% 수준은 됐던 것 같은데 요즘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저성장이 장기화하고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도 힘들고, 이런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 역시 답답한 마음입니다.

 

경영자들은 실적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 당장 인건비가 부담되고, 직장인들은 자꾸 다른 직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이런 분위기를 더 암울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중소기업 집단 반발 현실화…"당장 폐업 위기"

울산지역의 중소기업 단체인 울산중소기업협회는 지난 24일 정기이사회에서 정부의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불복종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 협회는 울산지역 300여 중소기업이 소속된 단체인데요. 주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2·3차 협력업체가 많다고 합니다.

이들은 지난해 대기업들의 요구로 납품 단가를 내렸는데 최저임금까지 올리면 당장 폐업해야 한다면서 내년 최저임금 8350원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이런 분위기는 더욱 확산하고 있습니다.
 
대구에 본부를 둔 전국중소기업·중소상공인협회도 지난 26일 "정부의 일방적인 최저임금 인상에 맞서 불복종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안 그래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 같은 때 최저임금까지 올린다고 하니 단체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내다보는 경기 전망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6일 내놓은 '8월 중소기업경기전망조사'를 보면 중소기업건강도지수(SBHI)는 4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SBHI가 100 미만이면 경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응답한 업체가 더 많다는 의미인데요. 8월 SBHI는 82까지 떨어졌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들의 채용 규모도 줄어듭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내놓은 올해 상반기 직종별 사업체노동력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상반기 상용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체의 구인 인원은 66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감소했습니다. 실제 채용한 인원도 57만9000명으로 2.9% 줄었습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채용 규모를 줄이고 있기도 하지만 구직자가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여전합니다. 올해 상반기 기업이 적극적으로 구인에 나섰음에도 채용하지 못한 '미충원 인원'은 9만 명가량인데 이 중 90.2%(8만 1000명)가 300인 미만 사업체였습니다. 중소기업의 미충원율은 12.3%에 달합니다.

◇ 더 줄어드는 구직자…"세밀한 정책 필요" 목소리


이 분위기에서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리는 것은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먼저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돈을 적게 주는 중소기업보다는 차라리 비슷한 돈을 받으면서도 자유로운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이른바 '프리터족'이 계속 늘어나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청년층(15~29세) 중 건설노동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이들은 25만 3000명가량입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최고치입니다.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인 알바몬이 지난해 성인 아르바이트생 10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는 자신을 프리터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가 커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300인 이상 사업체의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 총액은 629만2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41만7000원)보다 16.2% 증가했습니다. 반면 300인 미만 사업체의 경우 335만8000원으로 4.9%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앞서 한국경제연구원이 최저임금이 빠르게 오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이게 현실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였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인근 한 호프집을 깜짝 방문해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해 이런저런 고충에 관해 얘기를 나눴는데요.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정부에 조금 더 세밀한 최저임금제가 필요하다고 요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업종이나 사업 규모, 지역마다 최저임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중소 IT업체 사장인 정광천 씨는 "(최저임금) 1만원은 삶을 본질적으로 개선하자는 취지인데 업종과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고 서울과 지방도 다르다"며 "(정부가) 기준점에 집착하는 부분이 있는데, 업종별로 지역별로 개별적으로 속도 조절을 할 필요는 있지 않나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당장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서울 물가와 지역 물가가 다르고 지역별로 업종별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 최저임금"이라며 "직종에 차별을 가하면 취지에 맞지 않아 쉬운 문제는 아니다"고 했습니다.
 
다만 "앞으로 이런 논의를 많이 하겠다"고 강조해 변화의 여지는 남겼다는 점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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