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때문일까. 이마트가 야심 차게 진출한 소주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이마트는 매년 적게는 50억원에서 많게는 150억원씩 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실적은 여전히 깜깜한 '밤'이다.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이 나빠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정용진 소주'로 불렸다
이마트는 지난 2016년 제주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제주소주 지분 100%를 인수했다. 제주소주는 2011년 설립됐다. '곱들락'과 '산도롱' 등 2종류의 소주를 앞세워 당시 제주도 소주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한라산의 독주체제에 도전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소비자들은 제주소주를 외면했고, 경영에 어려움을 겪다 결국 이마트에 팔렸다. 매각 가격은 19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마트가 제주소주를 인수한 데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정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주류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꼭 현지 주류업체나 제조공장에 들러 맛을 보고 SNS 등에 공개했다. 정 부회장 자신도 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만큼 주류사업에 대한 의지도 강했다.
2008년 신세계L&B를 설립해 와인과 맥주, 기타 음료 등을 수입해 판매하고 있는 것도, 2014년 '데블스도어'를 통해 수제맥주 사업에 진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소주 라인업은 갖추지 못했다. 주류 사업이 장기적으로 신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여겼던 정 부회장 입장에서는 소주 라인업 부재가 아쉬웠다. 그런데 때마침 제주소주가 인수를 타진해왔다. 정 부회장은 기회라고 여겼다.
사실 이마트는 제주소주 인수를 두고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다. 제주소주가 그다지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제주소주를 실사했던 현업 부서에선 수차례 반대 의견을 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소주시장 진출 의지는 강했다. 내부의 반대에도 정 부회장은 제주소주 인수를 밀어붙였고 결국 인수에 성공했다.
◇ 깊어지는 실적의 '밤'
이마트가 제주소주를 인수했을 당시 그린 그림은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이마트의 유통망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업계에서도 신세계가 제주소주를 이마트 유통망에 실어 전국에 공급한다면 국내 소주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봤다. 그만큼 이마트의 유통망은 기존 소주업체들에 무서운 존재였다. 이마트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봤다.
제주소주는 2017년 '푸른밤' 소주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외형 성장에 나섰다. 시작은 좋았다. 푸른밤은 출시 4개월 만에 300만 병 이상 팔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판매량은 급감했다. 그렇다 보니 실적 부진이 이어졌다. 다만 매출은 늘었다. 2016년 1억원에서 지난해 4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는 예상했던 바다. 그동안 제주도에만 국한됐던 판매처가 이마트 유통망을 타고 전국으로 확대된 결과다.
그다음이 문제다.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했다. 2016년 19억원이던 영업손실이 작년엔 127억원까지 불어났다. 높은 매출원가와 막대한 마케팅 비용 등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면서 이마트는 지난 2016년부터 작년까지 총 5회에 걸쳐 유상증자를 통해 총 570억원의 자금을 제주소주에 수혈했다. 그런데도 제주소주의 실적은 여전히 부진하다.
그나마 버팀목이던 이마트가 최근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제주소주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마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9% 감소한 4628억원에 그쳤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도 전년대비 반토막 난 743억원을 기록했다. 주력인 오프라인 매장의 부진 탓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마트의 제주소주 지원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 벽이 너무 높다
제주소주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인지도를 높이고 판매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국내 소주시장에서 제주소주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심지어 제주도에서조차 한라산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이마트가 국내 소주시장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뛰어든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내 소주시장은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50% 이상, 롯데주류의 주류의 처음처럼이 20%가량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각 지방 소주업체들이 나눠 갖는 형국이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가 지방 소주시장도 가져가고 있다. 아울러 소주는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제품이기도 하다. 제주소주가 이런 점들을 간과했다는 이야기다.
제주소주는 후발주자다. 또 기존 업체들의 입지가 공고한 시장을 뚫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브랜드 인지도 상승이 필수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제주소주는 그렇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마트의 유통망은 분명 위협적인 무기"라면서 "그와 별도로 제주소주만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차별화를 꾀했다면 시너지가 났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마트의 유통망을 너무 맹신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마트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여전히 시설이나 마케팅, 운영비 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이에 대한 투자가 진행 중"이라며 "장기적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과 함께 우선적으로 제주도 내 인지도를 높여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