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공사와 면세점 업체들 간 인천공항 임대료 갈등이 새 국면을 맞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임대료 인하 불가' 입장을 고수해온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태도에 변화가 생겨서다. 최근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잇따라 면세점 업체 대표들과 만나면서 이런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19 확산 탓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천국제공항이 사실상 '셧다운' 상태에 돌입하면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실적 하락도 불가피해졌다. 인천국제공항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면세점 업체들의 임대료로 충당해왔다. 코로나19 확산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도 대형 악재인 셈이다.
◇ 인천공항공사도 피하지 못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 2017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 월등한 경영 실적을 거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작년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매출은 2조 8265억원, 영업이익은 1조 289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45.9%에 달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호실적 이면에는 면세점들이 존재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전체 매출의 약 60%가 면세점 업체들이 지불하는 임대료다. 면세점 업체들은 매년 엄청난 액수의 임대료를 부담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실적으로 잡힌다. 면세점 업체들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인천국제공항에서 면세점 운영 경력은 해외 진출에 큰 플러스 요소다.
그동안은 해외 여행 수요가 증가하면서 큰 문제가 없었다. 면세점 업체들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임대료가 과도하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만큼 영업이 잘됐던 만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악재를 맞으면서 면세점 업체들은 거의 '아사(餓死)' 직전까지 몰렸다.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면세점에 의존하던 인천국제공항공사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실제로 지난 4월 기준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 승객수는 15만 3514명으로 전월 대비 74.8% 감소했다. 전년 대비로는 97.3%가 줄었다. 역대 최저 실적이다. 인천국제공항 이용객 수가 줄었다는 것은 면세점 업체들의 수익도 그만큼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올해 실적 저하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해갈 수는 없었던 셈이다.
◇ 면세점 빅3 적자 늪에…인천공항공사도 고민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면세점 업체들은 임대료 인하를 두고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지난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양측의 갈등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면세점 업체들은 전체 매출의 80%가량을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면세점 업체들은 큰 위기를 맞았다.
특히 롯데는 사드 부지 제공 탓에 중국 정부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 때문에 롯데면세점의 피해는 유독 컸다. 수익성 악화가 계속되자 롯데면세점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임대료 인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거절했다. 결국 롯데면세점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부 매장을 철수하는 강수를 뒀다. 이후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면세점 업체들 간 임대료 인하 이슈는 계속 이어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임대료 인하에 대해 늘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최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이 흥행에 실패했던 이유도 높은 임대료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태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최근 잇따라 면세점 업체 대표들과 만났다. 그는 "한배를 탄 공동체인 만큼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추가 지원방안을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임대료 인하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시그널을 내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면세점 빅3의 지난 1분기 실적은 처참한 수준이다. 코로나19 확산 탓에 적자의 늪에 빠졌다. 오는 15일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 롯데면세점도 적자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면세점들이 수익성 악화에 빠지면서 인천공항공사도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 임대료 인하 가능할까
사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인천국제공항 내 상업시설에 대해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임대료 납부 유예를 시행했다. 이 유예기간은 이번 달로 끝난다. 오는 6월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임대료를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는 곧 면세점 업체들의 수익성이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이야기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입장에서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면세점 임대 수익으로만 1조 761억원을 가져갔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회된다면 버티다 못한 면세점 업체들의 철수가 가시화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인천국제공항공사로서는 면세점 업체들이 만족할만한 임대료 인하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오는 15일로 예정된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 면세점 업체 대표들 간 회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구 사장과 면세점 업체 대표들 간 회동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달로 임대료 인하 유예가 만료되는 만큼 좀 더 진전된 임대료 인하 대책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다. 면세점 업체들도 내심 이번에는 파격적인 임대료 인하 대책이 발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면세점 업체 관계자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한 이번 건은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서 "구 사장의 언급처럼 현 상황은 면세점 업체들과 인천공항공사는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다. 면세점 업계가 어려워지면 인천공항공사도 함께 어려워진다. 이번만큼은 모두가 공감할만한 임대료 인하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