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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20년 전 유언장이 가른 명암

  • 2020.06.25(목) 16:41

고(故) 신격호 회장 유언장 공개…신동빈 체제 확고
일본 롯데 장악한 날 유언장까지…신동주에 '결정적 한 방'

20년 전 쓰인 아버지의 유언장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유언장에서 자신의 후계를 명확히 밝혔습니다. 형제는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형은 좌절했고 동생은 웃었습니다. 아버지는 형이 아닌 동생을 자신의 후계로 지목했습니다. 동생의 완승입니다. 형은 반발합니다. "법적 효력이 없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했던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이제 막을 내릴 모양입니다.

지난 24일 롯데그룹은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자필 유언장을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당연히 세간의 시선은 그 내용에 쏠렸습니다. 신 명예회장은 자신의 후계자로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지목했습니다. 자필로 직접 쓴 유언장인데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자필 서명까지 첨부된 유언장입니다. 더불어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을 경영에서 배제하라는 유지도 남겼습니다.

유언장의 파급력은 컸습니다. 신 명예회장이 대외적으로 신 회장을 후계로 지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수 년 전 후계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신 회장이 아닌, 신 전 부회장이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신 명예회장의 건강이 온전치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입니다. 따라서 이번 유언장에서의 후계 지목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이 롯데의 설명입니다. 특히 '신동빈 원톱 체제'를 유지로 남겼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사실 신 회장은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롯데의 수장으로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다른 그룹들과 달리, 창업주로부터 직접 후계로 지목됐는지 여부에서는 늘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유언장 공개로 신 회장의 마지막 부담도 해소됐습니다. 이제는 롯데그룹의 수장으로서 정당성까지 확보하게 된 셈입니다. 유언장은 신 회장에게 날개가 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마침 유언장을 공개한 날 신 회장은 일본 롯데까지 장악했습니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주주총회를 통해 신 회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습니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를 이끄는 지주회사입니다. 이로써 신 회장은 일본 롯데를 자신의 영역 아래 둘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과 일본 롯데가 명실공히 '신동빈 체제'가 된 겁니다.

하지만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도 있는 법. 그동안 신 회장과 지속적으로 대립해 온 신 전 부회장에게 유언장 공개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여기에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주주제안이 부결됨에 따라 신 회장과의 주총대결 6전 6패의 불명예까지 떠안게 됐으니 신 전 부회장에게 2020년 6월 24일은 끔찍한 하루였을 겁니다.

신 전 부회장은 예상대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는 "해당 유언장 자체는 법률로 정해진 요건을 갖추지 못해 법적인 의미에서 유언으로서 효력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유언장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한다고 기재돼있지만 이는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생전에 표명한 의사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 전 부회장이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생전에 표명한 의사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고 한 것은 지난 2016년 신 전 부회장이 개설한 일본어 웹사이트 '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에 올린 신격호 명예회장의 인터뷰 동영상이 그 근거입니다. 이 동영상에서 신 명예회장은 "당연히 내 장남이 후계자가 되어야한다. 이것은 일본과 한국의 오너기업에서는 상식이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당시 신 명예회장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어 최근 수년간의 언급이나 행동들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롯데그룹은 이런 점을 들어 신 명예회장의 정신이 또렷했던 지난 2000년 3월의 유언장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신 명예회장이 직접 후계자로 신동빈 회장을 언급한 것이 큰 힘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신 전 부회장은 또 다른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그동안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 타계 후 유언장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갑자기 이 시점에서 유언장이 나왔다며 공개하는 저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겁니다. 신 전 부회장은 "오랜 세월 신 명예회장의 비서를 지낸 인물에 의하면 해당 금고는 매달 내용물에 관한 확인 및 기장이 되고 있음에도 이제 와서 새로운 내용물이 발견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기가 막힌 타이밍이기는 합니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를 장악한 날 신 명예회장의 유언장이 공개됐다는 점은 신 전 부회장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만한 일입니다. 재계에서는 롯데그룹이 이미 신 명예회장의 유언장을 입수해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공개 시점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조율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 전 부회장에게 '결정적 한 방'을 날릴 시기를 봐왔을 겁니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를 장악한 지난 24일 주주총회는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유언장을 공개할 최적의 시점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일본 롯데를 공식적으로 접수하고 여기에 창업주의 후계 지목까지 얹어진다면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나리오입니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일본 롯데 장악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유언장 내용을 공개해 암묵적으로 '롯데는 신동빈 원톱 체제'라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공식화했습니다.

재계에서는 파상공세를 당한 신 전 부회장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 전 부회장은 이미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자신의 주주제안이 부결되자 법적 소송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에 아버지의 유언장 내용이 공증을 받지 않은 것인 만큼 법적 효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신 전 부회장의 주장처럼 신 명예회장의 유언장은 사실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유언장이 법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공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번 유언장에는 공증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신 전 부회장의 주장이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론입니다. 롯데 안팎의 여론은 이미 신 회장에게로 넘어간 상태입니다. 신 전 부회장이 그동안 신 회장에게 지속적으로 패배했던 것도 이 탓이 큽니다.

비록 공증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우리네 정서상 아버지가 자필로 유언장에 후계를 지목했다면 이를 거스르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본인의 서명까지 남겼으니 그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겁니다. 롯데그룹은 이런 점을 강조해 향후 '신동빈 원톱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명분을 얻었습니다. 20년 전에 작성된 유언장이 형제의 명암을 확실하게 갈라놓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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