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그룹이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패션과 유통을 중심으로 이커머스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내부 업무시스템도 모바일 활용성을 높일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랜드그룹이 디지털 전환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이다. 다만 경쟁 업체에 비해 디지털 전환이 늦은 만큼, 기존 사업 기반의 차별화에 앞서 규모 성장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내·외 디지털 전환 속도 높이는 이랜드그룹
이랜드그룹은 최근 비즈니스 데이터 플랫폼 기업 쿠콘과 디지털 비즈니스 협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올해 3분기 오픈을 앞둔 '이랜드페이'다. 이랜드페이는 멤버십과 페이를 합친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다.
이번 협약에 따라 쿠콘은 간편결제 서비스 상품을 통해 이랜드페이 구축을 지원한다. 이랜드월드는 쿠콘의 금융 정보 및 마이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구현할 계획이다.
이랜드그룹은 이커머스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최근 이랜드리테일의 '이랜드몰'을 이커머스 플랫폼 카페24와 연동시켰다. 이랜드몰은 NC백화점, 뉴코아, 킴스클럽마트 등의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이랜드몰은 카페24의 온라인 사업 노하우를 활용해 이랜드몰의 성장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내부 업무 시스템의 디지털 전환에도 나섰다. 신규 업무 플랫폼 '이네스' 구축을 통해서다. 이네스는 기존 웹 기반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모바일에 최적화해 만든 플랫폼이다. 내부 직원은 물론 협력업체도 활용할 수 있다. 이랜드그룹은 이네스를 활용해 그룹 업무 시스템을 온라인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코로나19 딛고 사업 성장…매각보다 체질 개선
이랜드그룹은 코로나19 상황을 딛고 업황이 호전됨에 따라 공격적인 디지털 전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랜드그룹은 지난해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패션 사업 중심의 이랜드월드는 지난해 1051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NC백화점, 킴스클럽 등 유통 사업을 전개하는 이랜드리테일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99% 급감한 16억원에 그쳤다.
이는 오프라인 비중이 높은 사업 구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랜드그룹의 패션 사업은 오프라인 가두점 위주의 중·저가 브랜드와 SPA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유통 사업 역시 이커머스보다는 오프라인 매장의 비중이 높다.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이 타 업체들에 비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이랜드그룹은 이런 타격을 이기지 못하고 올 초 여성복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기도 했다. 대상 브랜드는 미쏘·로엠·에블린·클라비스·W9·EnC 등 6개였다. 이들 브랜드는 약 500여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이러한 인프라를 경쟁력 삼아 매각 흥행을 기대했지만 매각가 등 조건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안착하고 오프라인 시장이 다시 살아나자 본격적인 실적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 3월 미쏘와 로엠은 각각 전년 대비 300%, 170%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SPA 브랜드 스파오에도 젊은 세대 고객들에 힘입어 매출이 늘었다. 특히 뉴발란스는 지난해 연매출 5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도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랜드그룹이 매각 등을 통한 온라인 전환보다 긴 호흡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선택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이랜드그룹은 여성복 사업 매각 철회와 별개로 온라인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그룹 내 조직마다 온라인 전담팀을 구성했다. 카카오톡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인 '콸콸'을 론칭하는 등 타 플랫폼과의 협업에도 나섰다.
시너지 있다…작은 규모·차별화는 '과제'
업계에서는 이랜드그룹이 디지털 전환으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랜드그룹이 시장 내에서 독특한 입지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이랜드그룹의 패션 브랜드들은 중저가 제품을 기반으로 MZ세대를 공략하는 데 특화돼 있다. 유통 사업도 타 기업에 비해 오프라인 매장 수는 적지만 '도심형 아울렛' 콘셉트로 나름의 시장을 구축했다. 이런 강점을 활용한다면 이커머스 시장 내 차별화도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틈새 시장의 강자'라는 사업 구조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약점이다. 현재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은 규모가 중요하다. 아무리 차별화된 아이템이 있더라도 규모가 작다면 셀러 유치가 어렵다. 실제로 SSG닷컴, 롯데ON 등 유통 대기업의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오픈마켓으로 전환하는 것도 규모를 키우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반면 현재까지 이랜드그룹의 디지털 전환은 자사 브랜드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장이 중저가 제품군에 집중돼있는 만큼 규모와 수익성 측면에서는 다소 불리할 수 있다. 또 규모를 갖추지 못한다면 이랜드페이 등 신규 서비스와의 시너지 효과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페이 등의 핀테크 서비스는 많은 사용자 풀을 확보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이랜드그룹이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규모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사업의 외형 통합을 중심으로 일정 부분만 차별화시키는 전략으로는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 외부 플랫폼과의 협업을 더욱 강화해 시장 내 영향력을 키우고, 효율성 중심으로 온라인 사업을 확장시키는 것이 먼저라는 분석이다.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먼저 갖추는 것이 선결 과제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이랜드그룹이 제시한 디지털 전환 전략은 마이데이터 기반 개인화 서비스 강화, 비즈니스 데이터를 활용한 업무 전환 정도다. 이는 많은 경쟁사들이 이미 도입한 것으로 이랜드그룹만의 강점이라 보기 어렵다"며 "온라인 시장 후발 주자로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단 고객 풀을 키운 후 이들을 록인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요소를 육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