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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는 어떻게 13년을 버텼을까

  • 2021.07.17(토) 11:00

[주간유통]오뚜기, 13년 만에 라면 값 인상
'라면 값 동결' 손해…타 제품군으로 메워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팀이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많이 망설였습니다

사실 매주 주말용 기사를 준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매번 한 주간 있었던 일들을 리뷰하고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는 시간들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뭐 그걸로 밥 벌어 먹고살면서 무슨 투정이냐고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저도 직장인이고 이걸 써야 애들 입에 맛있는 것이라도 하나 더 넣어줄 수 있는 입장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냥 그렇다고 푸념하는 겁니다. 

돌이켜보니 그래도 이번 주는 쓸만한 소재들이 좀 있었습니다. 인터파크가 매물로 나온 것부터 한샘 매각, 요기요 인수전 등이 있더군요. 그래서 그중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저희 팀 후배가 툭 한마디 던졌습니다. "선배, 라면이죠". 생각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민감한' 소재라 솔직히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또 어떤 민족입니까. 라면에 진심인 민족 아닙니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라면, 게다가 오뚜기가 소재에 가격 인상을 주제로 써야 합니다. 이건 폭탄을 안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라면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정말 대단합니다. 아마도 서민 식품의 대표주자여서 그럴 겁니다. 그렇다 보니 가격 인상 여부도 늘 관심사입니다. 이번 오뚜기의 라면 가격 인상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저도 라면을 사랑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또 기자의 입장에서 이번 오뚜기의 라면 가격 인상에 대해 한 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제 기사에 욕을 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또 어떤 분들은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실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찌 됐건 모두 소중한 의견입니다.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고는 생각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오뚜기의 인내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오뚜기가 라면 가격 인상을 발표했습니다. 무려 13년 만입니다. 오뚜기는 그동안 라면 가격을 동결해왔습니다. 경쟁 업체들이 인상을 발표할 때도 오뚜기만은 늘 그 가격을 고수했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사실 같은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식품 업체들의 처지는 다들 비슷합니다. 어느 한 업체가 가격 인상을 발표하면 다른 업체들도 따라나서는 이유입니다.

식품업체들이 늘 눈에 불을 켜고 보는 것이 원재료 가격 변동입니다. 국제 시세의 변화에 따라 제조원가가 달라집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고 물류비용이 증가하고 임금이 오르면 식품 업체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비용이 증가하는데 현재 가격을 유지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죠. 당연히 제품 가격에 원재료 등의 가격 인상분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게 경제 논리에 맞습니다. 식품업체들이라고 땅 파서 장사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품 업체들은 쉽게 제품 가격 인상을 하지 못합니다. 식품 가격의 인상은 곧 소비자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민 식품의 경우 반발은 더욱 거셉니다. 대표적인 것이 라면입니다. 잘못 올렸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십상입니다. 때론 물가 상승의 주범이 되거나 그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식품업체들은 소비자들과 최접점에 있습니다. 그런 만큼 소비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많은 식품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발표할 때 늘 하는 멘트가 있습니다. "그동안 가격 인상 요인을 자체 노력으로 상쇄해왔지만 원재료 가격 인상분을 도저히 감내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인상하게 됐다"고들 합니다. 나름 노력해왔는데 더는 버틸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쉽게 납득하지 못합니다. 당장 타격을 입으니까요. 당연한 일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식품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매우 낮습니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많이 팔아야만 수익이 조금 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격이 올라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바로 수익성에 타격을 입습니다. 그래서 많은 식품업체들이 가격 인상 요인이 있어도 이 악물고 버팁니다. 하지만 한계는 있습니다. 

오뚜기가 대단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13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는 점입니다. 경쟁사인 농심이나 삼양식품과 처지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을 텐데 말이죠. 오뚜기가 너무 오래 버텨서 그렇지 사실 농심도 5년째, 삼양식품도 2017년 5월 이후 라면 가격은 동결한 상태입니다. 오뚜기의 13년에 가렸을 뿐 이들도 나름대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뚜기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렇다면 오뚜기는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요? 오뚜기는 "라면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설비 자동화, 원료 및 포장재 등의 원가 절감, 유틸리티 비용 절감 등 제품 가격 인상 억제를 위한 자체적인 노력을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맞습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는데 버틸 재간은 다른 것에서 비용을 아끼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원가절감입니다. 오뚜기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해온 겁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 긴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다른 업체들은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뚜기가 13년간 라면 가격을 동결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대형마트 등에서 라면을 구입하실 때 유독 오뚜기 라면의 경우 4개가 한 팩이 아니라 5개가 한 팩인 경우를 종종 보셨을 겁니다. 가격도 타사 제품들에 비해 저렴합니다. 맛도 좋습니다. 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에 오뚜기의 전략이 숨어있습니다. 오뚜기는 업계에서 마케팅에 많은 공을 들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프로모션을 자주 진행합니다. 특히 라면의 경우 가격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럼 오뚜기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가격을 낮췄으니 수익성은 떨어질 겁니다. 하지만 오뚜기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바로 라면이 아닌 다른 제품군들입니다.

오뚜기는 아마 국내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식품을 생산하는 곳일 겁니다. 각종 소스류부터 '3분 시리즈'로 대표되는 레토르 식품, 육가공 제품, 냉동 피자, 캔 참치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오뚜기 홈페이지에 소개된 제품만 해도 총 12개 제품군에 928개의 제품이 있습니다. 이 제품들은 B2C뿐만 아니라 B2B 시장에서도 인기입니다. 라면에서 보는 손해를 이들 제품의 판매를 통해 메워왔던 겁니다.

이런 제품군들의 경우 라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 인상 빈도가 잦았습니다. 실제로 올해 초 즉석밥·컵밥·캔 참치 등의 가격을 올렸고 지난달에는 냉동피자 일부 상품의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라면 가격 인상처럼 주목받지 않았죠. 어떤 분들은 "오뚜기가 그동안 '꼼수'를 쓴 거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오뚜기가 서민 식품인 라면 가격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전략'입니다.

'오뚜기=갓뚜기'라는 공식

이번 오뚜기의 라면 가격 인상을 두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의견들을 내고 있습니다. 그중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오뚜기는 그래도 된다"고들 하십니다. 13년간 가격 인상을 하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인상하는 것은 용인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여기에는 그동안 오뚜기가 쌓아온 '갓뚜기' 이미지도 투영돼있습니다. 착한 기업이니 서민 식품인 라면 가격을 인상해도 괜찮다는 여론이 형성된 거죠.

오뚜기는 실제로 갓뚜기의 칭호를 들을만했습니다. 일부 대기업들과 달리 성실한 상속세 납부부터 오랜 기간 지속해온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과 장학 사업, 거의 100%에 육박하는 정규직 비율 등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아, 갓뚜기 칭호의 이유 중 하나로 가장 오랫동안 라면 가격을 올리지 않은 것도 포함되네요. 그런데 이번 인상으로 이 이유는 이제 빠져야 될 듯싶습니다.

물론 오뚜기의 '갓뚜기' 칭호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알고 보면 갓뚜기가 아니라는 의견이죠. 하지만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웬만해서는 바뀌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뚜기의 라면 가격 인상으로 가장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곳들은 경쟁사들인 농심이나 삼양식품 등입니다. 오뚜기는 13년 만에 이제야 올렸는데 너희들은 왜 그렇게 자주 올렸냐는 비난이죠.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농심이나 삼양식품과 오뚜기는 사업 구조가 다릅니다. 농심이나 삼양식품은 오뚜기처럼 많은 제품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농심은 라면류와 스낵류가 주요 제품입니다. 삼양식품의 경우 오래전 우지(牛脂) 파동의 후폭풍에서 헤매다가 이제야 '불닭'시리즈로 빛을 보기 시작한 곳입니다. 오뚜기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이번 오뚜기의 라면 가격 인상을 두고 라면 업체들끼리 "오뚜기가 그래도 가장 이미지가 좋으니 총대를 메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립니다. 라면 업계는 그동안 다들 실적 악화로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격 인상은 모든 업체들의 소원이었죠. 그러니 오뚜기가 총대를 메면 그래도 여론의 뭇매를 덜 맞지 않겠냐는 계산을 했다는 겁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일면 이해도 갑니다.

일각에서는 시기적으로 일부러 최저 임금 인상 발표 시기와 맞물리게 가격 인상을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는 '라면 업체들이 소비자들의 여론을 늘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무서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오뚜기가 '총대'를 멨으니 이제 농심과 삼양식품도 시기가 문제일 뿐 가격 인상에 나설 겁니다. 소비자들의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말이죠.

오뚜기의 13년 만의 라면 가격 인상은 주목받을 만한 일입니다. 대표적인 서민 식품인 라면의 가격을 그 오랜 기간 인상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입니다. 다만 이제 가격이 오른 만큼 소비자들도 더 맛있고 다양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요? 전 '갓뚜기'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은 퇴근해서 진라면 하나 끓여야겠습니다. 파 '송송' 계란 '탁'해서요. 전 '매운맛'이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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