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보면 어느 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알코올에는 '맛'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없습니다. 알코올은 무색, 무취, 무미의 액체입니다. 우리의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 성분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면 빨리 취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몸'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서 알코올의 냄새를 맡거나 맛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알코올에도 '맛'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면서입니다. '맥주'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무알코올 맥주는 술을 마신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무알코올 맥주는 맥주에서 알코올을 빼거나 극소량만 남긴 것을 말합니다. 무색, 무취, 무미의 알코올을 뺐다고 해서 맛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일반 맥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취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알코올만 쏙 뺐을 뿐인데 왜 이렇게 다른 존재가 되는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현듯 혹시 우리가 몰랐던 알코올의 맛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알코올 맥주를 만드는 업체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알코올 맥주는 왜 일반 맥주와 맛이 다른지 말이죠. '우문(愚問)'이었을까요. 업체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놀란 목소리였습니다. 최대한 맥주 맛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왜 맛이 다르냐'고 물으니 그럴 수밖에요. 죄송했지만 그래도 물었습니다.
'알코올의 맛'을 논하기 위해서는 일단 무알코올 맥주를 만드는 제조법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 맥주는 보리를 가공한 '맥아'를 발효해 만든 술입니다. 여기에 홉과 효모를 더해 만드는 게 일반적입니다. 반면 무알코올 맥주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비발효법과 발효법입니다.
비발효 제품은 하이트진로의 '하이트제로'와 롯데칠성음료의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가 대표적입니다. 이 두 제품은 발효 과정 없이 맥아 액기스에 홉과 향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제조합니다. 맥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원료가 들어가는 건 맞지만 제조법은 전혀 다른 겁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탄산음료 제조 공정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상 '맥주 맛 음료'인 겁니다. 그러니 이런 제품들은 애초에 맛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물론 각 업체가 지속해 제조 공법을 발전시키면서 맥주 맛과 점점 비슷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발효 제품을 볼까요? 국내 브랜드 중에서는 오비맥주의 '카스 제로'가 발효법으로 만든 무알코올 맥주입니다. 일반 맥주와 동일한 원료를 써서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 단계에서 알코올만 '쏙' 빼는 방식입니다. 오비맥주는 이를 '스마트 분리공법'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든 제품은 정확하게는 '무알코올'이 아니라 '비알코올' 제품으로 분류됩니다. 알코올은 빼내기는 하지만 전부 없애는 건 불가능해 소량의 알코올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카스 제로의 경우 0.05% 미만의 알코올이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앞서 언급한 비발효 무알코올 제품들에는 뚜렷한 장점이 있습니다. 임산부 등 술을 전혀 마실 수 없는 분들에게는 '비알코올'보다는 무알코올 제품이 딱입니다.
발효 방식은 아무래도 일반 맥주와 같은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비발효 방식보다는 맥주 특유의 풍미가 잘 구현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외 브랜드 중에서는 '하이네켄 0.0'이나 '칭따오 논알콜릭' 제품이 이런 공정으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이런 제품 역시 일반 맥주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맛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똑같이 만들다가 마지막에 알코올만 뺐는데 왜 일반 맥주와 맛이 다른가요?"라고 말이죠.
오비맥주 관계자는 "알코올도 맥주 맛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알코올을 빼면 일반 맥주와는 맛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연 설명도 있었습니다. 알코올을 분리한 뒤 달라진 맛을 보완하기 위해서 비타민C 등 기타 첨가물을 넣어 맥주 맛을 구현했다는 설명입니다.
제조 업체들의 설명을 종합하자면 이렇습니다. 알코올 자체에는 맛이 없을지 몰라도, 알코올이 맛을 내는 주요 요소인 것은 맞다는 설명입니다. 발효한 맥주에는 수많은 성분이 있는데 그 중 알코올 역시 맥주 맛을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인 것도 같습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 이게 음료가 아니라 '술'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향과 맛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의 혀는 알코올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겁니다. 알코올에도 '맛'이 있는 겁니다.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디카페인 커피'입니다.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을 제거한 원두로 만들어집니다. 커피 제조사들은 그 원두를 구매해 일반 커피와 똑같은 방식으로 제품을 만듭니다. 그런데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보면 뭔가 맛이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카페인은 무색, 무취의 화합물인데, 왜 다를까요. 아마도 우리의 혀는 '카페인'의 존재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무알코올 맥주를 공부하다 보니 알코올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건강을 위해 과음은 안 되겠지만 가끔 한두 잔 정도의 맥주는 괜찮지 않을까요? 오늘 저녁은 각자 취향에 따라 일반 맥주나 무알코올 맥주를 골라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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