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보면 어느 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흰 우유 좋아하시나요? 저는 학창시절 매일 200㎖ 종이팩에 나오는 급식우유가 너무 먹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초코 맛이 나는 가루를 타먹기도 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바꿔 먹곤 했었는데요. 유일하게 유리병에 든 흰 우유는 곧잘 먹곤 했습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플란다스의 개'라는 만화가 큰 인기였습니다. 주인공 소년은 우유가 담긴 커다란 양철통을 수레에 끌고 다니면서 주민들에게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데요. 주민들이 소년에게 구입한 흰 우유를 유리병에 담아 먹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유리병에 든 흰 우유가 먹고 싶어졌죠.
요즘은 흰 우유가 대부분 종이팩에 담겨 판매되고 있지만 흰 우유가 국내에 처음 출시됐을 땐 180㎖짜리 유리병에 담겨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흰 우유를 대량 유통하기 시작한 건 1937년 서울우유입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병을 만드는 공장이나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병을 구입했습니다. 우유를 담는 병이 비쌌던 탓에 부유한 집에서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해방 후 1960년대에 들어 정부가 낙농장려정책을 펼치면서 남양유업, 매일유업, 한국야쿠르트(현재 hy) 등 유가공 업체들이 생겨났습니다. 1962년에는 국내에도 유리병 제조회사가 탄생했습니다. 병의 입구를 비닐과 종이로 덮는 방식이었습니다. 유리병 포장은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죠. 이후 1973년 매일유업에서 국내 최초로 '테트라팩'을 도입하면서 종이팩이 우유 포장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 우유 종이팩은 '살균팩'과 '멸균팩'으로 나뉩니다. 맨 처음 도입됐던 '테트라팩'은 75%의 종이와 20%의 폴리에틸렌, 5%의 알루미늄 호일로 만들어진 멸균팩입니다. 포장재 안에 기포가 들어가지 않도록 긴 튜브를 통해 우유를 흘려 넣어 밀봉한 후 가열하는 방식입니다.
'멸균'이라고 적힌 우유는 이 테트라팩으로 포장된 제품입니다. 알루미늄 호일이 빛과 산소를 차단해 1개월이 넘도록 보관이 가능합니다. 뿔이 없는 직육면체 형태의 우유팩들은 대부분 '테트라팩'입니다.
반면,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팩은 살균팩입니다. 종이 양면에 폴리에틸렌(비닐) 코팅을 한 제품으로 '카톤팩'이라고도 부릅니다. 유통기한은 제조 날짜부터 길어야 14일 전후로, 멸균팩보다 훨씬 짧습니다. 몸체는 육면체에 상단이 삼각지붕 모양으로 돼있습니다. 가장 흔히 접하는 우유 포장재입니다.
종이팩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흰 우유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대중적인 음료 포장재인 알루미늄 캔에 담긴 우유는 아예 출시된 적도 없습니다.
초등학교 과학탐구 중 우유의 부패 여부를 실험하는 내용이 있는데요. 캔과 종이팩에 우유를 넣고 밀봉한 후 보관했을 때 캔에 담긴 우유가 더 빨리 상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유에는 마그네슘, 철분, 칼슘 등 미네랄이 풍부합니다. 미네랄도 금속 성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금속 용기인 캔에 담을 경우 금속 성분들이 찌꺼기 형태로 변하면서 상하기 쉽습니다.
또 캔은 열전도율이 높아 0~10도 사이의 저온 보관을 해야 하는 우유의 신선도를 해칠 수 있습니다. 또 유리병은 종이팩보다 제작 및 유통 비용이 더 비싸고 무거운데다 깨지기 쉽습니다. 결국 우유의 포장재가 대부분 종이팩인 이유는 신선도와 비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활용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우유 종이팩에는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재활용 문제인데요. 폴리에틸렌과 알루미늄 호일이 들어있는 살균팩과 멸균팩 모두 종이, 박스 등 일반 폐지와 함께 버리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우유팩은 재활용을 위해 코팅 재질을 벗겨내고 종이만 따로 분리해서 화장지 등으로 재탄생합니다. 우유팩은 종이, 박스 등 일반 폐지와 무분별하게 뒤섞일 경우 재활용되지 않고 폐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환경부에 따르면 유리병이나 캔은 재활용률이 70~80%에 달하는 반면 종이팩은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대로 분류 배출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알루미늄 호일이 들어간 멸균팩은 내년부터 일반쓰레기로 버리도록 지침이 바뀌었습니다. 환경부가 올해 초 '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지침'을 일부 개정하면서 내년부터 멸균 종이팩을 '재활용 어려움' 표시 대상으로 분류했기 때문입니다.
종이팩은 탄소 발자국을 제일 적게 만드는 포장용기로 꼽힙니다. 종이팩이 제대로 재활용되기 위해서는 살균 종이팩만 따로 묶어서 별도로 버려야 한다는 점 꼭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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