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레깅스 시장 선두 젝시믹스가 다음 무대를 중국으로 잡았습니다. 젝시믹스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현지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는데요. 보통 해외법인 설립은 해당 시장에 힘을 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현지 업체를 통해 시장에 진출하고, 잠재력을 확인한 후 '컨트롤 타워'를 세우는 것은 해외 사업의 공식이나 다름없죠.
젝시믹스는 일단 중국 시장에서 신사업인 화장품(젝시믹스 코스메틱)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업력은 짧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서입니다. 젝시믹스 코스메틱은 지난 3월 론칭 이후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론칭 한달 만에 매출이 전달 대비 10배 늘었죠. 해외 시장 반응도 나쁘지 않습니다. 내후년 매출 2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젝시믹스의 최종 목표는 중국 레깅스 시장일 겁니다. 젝시믹스의 화장품 사업은 어디까지나 부업입니다. 본업인 레깅스와 시너지를 내기 위한 사업이죠. 젝시믹스는 젝시믹스 코스메틱의 핵심 가치가 '애슬레저 뷰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거나 마스크를 벗을 때 묻어나지 않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죠. 이는 결국 레깅스의 '사이드킥'격 제품으로 화장품을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젝시믹스는 꾸준히 해외 레깅스 시장을 노크해 왔습니다. 올해 초 83억원 규모의 중국 해외총판·수출 계약을 따냈죠. 이 계약은 최소 판매액을 보장하는 '미니멈 개런티' 계약이었습니다. 미니멈 개런티는 수입사에게 다소 불리합니다. 수출사에게 수익을 약속한 만큼 반드시 물건을 팔아야만 하니까요. 때문에 수입사가 적극적으로 유통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젝시믹스도 이런 계약의 효과를 봤습니다. 중국 진출 직후 티몰·징동닷컴 등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하는 데 성공했죠.
그런데 의문이 생깁니다. 최근 중국은 자국 화장품 육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정부부터 해외 기업의 시장 잠식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죠. 레깅스 시장은 너무 작습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중국 레깅스 시장 규모는 4000억원 가량입니다. 여성복 시장 내 비중은 0.2%정도죠. 인구가 20분의 1인 국내 시장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죠. 더군다나 중국은 아직 보수적 사회입니다. 몸매를 노출하는 의류를 꺼리죠. 때문에 시장의 미래 성장세도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럼 젝시믹스는 왜 중국을 신규 시장 개척의 전초기지로 점찍었을까요. 바로 '가능성' 때문입니다. 미국·유럽 등 레깅스의 본고장에서는 다양한 브랜드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레깅스 하면 떠오르는 룰루레몬은 물론, 명품 브랜드들도 레깅스를 팔고 있죠. 중·저가 시장 현지 브랜드도 탄탄합니다. 이런 시장에서 젝시믹스는 이길 가능성이 적은 '언더독'입니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경쟁해야만 하죠. 따라서 높은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싸게 팔아야 하니,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시키기는 더 어렵겠죠.
반면 아시아는 상황이 다릅니다. 룰루레몬을 명품으로 대접하는 것은 아시아도 비슷합니다. 일본·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죠. 다만 중·저가 시장에는 아직 절대강자가 없습니다. 시장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동남아시아 시장에는 마땅한 레깅스 전문 기업도 없습니다. 젝시믹스를 비롯한 국내 레깅스 기업들이 파고들 수 있는 시장의 틈이 충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케팅만 잘 하면 '프리미엄' 시장에 진입할 수도 있고요.
아시아 시장에서는 상품의 경쟁력도 높습니다. 룰루레몬 등 서구의 레깅스 브랜드들의 주력 상품은 서양인의 체형에 맞춤 제작돼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다리가 짧고 굵은 동양인들이 입기 어려운 상품도 많죠. 동양 문화권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타구니의 'Y존' 노출을 가려주는 상품도 적습니다. 반면 국내 레깅스 제조사들은 이런 단점을 보완한 상품을 오래 전부터 만들어 왔죠. 제조 노하우도 탄탄합니다. 이는 중국 시장 공략에 분명한 강점이 될 겁니다.
중국 시장의 절대적 규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앞서 살펴봤듯 중국 레깅스 시장은 아직 작습니다. 하지만 이는 여성복 시장의 겨우 0.2%가 4000억원이라는 의미기도 합니다.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으니까요. 적은 인원이 레깅스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시장 규모는 국내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한국·일본의 유행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시장입니다. 레깅스를 즐기는 트렌드가 탄력을 받아 확산한다면,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젝시믹스에게도 새로운 시장은 절실합니다. 패션 시장의 트렌드는 빠르게 변합니다. 특히 평상복이 아닌 운동복 시장의 트렌드 변화는 더 빠르죠. 아웃도어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2조원 규모였습니다. 2014년 7억원에서 5년만에 3분의 1로 쪼그라들었죠. 레깅스 시장 성장세도 조금씩 꺾이고 있습니다. 2016년의 전년 대비 성장률은 12.3%였지만, 2019년에는 2018년에 비해 4.9%만 성장했죠.
이것이 젝시믹스가 중국의 문을 두드려봐야 할 이유입니다. 국내에서 애슬레저 트렌드가 주목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코로나19 확산과 워라밸 문화 정착 등에 힘입었죠. 이와 함께 여성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레깅스가 수혜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행이 영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미국처럼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자리 잡는다 해도, 시장이 지금처럼 가파르게 성장하지는 않겠죠. 결국 젝시믹스에는 중국 시장에 ‘진출해야만’ 합니다.
젝시믹스는 '강한 브랜드'입니다. 시장의 개척자이자 압도적 선두였던 안다르를 앞지르는 어려운 일을 해냈죠. 안다르처럼 마케팅에 유리한 '셀럽 브랜드'도 아니었는데도요. 이제는 안다르가 젝시믹스의 성장 동력이었던 D2C(소비자 직접거래)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젝시믹스는 중국 시장에서도 이런 성공을 재현해 낼 수 있을까요. K-레깅스는 글로벌 레깅스가 될 수 있을까요. 한 번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