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엔데믹에 유통업계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을 새단장하고, 프로모션을 전개하는 등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하지만 면세점은 예외다. 영업 정상화가 시작된 것은 마찬가지지만 '고객'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부 지원책 대부분은 '생색' 수준이며 시대착오적 규제도 그대로다. 이런 가운데 최대 시장인 인천국제공항이 관세청과 인천공항공사(인천공항)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관세청은 인천공항에 면세점 입찰 절차 개편을 요구했다. 당초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은 인천공항 자체 심사 후 관세청에 후보를 단수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관세청은 이를 복수 추천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인천공항은 관리·감독과 임차인의 선정은 결이 다르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갈등이 장기화될 시 하반기 예정돼 있는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도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청·인천공항의 갈등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관세청은 인천공항이 출국장 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하던 관행을 문제삼았다.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자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가 중재에 나섰다. 그 결과 인천공항이 후보를 복수 추천하고, 관세청 특허심사위원회가 사업자를 선정하는 시스템이 완성됐다. 관세청 평가에 인천공항 평가 결과가 50% 반영되며 인천공항도 '실속'을 챙겼다. 2019년부터는 지금과 같은 단수 추천 방식이 다시 굳어졌다.
이 갈등이 단순히 두 기관 사이의 '힘겨루기'는 아니다. 관세청은 면세점 사업자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이다. 당연히 입찰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권한이 있다. 인천공항에게 면세점은 핵심 사업이다. 이익 상당 부분이 면세점에서 나온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수익성과 공공기관 평가를 좌우한다. 하지만 이 사이에 낀 면세점업계에서는 그 '시점'이 좋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절차 다툼에 앞서 산업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면세시장의 상황은 최악에 가깝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1조3833억원이었다. 해외입국자 자가격리 조치가 해제되며 전월 대비 내국인 고객이 32%, 외국인 고객이 31% 늘었지만, 매출은 오히려 17% 감소했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뒤늦게 유행하며 다이공(보따리상)의 방문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 정상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이 찾아오도록 만드는 '인프라'다.
인천공항은 이 인프라의 핵심 요소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코로나19 이전 연 2조원 대 매출을 기록하던 세계 1위 영업장이었다. 이번 입찰은 규모도 크다. 총 18개 사업권 중 15개가 입찰 대상 구역이다. 입찰 결과에 따라 국내 면세점 순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그 사이 시장 상황이 변했다. 중국이 하이난 면세특구를 앞세워 인천공항의 1위 자리를 빼앗은 지 오래다. 안정적 운영이 담보될 수 없다면 경쟁 자체가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 시대착오적 규제의 틀조차 깨지 못하고 있다. 최근 면세점 '구매한도'를 폐지하면서 '면세한도'를 80만원 수준으로 유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세계 평균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잘못된 근거다. 국내 면세산업의 실질적 경쟁 상대인 중국은 94만원, 일본은 199만원의 면세한도를 운영 중이다. 특히 하이난의 면세한도는 무려 1900만원에 달한다. 이들을 상대로 국내 면세점이 매력을 유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제 정세도 면세점에게 불리하다. 최근 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선언했다. IPEF는 대(對) 중국 압박을 위한 미국 주도 경제·안보 플랫폼이다. 중국 언론은 IPEF가 '경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마찬가지라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사드 배치 후 '한한령'이 발동됐던 2016년이 재현될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이 경우 면세점은 또 한번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면세점 입장에서는 규제와 국제정세가 '이중고'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부가 IPEF 참여를 거부하기는 어렵다. 일단 한미동맹이라는 관계 유지에 필요한 일이다. 신냉전이 격화되고 있는 만큼 국익을 위한 냉정한 선택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결정에 따른 피해를 입는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만큼은 없어야 한다. 스스로 경쟁력을 마련할 기틀이 없는 산업이라면 지속 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 규제를 폐지하고, 불필요한 행정적 갈등을 피해야만 하는 이유다.
면세업계는 해외 시장에 뛰어들고 매장을 재단장하는 등 '리오프닝'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천공항의 상황에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입찰이 늦어질수록 매장 등에 대한 적극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며 "관광 재개에 따른 시장·업계 회복 속도도 크게 더뎌질 것이며, 이는 산업 경쟁력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과 인천공항의 해묵은 갈등이 면세점의 또 다른 '족쇄'가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