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가 채식 시장을 겨냥해 '두수고방 컵밥·죽'을 들고 나왔다. '두수고방'은 사찰 음식으로 유명한 채식 레스토랑이다. 오뚜기는 이 두수고방과 손잡고 신제품을 출시했다. 오직 '채식 재료만을 사용한 가공식품'이라는 게 오뚜기의 설명이다. 컵밥·파우치죽은 가공식품의 상징과도 같다. 오뚜기는 여기에 '채식 전략'을 입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관건은 제품의 품질과 마케팅이다. 아직 컵밥 등 가공식품에 대한 다수 소비자의 인식은 '가성비'다. 싸고 푸짐한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반면 두수고방 제품은 일반 제품보다 가격대가 높다. 차별성이 뚜렷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채식이라는 '소비 포인트'를 만들었지만 대중성은 아직 미지수다. 업계에서도 오뚜기 두수고방 제품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
'건강한' 가정간편식
오뚜기는 지난 21일 경기 수원시 광교 두수고방에서 두수고방 컵밥·죽 출시 기념 행사를 열었다. 두수고방은 '사찰음식 대가' 정관 스님의 제자인 오경순 셰프가 운영하고 있다. 오뚜기는 두수고방 컵밥·죽이 제조 단계부터 두수고방의 노하우를 담은 차별화된 제품이라고 밝혔다. 강점으로 취나물, 곤드레, 고사리 등 일반 가공식품에서 볼 수 없는 채식 재료를 꼽았다. 건강한 가정간편식(HMR)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의 입맛도 사로잡겠다는 생각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명원 오뚜기 마케팅실 팀장은 "올해 가정간편식 시장은 5조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특히 RMR(레스토랑 간편식) 제품군 역시 지난해 매출성장률이 전년 대비 60%를 웃돌 만큼 소비자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채식과 가정간편식에서도 맛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두수고방과의 협업으로 다양한 원료를 사용한 컵밥과 죽을 선보인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두수고방 컵밥·죽은 채식과 가정간편식 시장을 동시에 노린 제품이다. 둘 다 성장세가 좋은 시장이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지난 2008년 15만명에서 올해 200만명까지 증가했다. 비건 인증 식품도 늘고 있다. 지난 2021년 한국비건인증원의 비건 인증을 받은 식품은 286개로 나타났다. 2018년에는 13개에 불과했다. 여기에 HMR시장도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 오뚜기는 프리미엄 채식 가정간편식 전략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두수고방 컵밥·죽은 총 8가지 제품이다. 컵밥은 △산채나물 비빔밥 △버섯들깨미역국밥 △시래기 된장국밥 △모둠버섯밥 등 4종으로 출시됐다. 죽은 △수수팥범벅 △들깨버섯죽 △된장보리죽 △흑임자죽 등 4종이다. 특히 오뚜기 측은 국산 원료만을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오경순 셰프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것이 특징"이라며 "한국형 채식의 정수를 담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재료 본연의 맛"…과연?
오뚜기의 두수고방 컵밥 제품을 직접 먹어봤다. 기자가 시식한 제품은 ‘산채나물 비빔밥’이었다. 구성은 일반 컵밥과 같다. 맨 위 뚜껑 부분에 즉석밥이 있고, 내부에 채소와 소스가 들어간 파우치, 참기름 등이 들어있다. 오뚜기의 설명처럼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채소였다. 흰 밥 위에 취나물, 곤드레, 고사리 등이 올라가자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했다.
숟가락으로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 고소한 참기름 향이 확 퍼졌다. 채소의 씹히는 질감도 나쁘지 않았다. 가공식품치고 원물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맵고 짠 컵밥 특유의 자극적인 맛이 없어서 좋았다. 비빔밥과 함께 맛본 버섯들깨미역국밥은 들깨의 고소함과 미역의 깊은 맛이 잘 어우러졌다. 흑임자죽과 수수팥범벅 역시 재료 본연의 맛이 인상적이었다. 말 그대로 전반적인 '건강한 맛'이었다. 프리미엄 채식 HMR 콘셉트가 제대로 반영된 제품이다.
바쁠 때 한 끼 식사 대용으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단점은 가격이다. '오뚜기몰' 기준 두수고방 컵밥 4종의 가격은 5980원, 죽 4종의 가격은 4480원이다. 비슷한 사이즈의 오뚜기 컵밥이 2900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높은 가격이다. 높은 가격을 고려하니 살짝 재구매가 망설여졌다. 이 정도 가격이면 나물 반찬을 사서 먹거나 도시락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채식 입힌 HMR '통할까'
오뚜기 두수고방 컵밥·죽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출시 자체는 영리한 선택이라는 평가다. 가정간편식 수요는 지난 팬데믹 기간 크게 증가했다. 집안 생활이 늘며 조리가 편한 가정간편식을 택하는 이들이 늘었다. 수요의 면면도 다양해졌다. 좀 더 건강한 가정간편식을 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두수고방 제품은 이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오뚜기가 채식을 필두로 컵밥 등 분야에서도 새로운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국내 시장에서 프리미엄 가정간편식은 외식의 대체재에 가깝다. 팬데믹 기간 가정간편식의 수요가 늘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외식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 배달 등 시장이 커진 것도 리스크로 평가된다. 여기에 프리미엄 가정간편식은 대중에게 낯설다. 아직 외식과 간편식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다. 바꿔 말하면 양 사이에서 어중간한 상품이라는 의미다. 채식 외 특별한 '소비 포인트'가 없다면 대중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두수고방 컵밥·죽 제품의 판매가는 일반 제품 대비 높은 편이다. 오뚜기 측은 제품의 품질을 가격 책정의 이유로 설명했다. 실제로 고사리와 나물 등 일반 가공식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재료들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가정간편식의 핵심 경쟁력은 가격이다. 특히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며 이같은 인식인 더 강해졌다. 아울러 가공식품이 일반 식품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시장의 인식도 문제다. 관건은 품질과 마케팅을 통한 소비자 설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뚜기의 채식 전략에는 기존의 인스턴트·가공식품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라며 "아울러 두수고방 제품을 통한 프리미엄 라인 제품 확보도 노림수"라고 평했다. 이어 "최근 첣은 층 사이에서 가치소비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채식 시장이 커지고 있다. HMR 시장의 성장세도 여전하다. 식품 기업인 오뚜기는 '새 먹거리'가 절실하다. 두수고방 컵밥과 죽은 오뚜기의 이런 고민이 묻어난 제품으로 보인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