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세업계가 중국 '왕서방'의 위협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면세점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을 노리고 있는 탓이다. 현재 입찰전에 참가해 업계의 '안방' 진출을 꾀하는 중이다. CDFG는 팬데믹 기간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몸집을 잔뜩 키운 기업이다. 2020년 스위스 면세업체 듀프리를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전은 현재 업계의 '핵'이다. 이곳에 누가 깃발을 꽂냐에 따라 향후 사업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이번 입찰전은 팬데믹 기간 계속 유찰되다가 3년 만에 재개된 '빅 이벤트'다.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기본 사업 기간도 10년으로 늘었다. 임대료 산정 방식도 '고정 최소보장액'(고정 임대료)에서 여객당 임대료로 완화됐다.
현재 국내 면세점 4사(롯데·신라·신세계·현대백화점)와 CDFG가 본격적인 입찰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눈여겨볼 곳은 이빨을 드러낸 CDFG다. 이전부터 한국 진출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현재 관세청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등 입찰전에 칼을 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토종 업체들이 CDFG를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본력이다. 국내 업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제대로 영업조차 하지 못했다. 신라와 롯데 등 대기업 면세점들도 적자 폭이 커지거나 적자로 전환했다. 반면 CDFG는 이 기간 중국 정부의 지원을 업고 세계 1위가 됐다. 하이난 성 면세특구 지정, 면세 한도 상향 등 호재가 따랐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CDFG는 지난해 93억6900만유로(약 12조원)의 매출을 거뒀다. 이는 2위인 롯데면세점(40억4600만유로)과 3위 신라(39억6600만유로)의 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어느 업체보다 막강한 실탄을 쏟아부을 수 있다.
이 때문에 CDFG의 낙찰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면세점 입찰전은 사실상 '머니 게임'이기 때문이다. 면세점 사업권 1차 심사는 인천공항공사가 사업계획점수 60% 가격제안점수(임대료) 40%를 반영해 복수 업체를 정한다. 사실 제안서와 사업 계획서 같은 경우는 뻔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변별력이 크게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설마 싶지만 '한국의 대문'에 중국 국영 면세점이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인천공항 면세점에 외국 기업이 들어왔던 사례가 없던 것은 아니다. 과거 홍콩의 면세점도 DFS도 이곳에서 지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면세점을 운영한 바 있다.
다만 중국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실현된다면 국내 면세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업계 최대 고객층인 중국 유커, 따이공 수요를 모두 빼앗길 수 있다. 중국은 어느 국가보다 민족주의가 강한 국가다. 현재 중국 내에서도 '궈차오'(애국소비) 문화가 불고 있다. 이런 중국인들이 인천공항을 방문하면 자국 면세점으로 갈 것이 뻔하다.
CDFG의 시내면세점 진출 가능성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인천공항면세점을 통해 얻은 위상과 협상력으로 국내 진출을 가속화 할 수 있다. 팬데믹 이전 국내 면세점 이용객의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었다. 이를 두고 찰스 첸 CDFG 전 회장은 지난 2019년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한국 면세 산업의 절반은 중국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국내 면세산업이 장차 중국에 잠식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중소·중견 토종 면세점들은 경쟁력을 잃고 아예 사라질 수 있다. '외화획득'을 위해 시행한 면세점 특허가 도리어 외화유출 수단이 되는 셈이다. 업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물론 CDFG의 낙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자금력을 앞세운다고 해도 많은 변수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명 ’짝퉁‘으로 알려진 가품 논란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CDFG는 명품 빅3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를 유치한 실적이 없다. 국내 운영 경험도 없다. CDFG는 이런 측면에서 낮은 심사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다른 문제는 국내의 반중 정서다. 한국은 중국과 정치적으로 좋은 관계가 아니다. 과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도 있었다. 동북공정, 북한 등 문제로 시시각각 마찰이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CDFG가 인천공항에 입성하게 되면 많은 국민적 반발이 예상된다. 여기에 따른 인천국제공항과 관세청의 부담도 커질 것이다.
물론 일각에선 CDFG의 등장을 좋게 보는 시각도 있다. 소비자 선택권이 늘어날 수 있다는 측면이다. 하지만 국제적 갈등이 날로 첨예해 지고 있다. '산업 안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내 면세업계는 팬데믹 기간 절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의 안방을 중국 기업에 내주는 일이 과연 온당한지는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