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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페트 맥주, 일본처럼 단종될까?

  • 2023.04.02(일) 10:05

[생활의발견]갈색 맥주 페트병 퇴출 예정
투명 페트, 맥주 변질문제로 도입 어려워
"해외맥주 시장침탈, 수익성 악화 우려"

/그래픽=비즈워치

'사이다'하면 투명한 초록빛 페트병이 떠오릅니다. △칠성사이다 △815사이다 △킨사이드 등 사이다제품은 모두 초록색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초록색 사이다병은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사이다뿐 만이 아닙니다. 음료수부터 소주까지 모든 페트병에서 색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유색페트병은 분리배출이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재활용 분담금을 업체에게 부담시키고 있습니다. 이 탓에 투명페트병이 대중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맥주 페트병은 그대로입니다. △카스 △테라 △클라우드 등 주요 맥주브랜드는 여전히 갈색 페트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맥주회사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맥주 원재료인 홉의 '이소알파산' 성분이 자외선을 받으면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맥주를 상온에 오래 두면 불쾌한 지린내가 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환경부는 지난 2019년 말 국내 주요 맥주회사들과 2025년부터 갈색 맥주 페트병 사용을 금지하는 협약을 맺었습니다. 앞으로 투명페트병을 사용하지 않으면 페트 맥주는 마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요즘 같은 첨단시대에 대처 방안이 없을까요? 맥주 회사들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뚜렷한 방법은 없습니다. 한 맥주회사 관계자는 "맥주 페트병은 외부 자외선을 막기 위해 나일론 소재가 들어간다"면서 "제품 변질을 막으면서 페트병을 투명화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투명페트병은 식품 안정성을 담보를 할 수 없고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회사들은 페트 맥주를 단종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죠.

투명 페트병을 적용한 클라우드 생드래프트(420ml) /사진=롯데칠성

투명한 맥주 페트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롯데칠성음료는 2021년 8월 업계 최초로 클라우드 맥주 420ml 제품에 투명 페트를 적용했죠. 대신 페트병 표면 전체를 라벨로 덮는 방식으로 자외선 노출을 차단했습니다. 하지만 '무라벨' 페트병이 대세인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또 기술적인 한계로 대용량 제품에 라벨띠를 붙이긴 어렵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회사는 생드래프트 소용량 제품 외에 투명페트병을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페트 맥주의 최대 장점이 대용량 가성비인데 말이죠.

페트병에 특수 소재를 사용하는 방안도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수익성입니다. 원자재 단가가 올라 페트 맥주만의 장점을 잃게 됩니다. 맥주회사 입장에선 사업성이 없어 차라리 단종하는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 맥주회사 관계자는 "10~20여년 전 일본에서도 같은 이슈가 있었고 맥주회사들은 결국 페트 맥주를 팔지 않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맥주 페트병이 퇴출되면 업계 수익성 문제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페트 맥주는 캔 맥주와 함께 가정에서 잘 팔리는 맥주입니다. 맥주회사들은 불경기 가정용 맥주 수요가 높아지면 페트 맥주를 활용해 수익을 방어했습니다. 작년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경쟁적으로 2L급 대용량 페트맥주를 출시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페트병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대용량 맥주를 유통하기 어려워집니다. 무겁고 원가가 높은 탓에 캔과 유리병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 보다 먼저 페트사용을 자제해온 일본 등에서 대용량 페트 맥주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죠.

국산 맥주의 입지가 일부 축소될 것이란 우려도 있습니다. 국내 맥주 시장 중 15% 이상을 차지하는 페트병 맥주 수요는 국내 회사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페트병 맥주는 비교적 환경규제가 약했던 국내에서만 성장한 독특한 주류 형태입니다. 덕분에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등 국내 주류회사가 가성비 맥주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죠.

맥주회사들은 페트 맥주가 사라진 시장에 해외 병·캔맥주가 침투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한 맥주회사 관계자는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성장해온 페트 맥주가 사라지면, 해외 가성비 맥주가 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페트 맥주병 퇴출 기한은 앞으로 약 2년 남짓 남았습니다. 맥주회사들이 환경과 품질 모두 만족시킬 대체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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