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지난달 29일 두 가지 '깜짝' 소식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하나는 지난해 무려 7000억원에 가까운 이익을 냈다는 어닝 서프라이즈 소식과 또 다른 하나는 지난해 4월 모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에 4000억원대의 배당을 지급했다는 소식입니다.
배달앱만으로 1년 사이 벌어들인 수익도 놀라운데, 그에 앞서 2022년 이익의 대부분을 독일 모기업(딜리버리히어로·DH)이 꺼내갔다는 사실은 더 놀라웠죠. 일각에서는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거액의 돈을 꺼내가는 게 '국부 유출'이라며 우려하기도 합니다.
배달비가 크게 치솟은 상황에서 '내 배달료가 외국 회사 호주머니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이용자들도 많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의견을 의식한듯 우아한형제들은 언론에 배포한 실적 자료에 배당 이야기를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영업이익률 '20.5%'
우아한형제들의 지난해 실적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3조4155억원으로 전년(2조9471억원)보다 15.9% 증가했습니다. DH가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2020년만 해도 매출액은 1조336억원에 불과했습니다. 3년만에 덩치가 3배 넘게 성장한 셈입니다.
지난해 거둬들인 영업이익은 더 놀랍습니다. 지난해 연결 기준 6998억원으로 전년(4241억원)보다 65.0%나 늘었습니다. 계열사를 제외한 국내 법인의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7248억원에 달합니다. 이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한 쿠팡(6174억원), 유통업계 1위 롯데쇼핑(5084억원)의 지난해 연결 영업이익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의 연결 영업이익률은 20.5%로 웬만한 대기업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입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우아한형제들이 적자 행진 중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장 속도입니다.
우아한형제 측은 "배민B마트 등 그동안 지속적으로 투자해 온 커머스 사업이 결실을 맺고, 소비자 배달비 부담을 낮춘 알뜰배달 등 신규 서비스가 이용자 확보 및 유지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배민B마트 등 커머스 사업 부문이 포함된 상품 매출은 전년 대비 34% 성장한 6880억원이었습니다. B마트의 지난해 고객 평균 주문 금액은 사업 초기와 비교해 3배 가량 성장했습니다. 배민배달, 가게배달 등 음식배달 사업이 포함된 서비스 매출은 2조7187억원으로 전년보다 12.2% 늘었습니다. 이외에도 라이브커머스 '배민쇼핑라이브'를 종료하고 베트남 배민 사업 철수, 배민상회 직매입 사업 축소 등 비용 효율화 작업도 이익 증대에 도움이 됐습니다.
'럭키'한 DH
우아한형제들이 2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간 가운데, 모기업 DH는 거액의 배당금을 챙겼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3월 24일 이사회를 열고 4127억원의 중간 배당을 실시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베당금 지급은 4월 10일에 이뤄졌습니다. DH가 우아한형제들의 지분 99.07%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만큼 배당의 대부분이 DH의 몫이 됐습니다.
지급 시기는 2023년이지만 배당은 2022년 사업 실적에 대해 이뤄진 것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은 DH에 인수된 이후 2022년 처음으로 흑자를 냈습니다. 그 해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4644억원이었습니다. 다만 당기순이익은 946억원에 불과했죠. 싱가포르 법인 우아브라더스아시아홀딩스(WOOWA BROTHERS ASIA HOLDINGS Pte. Ltd.)에 투자한 주식에 대해 2407억원의 손상차손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당기순이익은 기업의 배당 재원이 됩니다. 배당성향을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런데 2022년 우아한형제들이 벌어들인 순이익은 1000억원도 안 되는데, 2023년 4월 DH는 400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아갔습니다. 2023년 중간배당으로 회계처리 됐기 때문에 실제 배당성향은 81.5%이지만, 기준이 된 2022년 실적을 바탕으로 하면 400%가 넘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건 우아한형제들이 일찌감치 자본잉여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했기 때문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은 2022년 12월 29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자본잉여금 5333억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자본잉여금은 영업이익 외에 증자, 감자, 자기주식 취득 등 자본거래에서 발생한 잉여금을 말합니다.
주식의 액면가액을 초과하는 금액으로 주식이 거래된 경우 이 초과금 역시 자본잉여금이 됩니다. 주주간 자본거래에서 발생한 잉여금이기 때문에 상법상 배당 재원으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배당으로 쓸 수 있는 이익잉여금으로 바꾼 겁니다. 따라서 이번 배당에 대해 따지고 보면 DH는 우아한형제들이 사업을 잘 해서 벌어들인 이익을 가져간 게 아니라, 자신이 투자한 자본금의 일부를 도로 꺼내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DH가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DH는 원래 배달의민족의 경쟁사인 '요기요'를 운영하던 기업입니다. 2020년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할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이 우려된다며 DH에게 요기요를 매각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DH가 현재 우아한형제들 대신 요기요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 거액의 배당 수익을 얻지 못했겠죠. 요기요를 운영하는 위대한상상의 지난해 매출액은 2857억원에 영업손실은 655억원이었습니다. 당기순손실은 4565억원에 달했습니다.국내 투자 늘린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당 이야기를 조심스러워 합니다. 아무래도 모기업이 외국 기업이다보니, 해외로 거액이 유출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배민1플러스' 도입으로 배달비와 수수료 논란에 다시 휩싸이면서 배달의민족에 대한 여론도 썩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처럼 높은 배당성향에 대해 "수년 새 고금리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투자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런 환경 때문에 투자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배당성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배당을 통해 최대주주가 돈을 벌어야 추가로 투자를 더 할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우아한형제들은 "DH는 최근에도 DH벤처스를 통해 한국 스타트업 2곳에 투자하는 등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 "2030년까지 외식업주 성장, 라이더 안전, 친환경 배달 분야에 2000억원의 사회적 투자를 실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DH벤처스의 투자 규모는 아직 크지 않습니다. DH벤처스는 시드 단계 혹은 시리즈A 단계의 스타트업을 위주로 투자 대상을 물색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의 투자는 보통 50억원 미만입니다. DH벤처스가 투자한 국내 기업은 화장품 브랜드 '어뮤즈(AMUSE)'와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시크(CHIC)'입니다.
DH벤처스는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어뮤즈에 2022년 총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했습니다. 시크에는 지난해 말 약 20억원의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 국내 스타트업에 재투자한 금액은 100억원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아한형제들이 지난달 13일 발표한 2000억원 규모의 사회적 투자에 대해서도 일각에선 '면피'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최근에 배민1플러스 도입을 두고 외식업주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인 데다, 대규모 배당이 포함된 감사보고서가 공시되기 직전에 발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아한형제들이 나쁜 기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많은 부분에 투자를 한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이 투자한 자금의 엑시트를 위해 배당을 가져가는 걸 '나쁘다'고 비난할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올해도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처럼 거액의 배당을 실시할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은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배당에 대해 제 때 알기 힘듭니다. 일단 지난해 말 기준으로 추가로 자본잉여금을 감액해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지난해 5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내면서 이미 이익잉여금이 제법 쌓여있으니, DH가 원한다면 언제든 배당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만큼 이 약속을 이행하는 게 먼저가 돼야하지 않을까요? 우아한형제들의 DH에 대한 막대한 금액의 배당이 못내 아쉬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