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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직진출이냐, 라이선스 연장이냐'에 대한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New Balance Athletic Shoe)의 답은 '둘 다'였습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의 본사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가 한국 시장에 직진출 합니다. 오는 2027년 1월부터 한국법인을 세우고 직접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로 한 건데요. 그런데 독특한 것은 이랜드월드와의 라이선스 계약도 5년 연장했다는 점입니다.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와 이랜드월드는 올해 말 종료되는 라이선스 계약을 다시 5년 연장해 2030년까지 파트너십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글로벌 패션 기업이 한국 직진출을 결정한 후에도 국내 라이선스 파트너와 계속 손을 잡는 것은 꽤 이례적인 일입니다.
1조 브랜드 됐다
뉴발란스는 1906년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출발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입니다. 육상 선수 전용 러닝화를 시작으로 야구, 농구, 축구, 테니스로 사업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매출은 78억달러(약 11조2000억원)에 달합니다.
한국에서 뉴발란스를 선보이는 기업은 이랜드월드입니다. 이랜드월드는 2008년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로부터 국내 독점 라이선스를 획득해 현재까지 국내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뉴발란스의 제품군 중 신발은 대부분 본사로부터 수입하고요. 의류의 경우 90% 가량을 이랜드월드가 디자인, 기획해 생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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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의 손을 잡은 뉴발란스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뉴발란스는 이랜드가 라이선스를 획득한 2008년 당시만 해도 마라톤을 즐기는 일부 마니아들에게만 알려진 브랜드였습니다. 하지만 이랜드가 라이선스 사업을 시작한 이듬해인 2009년에는 매출액이 65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는 2009년 말 이랜드와 11년(2010~2020년)의 초장기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시 계약을 위해 짐 데이비스 뉴발란스 회장이 직접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날아올 정도였죠.
이후 뉴발란스의 국내 매출은 2010년 1000억원, 2011년 3000억원, 2020년 50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원을 기록했습니다. 백화점 매출 기준으로 2021년부터 아디다스를 제치고 스포츠 브랜드 2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뉴발란스가 급성장하면서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가 벌어들이는 로열티(브랜드 사용료)도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이랜드월드가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에 지급하는 연간 로열티 규모는 2020년 296억원, 2021년 482억원, 2022년 378억원, 2023년 585억원으로 크게 뛰었습니다. 지난해에는 600억원이 넘는 로열티를 지급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직진출 하고는 싶은데...
뉴발란스가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이랜드의 역량도 중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뉴발란스는 해외에서 '스포츠 전문 브랜드'라는 인식이 더 강합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일상에서도 즐겨입는 라이프스타일 스포츠웨어로 알려져 있죠
뉴발란스의 기본 스니커즈 라인에 더해 이랜드가 라이선스로 기획, 생산한 의류 제품이 큰 인기를 끈 덕분이었습니다. 김연아, 아이유 등을 내세운 마케팅도 뉴발란스를 성장시킨 동력이었습니다.
이랜드는 뉴발란스에 앞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푸마'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랜드는 1994년 푸마의 국내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국내에서 푸마를 선보였는데요. 2008년 초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푸마를 국내 대표 스포츠 브랜드로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때의 경험이 뉴발란스를 성공시킨 자양분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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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가 2013년 론칭한 '뉴발란스 키즈'는 이랜드의 기획 역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랜드는 아동복으로 성장해온 강점을 내세워 세계 최초로 뉴발란스 키즈를 선보였는데요. 글로벌 본사에서는 뉴발란스 키즈 론칭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가 별도 키즈 브랜드를 내는 건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사례였습니다. 본사의 우려와 달리 뉴발란스 키즈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국내 뉴발란스 매출의 약 20~25% 가량은 키즈에서 나옵니다.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는 2020년 이랜드의 라이선스 계약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와 이랜드월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의 추가 라이선스 계약을 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 때 이랜드는 국내 독점 유통권 외에도 뉴발란스 성인 라인의 중국 10개 도시 유통권, 그리고 뉴발란스키즈의 중국 유통권을 함께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2020년 재계약은 뉴발란스의 한국 '직진출설'에 불을 붙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직전 계약의 계약 기간은 11년이었지만 2020년 재계약 때는 5년으로 반토막 났기 때문입니다. 패션업계에서는 뉴발란스가 5년 뒤 계약을 끝내고 한국에 직접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설이 돌았습니다. 본사 입장에서도 뉴발란스를 직접 운영하고 싶은 욕심이 들만한 시점이었습니다. 뉴발란스의 한국 매출은 5000억원을 넘겼고 성장률은 두자릿수였으니까요.
재계약의 종료 시점을 앞둔 지난해부터 뉴발란스의 한국 직진출 여부는 더욱 뜨거운 관심사가 됐습니다. 5년만에 뉴발란스의 매출은 두 배나 성장한 1조원이 됐으니 본사 입장에서는 이 돈을 직접 거둬들이고 싶겠죠.
현지 파트너의 중요성
업계의 예상대로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는 2027년 직접 한국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랜드와의 파트너십도 2030년까지로 연장했습니다. 내년까지는 이랜드가 독점 라이선스 사업을 운영하지만, 2027년부터는 본사와 이랜드가 한국에서 뉴발란스를 함께 운영하게 됩니다.
업계에서는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가 이랜드를 통해 한국 시장에 '연착륙' 하기 위해 재계약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외 현지 법인을 세우는 데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만큼 실패할 리스크도 큽니다. 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지 시장을 잘 아는 파트너를 두는 게 중요합니다. 뉴발란스의 경우 이랜드가 그 파트너가 되겠죠. 실제로 2008년 이랜드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직진출 했던 푸마의 경우 몇년간 매출이 줄면서 고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함께 시장에서는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가 이번 재계약으로 이랜드가 '경쟁사'가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랜드는 뉴발란스와의 계약 종료 후 다른 브랜드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또 다른 스포츠 브랜드가 될 가능성이 크죠. 뉴발란스와의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는 이랜드에게 이미 몇몇 해외 스포츠 브랜드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랜드는 푸마, 뉴발란스 등 라이선스 스포츠 브랜드를 국내에서 성공시킨 경험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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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발란스 애슬레틱 슈와 이랜드 양측의 파트너십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는 아직 논의 단계입니다. 뉴발란스 한국법인이 신발을 수입, 유통하고 이랜드가 의류의 기획, 판매를 지속할 가능성도 있고요. 2023년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계약을 종료하고 직진출한 '톰 브라운'의 사례처럼 이랜드가 뉴발란스의 유통만 관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랜드 입장에서는 뉴발란스를 이을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2027년부터 뉴발란스 한국법인이 일부 사업을 가져가는 만큼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랜드가 보유한 뉴발란스 중국 라이선스의 연장 여부 역시 중요합니다. 이랜드는 현재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와 중국 라이선스의 연장을 두고 협의 중입니다. 뉴발란스 키즈를 통해 중국에서 연간 2000억원 가량의 매출을 내고 있는 만큼, 이 라이선스를 연장하는 것 역시 이랜드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