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공식적인 통합 절차에 들어갔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지난달 3일 조기 통합의 필요성을 공론화한 지 불과 50여 일 만이다. 통합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이르면 올 연말쯤 하나•외환 통합은행이 출범하게 된다.
하나금융이 조기 통합 절차를 강행하고 있는 이유는 수익성 악화에 따른 위기의식이 첫 번째 배경으로 꼽힌다. 조기 통합을 위한 법률상 걸림돌이 해소된 데다, 외환은행 내부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는 판단도 한 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의 반발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계산도 깔렸다. 실제로 외환은행 일반 직원들 사이에선 조기 통합에 반대하는 여론이 대다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입장에선 투쟁 동력이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 김종준 하나은행장(왼쪽)과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19일 ‘통합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공식적인 통합 절차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
◇ 연말쯤 하나•외환 통합은행 출범할 듯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19일 ‘통합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공식적인 통합 절차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두 은행은 각각 다음 주 이사회를 열어 통합을 결의하고, 통합계약서를 승인할 예정이다.
이후 통합추진위원회 출범과 함께 두 은행의 주주총회를 열어 조기 통합을 최종 승인할 계획이다. 그러면 계획상으론 이르면 연내 하나•외환 통합은행이 출범하게 된다.
하나금융은 “외환 노조가 통합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협상에 진척이 없다”면서 “노조의 대답만 기다리다 시기를 놓치면 조직 내 혼란이 커질 수 있어 통합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외환은행은 지난달 7일 이후 조기 통합 협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11차례나 외환 노조에 전달했다. 하지만 외환 노조는 ‘2.17 합의서 위반’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협상에 임하지 않았다. 두 은행은 통합 선언 이후에도 양행 노조와 협의를 계속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 조기 통합 절차 강행 배경은
하나금융이 외환 노조의 반발을 무시하고, 통합 절차를 서두르는 건 일차적으로 경영상 위기감 때문이다. 두 은행의 수익성과 시장 지위가 계속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시간만 보내다간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법률상 걸림돌도 사실상 모두 없어졌다. 하나금융은 ‘5년간 독립경영’을 약속한 ‘2.17 합의서’와 관련해 최근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노사합의문은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앞서 외환 노조가 제기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무효 소송과 외환카드 분사 중단 가처분신청 역시 모두 기각됐다.
외환은행 내부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경영진에 이어 본점 부서장과 지점장들이 조기 통합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고, 외환카드 전적을 신청한 일반 직원 300여 명도 연내 카드부문 통합을 승인해달라는 호소문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반면 외환 노조는 여전히 강경 투쟁을 고수하고 있어 마찰이 예상된다. 외환 노조는 조기 통합 선언 후 성명을 통해 “하나금융이 마치 은행 내부에 합병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면서 “금융노조와 연대해 강력한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 조기 통합 반대하지만 어쩌겠나?
외환은행 일반 직원들은 조기 통합엔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대체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금융 측이 통합 후에도 고용안정은 물론 근로조건 유지 등 인사상 불이익은 없다고 밝힌 상태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반면 이번에 통합을 미룬다고 해서 계속 독립경영을 요구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무작정 반대하기엔 명분이 약하다고 본다. 하나금융이 내세운 논리대로 통합을 미뤘다가 경영 사정이 더 나빠지면 대규모 구조조정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다만, 본점 부서장과 지점장들의 조기 통합 지지 성명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은행 측의 압박에 따라 성명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외환은행 한 지점 직원은 “은행을 합치면 여러모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조기 통합을 환영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의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