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관료 출신은 찬바람을 맞았다. ‘관료 출신은 경영을 잘하지 못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 KB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낙하산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회장추천위원회의 부담도 꽤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후보에 올랐던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이 통보 한 시간여 만에 레이스를 포기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 사장은 옛 재정경제부 국고국장과 자산관리공사 사장을 지냈다. 자칭타칭 일본통이다. 그래서 예전 신한금융 사태가 터졌을 때도 신한금융 회장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아직 금융 CEO의 꿈을 접지는 않아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관료 낙하산 부담을 떨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 내부 vs 외부
형식적으로 보면 내부 출신은 5명이다. 그러나 내용은 각양각색이다. 금융감독원(김기홍)부터 학자(지동현), 경쟁은행(황영기) 출신 등으로 다양하다. 순수한 내부 출신은 김옥찬 후보뿐이다. 윤종규, 지동현 후보는 외부 출신임에도 김옥찬 후보를 제외하곤 가장 오랜 기간 KB에서 생활했다.
가장 뜻밖의 인물은 역시 양승우 후보다. 일단 금융 경력이 없는 상황에서 추천됐다. 이동걸 후보와 하영구 행장은 경쟁 은행 출신이라는 점에서 노조의 반발을 예상할 수 있다. 내부 출신에 방점을 찍는다면 김옥찬, 윤종규, 황영기 후보가 조금 앞서는 분위기다. 노조의 반발을 넘을 수 있다면, 정치적 변수와 은행장 경력 등으로 이동걸 후보와 하영구 행장도 마지막까지 레이스가 가능하다.
◊ TK 역풍, 호남 반사 이익?
후보 추천 직전 여러 매체에선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출신 지역 문제를 거론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좋든 싫든 우리 언론에서 많이 다룬다. 소위 지역 안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8명을 출신 지역별로 보면 서울 3명, 대구•경북 2명, 전남 3명이다. 회추위가 출신 지역을 주요 요인으로 보지 않더라도, 이는 사회적 문제여서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현 정권에서 호남이나 서울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그래도 TK라면 이동걸, 황영기 후보 모두 막상막하다. 지역 안배 분위기가 형성되면 윤종규 후보와 하영구 행장이 조금 앞선다. 논란을 아예 배제하기 위해 서울을 택하면 김옥찬 후보라고 봐야 한다.
◊ 전략 vs 재무
회추위는 회장과 행장 분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속내가 뭐든 ‘차기 회장이 결정할 문제’라며 공을 넘겨놨다. 은행 경험이 풍부하다면 겸임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분리하는 쪽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회장이 전략적인 측면에서 우위를 보인다면 은행 경영은 넘겨줘도 무방하다.
이렇게 보면 후보 중 김옥찬, 황영기 후보는 물론 윤종규, 이동걸 후보와 하영구 행장도 은행 경력이 풍부해 모두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김기홍, 양승우, 지동현 후보는 분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결과적으론 후보들은 면접 과정에서 이사회가 원하는 대로 입맛에 맞는 답을 제시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 8인의 레이스 주자들(가나다순)
▲ KB금융 회장 후보들. 윗줄 왼쪽부터 김기홍, 김옥찬, 양승우, 윤종규 후보. 아랫줄 왼쪽부터 이동걸, 지동현, 하영구, 황영기 후보. |
[김기홍]
학자 출신으로 금융감독원 부원장(1999년~2001년)을 지냈다. 금감원에서 보험 분야를 맡았다. 그 인연으로 故 김정태 행장 시절에 국민은행 사외이사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 국민은행이 KB생명을 출범시키면서 보험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후 국민은행 수석 부행장과 전략 담당 부행장을 역임했다.
김 후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보험 전문 학자에서 금감원 고위직, 다시 금융인으로 발돋움했으나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평가다. 국민은행의 후반부 생활에선 지주회사 설립 문제를 놓고 말이 많았다. 처음엔 지주회사 설립에 강하게 반대했으나, 나중엔 설립 기획단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대체로 현재의 KB금융 전체를 아우르고 조직을 다시 추스르는 데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김옥찬]
가장 확실한 내부 출신이다. 조직을 추슬러야 하는 일차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제일 유리하다. 여전히 실제로 존재하는 KB국민의 채널 문제에선 자유롭지 않지만, 마땅한 옛 주택 출신이 없다는 점에선 노조가 상대적으로 선호할 수 있다. 전략적 사고가 더 중시되는 지주회사 회장 자리의 특성을 고려하면 재무통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이 약점일 수도 있다.
전임 이건호 행장 선임 때 행장 경합을 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한가지 고려할 사항은 현재 김 전 부행장은 공석인 SGI서울보증보험 사장 후보에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 할 수만 있다면 KB금융 회장 자리를 원하겠지만, 레이스 상황에 따라선 선택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양승우]
초반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외의 후보다. 그러나 헤드헌터 시장에선 조금 달리 본다. 회계법인에서 잔뼈가 굵어 금융회사와 연관도가 높다는 점에서 꾸준히 이름을 올려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교적 명망이 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지만, 현재 KB금융의 산적한 난제들을 푸는 데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격한 내분 끝에 새 판을 짜는 상황에서 최대 계파(?)인 은행을 얼마나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양 후보의 특성상 은행장을 분리한다고 해도 여전히 분란의 씨앗을 달고 사는 셈이다. 전임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도 회장과 행장의 힘의 균형과 지휘통제가 무너진 결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윤종규]
25회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삼일회계법인에 있다가 故 김정태 행장과 함께 은행에 진입한 흔치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김 행장 퇴임과 함께 물러났으나 전임 어윤대 회장 때 다시 지주회사에서 CFO를 맡아 부활했다. 그래서 KB와의 인연이 꽤 긴 편이다. 김옥찬 후보를 제외하면 지동현 후보와 함께 KB를 제일 잘 안다고 봐야 한다.
KB로선 故 김정태 행장 재임 때가 상대적으로 제일 좋았던 시절인 만큼, 그의 스타일과 전략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점이 강점이다. 좋았던 시절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다. 또한, 현재 이사회 주요 멤버들의 스타일도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 이사회와 경영진의 소통 측면에서 유리하다. 전임 이건호 행장과 경합을 하기도 했었다.
[이동걸]
신한금융그룹에서 은행과 증권, 캐피탈 등을 모두 경험했다. 지주회사 회장으로서 다른 경쟁자보다 경험이 풍부하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캠프 활동이라는 후광도 있다. 그래서 레이스 초반 분위기는 상당히 강세다. 이번 레이스는 관피아 부담으로 관료 출신이 배제됐다고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캠프 경력이 레이스 후반에 어떻게 돌변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노조의 반발이 변수다. 노조는 사실상 후보 추천 전부터 이름이 올랐던 이 후보를 콕 찍어 반대하고 있다. 공식적으론 경쟁 금융회사 출신이라는 이유를 대고 있으나, 양날의 검인 캠프 생활 경력은 아직 입장 정리가 안 된 분위기다. 하영구 행장과 황영기 후보도 비슷하게 노조의 견제를 받고 있으나, 정도는 이동걸 후보가 더 강하다.
[지동현]
금융연구원 출신으로 오래전에 금융계에 입문해 학자적 색깔은 많이 털어냈다. 옛 조흥은행부터 국민은행, 국민카드 등에서 차분히 경력을 쌓았다. 이건호 전 행장 탓으로 학피아 논란이 있긴 하지만, 다년간의 금융회사 경력으로 어느 정도 부담을 떨쳐냈다. 노조의 반발도 세지는 않다.
지 후보의 약점이라면 나이다. 8명의 레이스 주자 중 제일 어리다. 나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실타래처럼 얽힌 KB금융의 문제를 수습하려면 연륜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회장 리스트업 과정에서 윤증현 전 장관처럼 명망가를 찾으려 했던 이유가 그런 것이다.
[하영구]
은행장이 직업인 후보다.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사들인 후부터만 계산해도 14년째다. 14년 동안 최고 경영자로서 충분히 검증됐다고 보는 분석이 많다. 게다가 후보 중에서 글로벌 마인드 부문에서 가장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국내 로컬 이미지가 강한 KB금융에 그의 글로벌 경력이 더해진다면 모양이 좋다는 평가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미국과의 가교로 활동하면서 관가에서도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레이스에 참여하긴 했으나, 씨티은행을 빠져나오는 시점은 논란이다. 전 세계적인 금융환경의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씨티은행의 경영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 탓에 하 행장이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를 주고 싶어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었다. 하 행장이 경쟁은행의 수장이기는 하지만, 아직 노조의 입장은 분명치 않아 보인다.
[황영기]
KB금융과의 질긴 인연이 화제다. 1년 남짓이긴 하지만, 이미 KB금융의 회장을 역임했다. KB금융에서 하차도 KB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은행 때의 징계로 도중 하차했다. 그러나 이 징계는 법원에서 취소됐다. 관치의 희생양이라는 억울함 속에서 KB금융으로의 복귀에 절치부심했다.
임영록 전 회장과도 경합했었다. KB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하다고 봐야 한다. 삼성그룹과 삼성증권 출신으로 우리금융 회장 시절엔 은행의 상당한 반발에도 옛 우리투자증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고 있다. 은행과 증권의 협업 체제 구축에 상당한 노하우가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