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증권업계는 신 사업 규제 완화를 적극 요구하는 반면 저축은행업계는 눈치만 보고 있다. 타 업계보다 강한 규제에도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나서지 못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을 바라는 분위기다.
◇ 규제에 막혀 영업 속도 못내
저축은행업계는 올해 최고금리 인하와 가계부채 총량 규제로 수익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루 빨리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 수익을 보전해야 하지만 규제에 막혀 막막한 상황이다.
체크카드사업이 대표적이다. 저축은행은 업무 범위를 규정한 표준업무방법서에 따라 저축은행중앙회를 통해서만 체크카드사업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상품을 선보일 때마다 저축은행중앙회와의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영업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 각 회사별로 차별화된 혜택을 담기도 쉽지 않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여러 절차를 밟다 보니 올해 체크카드의 ATM 수수료 면제 혜택을 도입하기까지 한참 걸렸다"고 토로했다.
저축은행의 할부금융 광고 심의 또한 여신금융협회와 저축은행중앙회를 모두 거쳐야 해 업계의 반발을 샀다. 금융당국은 중복 규제라는 비판을 받자 올 들어서야 광고 심의를 여신협회로 일원화했다. 광고 심의 사례에서 보듯이 과도한 규제로 업무 추진에 차질을 빚는 일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표준업무방법서에 허용된 업무 자체도 19개로 한정적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골드바만 판매 가능하다. 은행은 골드바, 실버바, 금과 관련된 모든 금융상품을 팔 수 있는 것과 대조된다. 은행과 달리 자사 스포츠팀 티켓을 팔 수 없다는 점 또한 저축은행의 불만이다.
◇ 은행, 증권 목소리 높이는데 눈치만
은행,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은 전통적인 영업수익 부진을 겪으면서 신 사업 규제 완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불특정금전신탁업무, 법인지급결제업무 등 서로의 밥그릇을 넘보며 신경전을 벌일 정도다.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둘 다 사업장벽을 낮춰달라는 요구다.
저축은행은 이들 업계보다 강도 높은 규제를 적용 받는데도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워낙 좋지 않아 여론의 반발에 부딪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금리로 손 쉽게 장사를 한다는 이미지 탓에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 조심스럽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저축은행이 기존에 벌인 신 사업부터 잘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펀드 판매와 신용카드 모집 수수료수익 등 허가 받은 부수업무로 얻는 수익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는 것. 어렵게 허가 받은 신 사업을 안착시키지 못했는데 추가로 규제 완화를 바라는 건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쉬쉬하지만 저축은행은 네거티브 규제(금지된 업무를 제외하고 모두 허용) 시스템을 바라는 분위기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똑같이 포지티브 규제(규정된 업무만 허용)를 적용 받더라도 저축은행은 업무 범위가 다른 업계보다 좁아 더 어렵다"면서 "은행, 저축은행 등 모든 업계가 다 같이 칸막이를 낮춰야 서로 자극을 받으면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