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17일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2016년 우리은행 신입사원 공채 추천 현황 및 결과' 문건은 사실 낯뜨거울 정도입니다. 우리은행 인사팀에서 만든 문건이라며 공개했는데요.
이 문서엔 금감원부터 국정원, 우리은행 전현직 임원, VIP고객까지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우리은행 신입직원 채용에 청탁을 넣은 명단인데요. 심 의원은 이를 채용비리, 채용특혜라고 주장했습니다. 문건에 나온 16명은 모두 신입사원으로 채용이 됐으니까요.
우리은행 측에선 강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은 블라인드 면접을 도입해 면접관이 지원자의 인적사항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해당 문건은 채용 과정에서 참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 아니라는 건데요. 청탁을 넣은 인사들이 모두 우리은행과 직간접으로 관계된 기관이거나 인사들이란 점에서 사후적으로 당락여부 등을 알려주기 위해 작성했다는 것이 우리은행 측 해명입니다.
문건을 보면 '결과' 란이 있는데요. 모두 '채용'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은행 측에선 실제로 채용되지 못한 사람이 더욱 많고, 채용된 사람만 추려 악의적으로 문건이 활용됐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문건 만으로 특혜채용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런 문건을 만들고 관리를 해왔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혹을 사기에 충분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심 의원은 "블라인드 면접을 하면 뭐하냐"면서 "제보된 바에 따르면 이 면접관들이 연필을 사용하도록 한다"고 말했는데요. 또 거래관계 상 즉시 거절하지 못하고 인사부에 추천을 전달해 명단을 작성한 사례를 인정했다고도 했습니다.
결국엔 우리은행의 이러한 대처가 특혜채용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떨어뜨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도 보입니다.
▲ 자료:심상정 의원실(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이 문건은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사청탁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에 충분히 힘을 넣을 수 있는 금감원이나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은 물론이고요. 일례로 국군재정단 연금카드 담당자를 보면요. 비고 란에 'RAR(위험비용을 반영한 손익) 2억3000만원, 연금카드 3만좌, 급여이체 1만7000건'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은행 센터장을 통해 청탁을 넣은 ** CFO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RAR 9000만원, 여신 740억원, 신규여신 500억원 추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은행 VIP고객들인데요. 당장 여신 몇백억원, 혹은 연금카드 몇만좌 등 손익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거래가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관련 센터장 혹은 부서장을 통해 인사 청탁을 넣은 겁니다.
심 의원의 말마따나 이런 일들이 우리은행에만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최근 한 대기업 간부로부터 들은 얘긴데요. 모 대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 한 사람당 청탁 전화가 수 건에서 많게는 10건까지 몰렸는데 문제는 이런 지원자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결국은 청탁 몸살에 채용을 중간에 취소했다고 하더군요. 굳이 '공정한 사회'라는 거창한 명제가 아니라도 청탁으로 인해 기업이나 은행, 혹은 공공기관 등에 끼치는 직간접적인 손실과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선의의 지원자들의 박탈감(어쩌면 기회상실)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요.
청탁을 받아 인사부에 전달한 자, 이를 내외부 보고용 문건으로 작성한 은행, 애초 청탁을 넣은 자. 이 청탁의 고리를 어디서부터 끊어야 할까요. 막막합니다. 다만 심 의원은 애초 비공개했던 청탁 명단 중 일부를 이날 국정감사장에서 공개했습니다. 청탁을 하면 오히려 '망신' 당하고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면에선 청탁 명단을 공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청탁을 대하는 자세도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