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핵폭풍급' 대변혁을 맞을지도 모르겠다. 금융위원회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금융회사에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검토를 권고하면서 금융회사 지배구조도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변화를 예고했다.
혁신위는 또 금융지주 회장 후보 자격을 신설해 낙하산 인사를 막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회장 후보 및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해 지주 회장의 참호구축 혹은 셀프연임도 개선할 것을 주문했다.
최근 금융지주 CEO 승계와 셀프연임에 대한 논란이 커진 상황에서 민간 위원으로 구성된 혁신위마저 지배구조에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어서 더욱 관심이 쏠린다. 특히 관치 논란에 대해선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이 "관치라고 볼 수 없다"고 일축하면서 금융당국에 더욱 힘을 실었다. 지배구조 전반의 변화에 더욱 속도를 낼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 노동이사제 근로자추천 이사제 도입
혁신위는 20일 금융행정혁신보고서를 내고, 낙하산 방지 및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를 위해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검토를 권고했다. 근로자추천이사제는 노동자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노동자 대표가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의 근로자이사제(노동이사제)와는 차이가 있다.
혁신위는 근로자이사제는 근로자의 경영참여로 내부 견제가 이뤄져 경영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했다. 근로자에게도 '조직 실적 개선'이라는 책임을 부여, 경영의 결과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노사간 시너지를 발휘하고 갈등이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이해관계자 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했다.
지난달 금융회사 중에선 처음으로 KB금융지주가 노조 측의 제안으로 근로자추천이사 선임을 주주총회 공식 안건으로 부의했지만 부결된 바 있다. 다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불씨를 남겼다. 국민연금은 대부분의 금융지주 혹은 은행의 단일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혁신위는 OECD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언급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해 불투명한 최고경영자 선임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CEO 승계 문제를 개선하거나 혹은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는 시각도 담겼다. 같은 맥락에서 금융당국 역시 이같은 안을 적극 수용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윤석헌 위원장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권고안을 최대한 수용해주겠다고 했다"고도 말했다.
아직까지 금융회사 경영진들은 "주주들이 결정할 사안(주총 결의사안)"이라고 미루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당국의 입장에 따라선 노사간에 도입 논의를 활발히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지난달 20일 KB금융 주총에서 노조 측에서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두고 노사간 대립이 불거지기도 했다. 해당 안건은 부결됐다. |
◇ 지주 회장 참호구축(셀프연임) 공감대‥주주 추천 후보 포함하는 방안
혁신위는 회장 후보의 자격요건에 대해 '금융업 관련 경험 5년 이상 등'을 신설해 무자격자 낙하산을 방지할 수 있는 금융회사별 내부규범 마련을 권고했다.
기존 회장(최고경영자)의 '참호구축'을 방지하기 위해 회장 후보 및 임추위 구성을 다양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윤 위원장은 참호구축을 "셀프연임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임추위가 회장이나 사외이사를 추천할 때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추천한 인재 풀(Pool)을 회장 및 사외이사 후보군에 포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상의 주주제안권을 활성화해 주주가 추천한 회장 및 사외이사 후보를 포함하는 것도 방안 중 하나로 제안했다.
혁신위는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적한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연임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며 결과적으로 힘을 실었다. 혁신보고서에서도 "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이 불공정하고 불투명하다"고 꼬집었다.
윤 위원장은 최근의 관치 논란에 대해선 "금융위나 금감원이 수행해야 하는 금융시장 안정, 금융산업 육성, 그를 위한 모니터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안 할 일을 하고, 할 일은 안 하는 게 문제이지,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을 굳이 관치라고 할 이유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어 "가까운 과거에도 그런 일(셀프연임)이 많이 일어났기에 재발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은 필요하지 않나 본다"고 덧붙였다.
은행법을 정비해 금융지주 회장의 자회사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도 견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행 은행법은 '은행의 대주주는 그 은행의 이익에 반하여 대주주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돼 있다. 이 때문에 대주주인 금융지주회사가 은행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면 제재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혁신위는 '대주주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를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혁신위가 이같은 권고를 한데는 지난 2015년 모 금융지주회장이 최순실 씨의 자금 유출을 도운 해외법인장 승진을 지시한 인사개입 사건이 발생한데 따른 것이다. 2010년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등과 관련한 신한사태, 막강한 권력에 비해 부당한 영향력에 대해 거의 제재를 받지 않았던 금융계 '4대 천왕' 문제도 이와 같은 사례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