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페이류 등장으로 신용카드 업계가 위태롭다는 얘기가 많다. 저렴한 가맹점 수수료와 편리한 결제 방식이 기존 신용카드를 위협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신용카드는 다른 결제수단과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혜택이 무기다. 특히 높은 연회비를 바탕으로 한 프리미엄급 카드의 경우 발급 자체가 혜택인 경우도 있다.
금융당국이 카드사들의 카드 수수료 인하와 마케팅 비용 축소를 요구하고 있는 요즘 프리미엄카드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 연회비 250만원 VVIP카드…핵심서비스는 비서업무
지난해 현대카드에서 내놓은 '더 블랙 에디션2'의 연회비는 250만원으로 국내 카드중 가장 비싸다.
연회비를 들고 찾아간다고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 블랙 에디션2'는 아예 발급 신청 과정이 없다. 현대카드가 먼저 초청한 사람들만 가입 대상이다. 초청을 받고 가입 의사를 밝혀도 바로 가입되지도 않는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포함된 8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하는 '더 블랙 커미티'라는 심의위원회에서 검토를 통해 만장일치로 최종 가입을 승인한다.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검증된 대한민국 0.05% 명사만이 초청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현대카드 설명이다.
더 블랙 에디션2처럼 연회비가 100만원이 넘는 카드는 업계에서 VVIP카드로 분류한다.
국내에 VVIP카드가 생기기 시작한건 2005년 현대카드가 연회비 100만원짜리 '블랙'을 내놓은 게 처음이다. 현재 '블랙'은 단종됐다.
연회비 250만원의 현대카드 '더 블랙 에디션2' 외에도 삼성카드의 '라움 오(RAUM O)'와 KB국민카드의 '탠텀(TANTUM)', 하나카드의 '클럽1(CLUB 1)'이 연회비 200만원의 VVIP카드다.
연회비 100만원대 VVIP카드로는 신한카드 '더 프리미어(The PREMIER)', KB국민카드 'BeV IX(베브 나인)', 롯데카드 '인피니트', 우리카드 '로얄블루1000' 등이 있다.
VVIP카드는 카드사가 먼저 연락을 하는 사람이 가입 대상이다. 억대의 연간 소득과 수십억원에 달하는 금융자산이 기본적인 발급조건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혜택도 자세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공개된 혜택을 정리해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일리지 혜택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며 1000원당 1마일 가량의 마일리지를 쌓아준다. 덤으로 항공권 업그레이드와 라운지 무료 등의 혜택이 추가된다.
백화점과 명품관, 면세점 등에서 바로 사용이 가능한 바우처도 제공된다. 제공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수십~수백만원대의 바우처가 제공된다고 한다. 현금처럼 쓸 수 있다보니 바우처 혜택만으로도 연회비의 상당 부분을 돌려받는 셈이다.
카드업계에서는 VVIP카드의 정체성이 단순한 금전적인 혜택이 아니라 컨시어지 서비스(concierge service·비서업무)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회원의 요구에 따라 여행 일정을 짜주거나 레스토랑과 공연의 예약을 대행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진행하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싶다면 카드사에 연락만 하면 여행일정과 티켓 예매, 숙박, 식사 등의 일정을 모두 제공해준다.
각종 혜택이 집중되니 비싼 연회비를 받으면서도 대부분의 VVIP카드는 적자를 낸다. 하지만 카드사는 VVIP카드 적자는 아깝지 않다는 입장이다. VVIP회원의 사용 금액이 워낙 크고 대부분 기업 소유주라서 법인 카드 영업에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적자는 보지만 긍정적인 효과가 크니 한때 삼성카드와 KB국민카드 등은 연회비 300만원의 VVIP카드 출시도 검토했었다. 하지만 출혈경쟁을 우려한 금융감독원의 제동으로 출시는 안됐다.
◇ 고연봉자라면 프리미엄카드
VVIP카드가 '그림의 떡'이라면 고소득자가 한번 노려볼만한 일반 프리미엄급 카드도 있다. 연회비 50만~70만원의 프리미엄카드다.
일반 프리미엄카드 시장도 현대카드가 열었다. 연회비 100만원의 '블랙'을 내놓은지 1년 뒤인 2007년 연회비 30만원(현재 60만원)의 '퍼플'(Purple)을 출시했다.
퍼플이 출시 3개월만에 회원수 2000명, 1인당 월평균 사용액 300만원을 돌파하자 다른 카드사들도 앞다퉈 프리미엄카드를 내놓았다.
현재 현대카드 퍼플 외에도 신한카드의 '더 에이스 블루 라벨(The ACE BLUE LABEL)'과 삼성카드의 '더 오(THE O)' 등이 연회비 5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카드다.
프리미엄카드는 대부분 연 소득과 금융자산 등의 발급조건이 있다. 대체로 연 소득 8000만원 이상이거나 금융자산 2억원 수준이면 발급심사를 받아볼 수 있다. 발급심사에 통과하면 각 카드사의 전용 배달사원이 직접 카드를 가져다 준다.
프리미엄카드도 VVIP카드와 마찬가지로 수십만원에 달하는 바우처를 제공하며, 동반자 무료 항공권과 항공 마일리지 적립, 호텔 무료 숙박 등의 혜택을 준다.
◇ 실속파라면 노려볼만한 매스티지카드
프리미엄카드보다 연회비는 저렴하면서도 혜택은 일반 신용카드보다 많은 매스티지(Masstige)급 카드는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카드다.
신용평가등급 7등급 이상이고 연소득이 있다면 발급심사를 받을 수 있다. 현대카드 레드카드(The Red Edition 3)는 대기업사원이거나 자본금 5억원 이상 기업의 대리 이상이어야 발급이 되며, 신한카드의 '클래식(Classic)'과 '베스트(Best)', 삼성카드의 '더 원(The 1)' 등은 연봉 3000만원 이상이 발급 조건이다.
연회비는 평균 20만원 이상으로 다소 높지만 바우처 혜택을 알뜰하게 받으면 연회비 이상의 혜택을 뽑아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10만원대의 바우처와 레스토랑·호텔·놀이공원 할인, 주유 할인 등의 혜택이 탑재됐다. 할인율과 적립률은 일반카드보다 높은 편이다.
일부 카드는 세계 1000여곳의 공항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가능한 PP카드(Priority Pass)를 발급해 주기도 한다. 이 혜택 때문에 예비신랑신부가 신혼여행을 대비해 많이 발급받는다.
◇ 체리피커·수수료 인하 등으로 혜택축소 압박
VVIP카드에서부터 매스티지카드까지 프리미엄카드는 다른 결제수단이 따라오기 힘든 수준의 혜택을 기본적으로 제공한다.
혜택이 많다 보니 일부 카드는 과도한 지출 끝에 단종이 되기도 한다. 혜택만 노리는 체리피커(cherry picker)의 주요 타깃이 되기도 한다. 체리피커의 사전적인 의미는 케이크 위에 올려져 있는 체리만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를 뜻한다.
올해초 단종된 KB국민카드의 '로블카드'가 대표적이다.
로블카드는 연회비 30만원에 대한항공 동남아항공권 1+1 혜택을 제공하면서 인기가 높았다. 동남아 발리행 대한항공 티켓 가격이 60만원대고 현지 호텔할인도 20만원까지 되면서 일명 '발리카드'라는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카드를 발급받은 뒤 발리여행 등에서 혜택만 뽑아 쓰고 정작 카드는 이용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적자폭이 커져 결국 단종됐다.
최근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알짜카드를 단종시키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카드사 임원들을 소집해 캐시백과 할인 등 일회성 마케팅을 축소할 것을 권고하면서 현재 누리는 카드 혜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당국은 카드사가 혜택을 줄여 민원이 발생하면 그것을 또 지적한다"며 "최근 카드사를 향한 전방위적인 압박은 소비자와 카드사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각종 혜택이 집중된 프리미엄카드는 회원이 기꺼이 회비를 감수하고 직접 선택하는 것"이라며 "각종 페이류가 등장하면서 카드사로서는 혜택을 강화하는 마케팅을 펼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