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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혁신]규제 장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 2019.04.30(화) 10:00

[창간 6주년 특별기획]
스타트업 "혁신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한국, 규제 부담 79위…샌드박스 성과 나올까
"규제혁신 제도 선진적인데 운영엔 관심없다"

혁신(革新). 묵은 제도나 관습, 조직이나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치열한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왔고,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공식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창간 6주년을 맞아 국내외 '혁신의 현장'을 찾아 나선 이유다. 산업의 변화부터 기업 내부의 작은 움직임까지 혁신의 영감을 주는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 그 시작은 '혁신의 실천'이다.[편집자]

김홍일 디캠프 센터장 : 혁신이란 무엇일까?
윤덕찬 지속가능발전소 대표 :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지난 11일 신한L타워에서 열린 '신한퓨처스랩 제2출범식'이 열리기 전 두 사람이 나눈 대화다. 2014년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지속가능발전소를 창업한 윤 대표는 "모든 규정은 타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막고 있는 사업에 도전)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산업에 기반을 둔 규제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4차산업혁명 시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의 모순점은 극복하겠다는 스타트업의 의지를 보인 것이다.

지속가능발전소는 여전히 '죽음의 계곡'(창업초기 생존을 위해 버텨야 하는 기간)을 건너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윤 대표는 "올해 유럽과 일본 은행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국내에선 규제 때문에 아직 시범 적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에 정부(금융위원회)에서 마련한 혁신금융서비스(샌드박스)에 신청했는데 우리처럼 작은 회사가 지정되면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혁신 속도 못 따라오는 규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국내에서 규제와 싸우고 있는 스타트업 등을 포함한 기업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작년말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140개국중 15위였다. 전체 경쟁력은 높지만 규제 부문만 떼어내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규제 개혁에 관한 법률적 구조의 효율성'은 57위, '정부 규제가 기업 활동에 초래하는 부담'은 79위다. 척박한 규제 환경 속에서도 '혁신기업의 성장'(37위), '창조적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기업'(35위) 순위는 비교적 높았다. 혁신의 속도에 규제가 따라오지 못하는 셈이다.

이는 국내 스타트업 성적표에 그대로 나타난다. 세계 100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세계 100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등에서 한국 기업은 찾을 수 없다.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는 '비바리퍼블리카(토스)'와 '데일리금융그룹' 2곳이 겨우 이름을 올렸다. 세계 100대 스타트업이 한국에 오면 규제 탓에 절반 이상이 범법자가 되는 것이 웃지 못할 현실이다.

정부와 국회도 규제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보통신융합법·산업융합촉진법·지역특구법·금융혁신법·행정규제법 등 규제혁신 5법이 모두 국회를 통과했다.

이를 기반으로 정부는 어린이가 마음껏 놀 수 있는 모래놀이터처럼 신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에 일정기간 규제를 면제해주는 샌드박스를 시행하고 있다. 또 되는 것 빼고 모두 규제하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안되는 것 빼고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원구환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규제 때문에 못 해 먹겠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게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경제는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이다. 정부가 어떻게 바뀌든 간에 우리가 끌고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법이 기술 개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규제혁신 5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돼 규제완화 특구나 샌드박스 등이 시행되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공무원 마인드 전환 필요"

문재인 정부가 규제개혁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4차산업혁명 시대에 규제개혁이 늦은 만큼 더 과감하고 정교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규제 전봇대를 뽑자던 이명박 정부, 손톱 밑 가시를 빼자던 박근혜 정부 등 한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규제개혁에 나섰지만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선진국은 일찌감치 규제총량제를 도입하며 규제를 규제하고 있다. 2010년 영국은 규제 1건을 도입하면 1건을 폐지하는 'One In, One Out'을 도입한 데 이어 2013년 부터는 'One In, Two Out'으로 규제 총량을 더 줄이고 있다. 미국도 2017년부터 1건의 규제를 도입할 때마다 2건을 폐지하겠다는 'Two for One' 룰(Rule)을 도입했다.

여러 부처가 옭아매고 있는 규제를 한번에 풀기도 쉽지 않다.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마트 모빌리티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전동 킥보드 등을 자전거 도로에서 무면허로 이용할 수 있게 규제를 풀기로 했지만 자전거도로를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도로교통법을 담당하는 경찰청·국토교통부, 제품을 소관하는 산업통산자원부 등 여러 부처가 얽혀있어 규제개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규제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진통도 커지고 있다. 택시와 카풀업계의 갈등은 택시기사 분신으로 번졌다. 이후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평일 아침과 저녁 2시간씩 카풀을 허용하는 대신 택시 기사 월급제를 도입하는 데 합의했지만 합의 직후 일부 택시업계가 합의안을 거부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한국행정연구원에서 발표한 '공유경제 유형에 따른 규제개혁대응 전략'을 보자. 이 보고서는 "개인간(P2P) 경제활동을 정부가 파악해 통제하고 강제하는 일은 공유경제 영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며 "미국이나 영국 등과 같이 '한국형 공유경제 규제개혁 지침서'를 서둘러 발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보다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는 얘기다.

한국이 카풀 도입조차 못하고 사회적 갈등만 키운 사이 다음달 상장하는 우버의 기업가치는 1000억달러(113조원)에 이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머지않아 자율주행차가 대중화되면 카풀과 택시 업자의 갈등은 의미조차 없어지는 상황이다. 장기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해법은 뭘까. 한국행정연구원의 이민호 규제연구센터 소장은 "(규제 혁신을 위한) 제도상 모자란 것은 없다"면서 "도입된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민호 규제연구센터 소장과의 일문일답

▲한국의 규제는 어느 정도 인가
-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 규제 수준이 높게 측정되고 있다. OECD 상품시장규제(PMR) 등 지수는 최상위권(규제 수준 높음)이다.

▲ 정부에서 과감하게 규제를 풀고 있다
- 규제개혁은 시장에 대한 시그널이다. 규제는 풀고 있는데 시장과 기업들은 진심일까 자꾸 의심한다. 규제 개혁 개수가 많다고 해서 잘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일관된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한쪽에서 기업이 볼 땐 반시장적·반기업적 정책을 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선 샌드박스 한다고 하면 진심을 느낄 수 있나. 공무원도 적극 동참해야 하는데 (현장에선) 여전히 실무적으로 가면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공무원 마인드 전환이 굉장히 중요하다.

▲ 정부가 규제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규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규제 정부 입증책임제도'가 전 부처로 확대되고 있다
- 입증책임제라는 것이 과거부터 계속해 왔던 거다. 1998년 규제개혁법을 만들면서 규제영향분석제를 도입했다. 그것이 입증책임제다. 20년 이상 우리가 해왔던 것인데 안 했던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입증책임제는 결국 공무원 마인드를 바꾸는 거다. 자발적인 규제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데 민간인 등으로 구성된 입증책임위원회를 구성해 그곳에서 소명하라고 한다. 아직도 1998년식 규제개혁을 계속 하는 것이다.

▲ 해법은
- 규제혁신 5법 등 제도상 모자란 것은 없다. 문제는 정작 제도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제도를 도입할 때 어떻게 잘 운영할지 큰 고민없이 언론을 통해 (새 제도 도입을) 계속 터트리고 있다. 제도 운영에는 검증 인력 운영 등으로 비용과 예산이 많이 드는데 이 분야에 돈을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재정사업의 단 몇 퍼센트만 제도 운영에 투자하면 되는데 제도만 도입하고 공무원보고 하라고 하니 공무원도 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제도가 운영될 수 있게 실질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네거티브 규제, 샌드박스 등 규제개혁 제도는 선진적인데 정작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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