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이죠 금융가를 뒤흔드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KB국민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카카오뱅크의 지분을 대량 매도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은행은 카카오뱅크 출범 이전부터 카카오뱅크가 자리 잡는데 묵묵한 내조를 해온 회사로 꼽힙니다. 카카오뱅크가 흑자전환 성공, 상장 그리고 출범 5주년을 맞이한 이때 지분을 매각한 속내는 무엇이었을까요.
설득력 떨어지는 KB국민은행의 설명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8일 KB국민은행은 장 마감 이후 그간 보유하고 있던 카카오뱅크 주식 3800만주중 1476만주를 주당 2만8704원에 블록딜 방식으로 매도했습니다. 가격은 주당 2만8704원으로 이날 종가 3만1200원보다 8% 낮은 수준입니다. 이번 블록딜을 통해 국민은행이 회수한 자금은 4200억원 가량입니다.
통상 블록딜이 이뤄질 때 7~8%가량 낮은 가격에 대량으로 주식이 매매가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 가격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왜 팔았는가'입니다.
KB국민은행의 설명은 원론적이지만 크게 공감을 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내부 자본관리의 효율화를 위해 카카오뱅크 지분 일부를 매각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내부자본관리의 효율화라는 건 은행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BIS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겠다라는 의미입니다. BIS자기자본비율이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BIS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위험자산을 자기자본으로 나눠 산출합니다.
다시말해 위험자산(연체가 시작 된 대출채권이 가장 대표적이겠네요)이 실제 부실화 됐을 때 은행이 이 여파를 막기 위해 금고에 돈을 얼마나 쌓아뒀는지를 의미하는 비율입니다.
따라서 BIS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위험성이 높은 대출 취급액을 줄이거나 자본을 늘려야 합니다. 따라서 KB국민은행은 카카오뱅크의 지분을 팔아 이를 자본으로 환입, BIS비율을 끌어올리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국민은행이 카카오뱅크의 지분 4200억원어치를 팔면서 까지 BIS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올해 2분기 기준 KB국민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은 17.4%입니다. 금융당국과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BIS비율 최소 권고치는 8%입니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BIS비율은 평균 15.52%입니다. KB국민은행만 따져놓고 보면 BIS자기자본비율이 결코 낮다고 보기 힘듭니다. 잘 관리가 되고 있는 것이죠.
최근 국내외 경제여건이 좋지 않으니 미리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이 역시 모두를 납득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앞으로의 경제상황을 예상해 스트레스테스트를 돌려 본 결과 국내 모든 은행은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BIS비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결과를 내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실적도 훌륭합니다. 올해 상반기까지 KB국민은행의 순익은 1조7264억원입니다. 지난해 상반기 1조4226억원보다 21%나 늘었습니다. 게다가 KB금융지주는 핵심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의 순익 성장세와 탄탄한 자본을 바탕으로 올해 중간배당까지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중간배당으로 푸는 돈 규모만 1984억원에 달합니다.
KB국민은행의 자본건전성 때문에 카카오뱅크의 지분을 매각했다는 말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더군다나 국민은행은 22일 티맵모빌리티와 전략적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유상증자에 참여, 2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카카오뱅크 지분 매각과 유사한 시기에 이뤄진 만큼 자본관리 목적이라는 설명보다 투자전략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원인은 정체기 접어든 카카오뱅크?
그렇다면 KB국민은행이 카카오뱅크로부터 발을 뺀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을 우선 얘기하자면 카카오뱅크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봤자 득이 될 것이 없었다고 판단한 셈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일단 KB국민은행은 카카오뱅크 출범 이전부터 카카오뱅크의 시장안착을 도와왔습니다. 모기업인 KB금융지주 차원에서 핵심 인력을 파견한 것부터 시작해 카카오뱅크가 체크카드를 발급할때에는 KB국민카드가 카드제조설비를 내어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줘 왔습니다. 심지어 카카오뱅크로 파견 나간 직원들은 KB금융지주에 복귀하지 않고 아예 카카오뱅크 직원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KB국민은행이 카카오뱅크의 주요 주주였기 때문입니다. KB국민은행은 이번 지분 매각 전 카카오뱅크의 지분 8%를 보유하고 있는 3대 주주였습니다. KB국민은행 입장에서는 카카오뱅크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분 보유를 통해 가까이서 지켜봐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주요 주주니만큼 은행권에 메기 역할을 한다던 카카오뱅크가 어떻게 성쟁해 나가는지 다른 은행에 비해 쉽게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요 최근 들어 카카오뱅크를 둘러싼 평가가 좋지 못합니다. 카카오뱅크가 강조하던 플랫폼으로서의 성장동력도, 은행으로서의 성장동력도 모두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증권가로부터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일단 카카오뱅크의 실적만 놓고 보면 출범 안정적으로 순익을 창출하고는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1238억원을 벌어들이면서 출범 이후 반기기준 최대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분기 성적표만 따로 놓고 보면 과연 이러한 성장세가 유지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올해 2분기 카카오뱅크의 순익은 57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 693억원과 비교해 12.3%나 빠졌거든요.
일단 카카오뱅크의 순익중 79%는 대출을 통한 이자수익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이자수익의 기본이 되는 카카오뱅크의 핵심 대출 자산인 가계신용대출은 취급액이 지난해 3분기 이후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올해 2분기 기준 카카오뱅크의 가계신용대출 잔액은 15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17조원을 찍은 이후 줄곧 내림세입니다.
이를 대응하기 위해 카카오뱅크는 주택담보대출, 아파트전월세대출 등을 내놓긴 했지만 최근 주택시장이 냉각기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예년만큼의 성장세를 보여주기는 힘들 것이란 얘기가 나옵니다. 즉 핵심 수익원인 이자이익의 증가세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카카오뱅크가 내세워 왔던 '플랫폼'으로의 역할은 잘 수행해 나가고 있을까요?
카카오뱅크는 은행들이 말하는 비이자이익을 '플랫폼 사업'이라고 분류해 여기서 나오는 순익을 따로 발표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플랫폼 사업은 △증권계좌개설 △연계대출 △제휴신용카드 △광고 등에서 나옵니다.
이렇게 플랫폼 사업을 따로 분류할 수 있는 데에는 카카오뱅크의 높은 월간활성화사용자수(MAU)에 기반합니다. 카카오뱅크는 MAU가 1542만명으로 '금융권 최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금융권에서 주기적으로 카카오뱅크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많으니 플랫폼 사업에서도 자연스럽게 순익이 늘어왔다면 카카오뱅크가 강조하는 '금융플랫폼'으로의 기업가치가 더욱 명확했을 겁니다.
그런데요 이 플랫폼 부분에서 나오는 순익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분기 플랫폼 사업에서 나오는 순익은 292억원이었는데요 지난해 4분기 235억원, 올해 1분기 253억원을 기록한 이후 올해 2분기에는 216억원으로 우하향 곡선을 그리는 모습입니다.
정리하자면 은행의 핵심 영역인 대출부분에서도, 카카오뱅크가 내세워 왔던 플랫폼 부분에서도 뚜렷한 성장의 정체기가 온 신호가 보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당장 시장의 객관적인 평가가 반영된다는 주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23일 종가기준 카카오뱅크의 주가는 2만7800원으로 마감했습니다. 종가 기준 최고가였던 지난해 8월 9만2000원의 3분의 1토막이 났고요 공모가 3만9000원보다도 28%나 빠졌습니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KB국민은행의 이번 지분 매각은 카카오뱅크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때는 금융권 혁신의 주인공이었지만 이제는 이를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점점 약해지는 모습입니다. 카카오뱅크가 빠른 시일 내에 또 다른 혁신을 시장에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