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는 원래 재량입니다."
지난주 우리금융지주의 동양·ABL생명 자회사 편입 조건부 승인과 관련, 금융위원회 재량권을 너무 넓게 발휘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 같이 답했다. 지난 7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다. 승인 허가 여부는 전적으로 금융위 선택에 달려있다는 의미다. 자본금 증액, 부실자산 정리 '등'을 통해 요건 충족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금융지주회사법 단서조항이 우리금융의 자회사 인수 승인에 결정적이었다.
금융위는 '등' 한 글자를 활용해 문언 해석 범위를 넓혔다. 경영개선계획 수립, 체질 개선 추진 등 비재무적 조치를 예외적 승인 요건으로 인정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예외적 승인을 위한 조문 확대 해석 여부에 대해서는 금융위의 심사와 판단, 해석을 거쳤다"며 "앞으로도 (자회사 인수) 허가 과정에서 이번 해석을 일관되게 적용할 것"이라고 특혜 논란을 일축했다.

금융위 인수 승인 배경은?
금융위는 우리금융이 제출한 개선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그 실태를 2027년말까지 반기별로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금융은 원칙상 자회사 인수가 제한되는 금감원 경영평가 3등급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나 인수 승인을 받아냈다. 금융권에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회사는 이른바 카드사태가 터진 2003년 3등급을 받은 상태에서 LG카드 자회사였던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을 편입한 전력이 있다.
금융위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 실패로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을 고려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수합병(M&A) 시장에 쌓여가는 보험사 매물을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금융당국이 동양·ABL생명 대주주인 다자보험의 지분 매각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위가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자칫 국제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금융위원장을 지낸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당국 내 인맥과 경력이 이번 승인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점도 배제할 수 없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보험 계열사가 없던 우리금융은 이번 인수를 계기로 비은행 부문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한국포스증권을 인수해 우리투자증권을 출범시킨 데 이어 이번에는 보험사까지 품으며 은행·증권·보험을 두루 갖춘 종합금융그룹 체제를 완성하게 됐다.

연임 가도 탄력…'정치' 최대 변수될 수
금융권 시선은 임 회장 연임 가도에 쏠린다. 그의 임기가 내년 3월까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 하반기부터 차기 회장 선출 절차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취임 일성으로 내건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 과제를 사실상 마무리한 만큼, 연임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우리금융의 경영 안정성과 연속성을 고려할 때 연임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내부에서는 외부 인사 연임을 지지하는 시각도 있다. 이 회사 내부 관계자는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등으로 내부통제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 근본적인 조직문화를 바꾸려면 차라리 외부인이 수장을 맡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이후 지난해 3월에서야 정부 지분을 모두 털어냈다. 하지만 장기간 정부 관리 아래 놓여있던 탓에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풍을 우선 고려하는 관행이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상업은행-한일은행 출신 간 계파갈등이 반복되며 조직 내 피로감도 상당하다.
관건은 정치적 변수다. 조기 대선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 금융권 수장 인사에도 적잖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사 회장 인선에도 물갈이 기용과 낙하산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다른 변수는 경영 성과다. 당장에 보험사 인수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우리금융 전체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임 회장이 금융위원장 출신이라는 점은 분명 강점이지만 관료 출신이 민간 금융사를 이끄는 데 대한 거부감이 여전하다"며 "부정적 여론이 재차 확산하면 낙마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