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올해 신입사원 채용부터 도입하려던 대학총장 추천제도를 전면 유보하기로 했다. 도입 취지와 달리 대학 서열화와 지역 차별 등 예상치 못했던 논란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서류전형 역시 유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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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은 28일 대학 총장추천제와 서류심사 도입을 골자로 하는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선안을 전면 유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은 "그동안 삼성 채용시험인 SSAT(삼성직무적성검사)에 연간 20만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고, 삼성 취업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과열 양상이 벌어지며 사회적 비용이 커졌다"라며 "이에 새로운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발표했지만 대학서열화, 지역차별 등 뜻하지 않았던 논란이 확산되면서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렀다"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그러나 삼성이 새로운 채용제를 도입하는데 계기가 됐던 문제들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 개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그 문제는 계속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올해 상반기 채용의 경우 작년 하반기 채용 방식 그대로 이어갈 계획이다.
이 사장은 "삼성은 학벌·지역·성별을 불문하고 전문성과 인성을 갖춘 인재를 선발한다는 '열린채용' 정신을 유지하면서 채용제도 개선안을 계속해서 연구, 검토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그룹은 지난 15일 대학총장 추천제를 포함하는 내용의 '신입사원 채용 개편안'을 발표했다. 핵심 골자는 전국 모든 대학 총장·학장에게 일정 기준에 따른 추천권을 할당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삼성그룹으로 지원자가 과도하게 집중되고, 취업을 위한 시험준비마저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등 인재선발 과정에 사회적 부담이 과중되기 때문에 이를 줄여보겠다는 취지다.
이후 삼성그룹은 총장 추천제에 따라 할당 인원을 각 대학에 전달했는데 할당 인원을 놓고 지역이나 전공 등에 따른 차별 논란이 일어났다. 특히 '삼성이 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성균관대에 가장 많은 추천권이 몰렸다'든지 '여대와 호남 지역은 상대적으로 추천권이 적다', '이공계 쏠림 현상이 지나치다' 등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삼성그룹은 총장 추천제를 둘러싼 오해가 많다며 진화에 나섰다. 성균관대에 추천권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선 "최근 입사한 신입사원 출신 대학을 조사해 입사 비율이 높은 학교 순서대로 추천 인원을 할당하다보니 산학협력 학과를 운영 중인 성균관대에 많이 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호남 차별 논란과 관련해선 "반도체와 휴대전화 업종 특성상 이공계 수요가 많은데 경북대, 부산대 등 영남 지역 대학들이 상대적으로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같은 이공계 관련 학과를 특화시켜 많은 졸업생을 삼성에 입사시켜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폭풍은 거세게 일어났다. 4년제 대학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은 내달 5일 정기총회에서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안건으로 올려 공동 대처하기로 했다. 전남대 등 호남 지역 대학들도 대학 차원의 대책 마련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자 삼성도 당황하는 모습이다. 삼성그룹은 결국 총장추천제를 발표한 지 2주도 안돼 "전면유보" 방침을 꺼내들었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은 "(파장이) 이렇게까지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라며 "당초 추천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이 아닌 지원자의 희생정신, 인성 등 우리가 찾지 못하는 부분을 학교에서 찾아서 추천해 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