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에 전운이 감돈다. 최근 다양한 인수합병이 단행되면서 반도체 기업간 이합집산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변화가 주로 시스템반도체 기업 위주로 이뤄지면서 메모리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정부차원에서 메모리반도체 육성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중장기적인 위협요인으로 지목된다. 반도체 패권을 놓고 벌이는 나라별 각축전을 살펴본다. [편집자]
한국 기업들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전체 반도체시장을 보면 여전히 미국 기업들이 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메모리시장에 비해 3~4배 정도 규모가 큰 시스템반도체를 장악한 미국 기업들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에 의해 메모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일본은 도시바 정도를 제외하곤 반도체 시장에서 눈에 띄게 퇴조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미국 기업들이 강자지만 시스템반도체 특성상 다양한 사업분야에서 생존을 위한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올들어 업계 1위인 인텔 등을 포함해 대규모 인수합병이 이뤄지는 등 반도체 업계의 판도 변화도 예고되고 있다.
◇ 여전히 강한 미국, 사라진 일본
지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인텔을 제외하고 반도체산업에서 가장 약진한 것은 일본기업이었다. 1995년 기준 세계 10대 반도체기업 순위를 보면 인텔이 1위를 차지했지만 NEC와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미쓰비시 등 무려 5개의 일본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D램이 주력이던 일본 기업들은 삼성전자 등 한국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서서히 퇴조하기 시작한다. 10년 정도 시간이 지난 2006년 순위에 이름을 남긴 일본기업은 도시바와 르네사스 정도였다.
르네사스는 2003년 히타치와 미쓰비시 반도체부문이 통합하며 만들어졌고, 이후 2010년 NEC일렉트로닉스도 합병하게 된다. 하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3년 정부기관이 매수하게 된다.
역시 D램을 생산하던 엘피다 역시 2013년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된다. 그 결과 2013년이후 상위 반도체 기업 명단에는 일본기업은 도시바만이 남게 됐다. 도시바 역시 이 기간중 경영난에 시달리며 최근 회계부정 이슈가 불거지기도 했다.
반면 인텔이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온 미국은 시스템반도체 영역을 위주로 계속 성장해 왔다. 최근 순위에서 통신칩을 만드는 퀄컴이 부상했고, 마이크론,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도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 반도체시장 국가별 점유율 추이 |
반도체 시장의 국가별 점유율을 보면 이같은 현상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미국은 지난 2011년 이후 줄곧 전체 반도체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유지해왔다. 메모리반도체에 특화된 한국의 점유율은 10% 초반대에서 중반대로 늘어난 반면 일본의 점유율은 지난 2005년 23.4%에서 지난해 11.6%까지 하락했다. 그 결과 지난해 반도체 점유율 2위 자리를 한국에 내줬다.
◇ '커져야 산다'..합종연횡 본격화
이처럼 미국기업 주도의 반도체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도 생기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대규모 인수합병이 성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인 아바고 테크놀러지는 지난 5월 미국 통신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을 37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한화로 무려 40조원 규모의 거래다.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장비 등 통신용 반도체가 주력인 브로드컴을 인수한 아바고는 단숨에 세계 반도체 순위 10위권에 진입했다.
아바고는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주목받고 있다. 브로드컴 외에 지난해 LSI를 66억달러에 사들이는 등 2013년 이후 6개사를 인수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 경쟁이 치열해지며 포트폴리오 확대와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차원이란 해석이다.
PC산업 침체로 성장잠재력이 둔화되고 있는 인텔이 자일링스에 이어 FPGA 분야 세계 2위 업체인 알테라 인수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점유율 차이가 2%내외로 좁혀졌던 인텔은 이번 합병을 통해 다시 1위 자리를 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