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작년 2월 '포스코 Investors Forum'에서 순익 2조원 달성을 '공언(公言)'했다. 당시는 포스코가 고강도 구조조정을 막 시작한 때였다. 그런만큼 권 회장은 순익 2조원 달성에 자신이 있었다. 구조조정이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2조원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올해 '포스코 Investors Forum'에서 권 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창사 이래 첫 순손실을 입은 것에 대해 그는 투자자와 주주들에게 사과했다. 업황 부진과 자회사의 실적 부진으로 포스코의 작년 실적은 무너졌다. 순익 2조원 달성을 공언했던 권 회장의 외침은 1년여 만에 '공언(空言)'이 됐다.
◇ 어디서 무너졌나
포스코는 작년 연결기준으로 960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처음이다. 포스코의 순손실 기록은 업계와 시장에 충격이었다. 포스코는 국내 대표 철강사다. 해외에서도 품질과 기술력에서 인정 받는 기업이다. 그런 포스코가 포스코가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은 그만큼 철강 업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코가 작년 순손실을 기록한 것은 대규모 평가 손실과 함께 자회사의 실적 저조 때문이다. 포스코는 작년 원료가격 하락과 환율 상승 등의 영향으로 총 1조6000억원 가량의 평가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실적에 반영했다. 비록 직접적인 현금 지출이 없는 평가손실이지만 장부상에는 표기해야 한다.
평가손실에는 자산손상과 외환손실이 포함된다. 세부적으로는 자산손상이 866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원료가격 하락에 따른 투자광산의 감액이 3780억원, 주가 하락에 따른 영업권 및 투자 주식 감액이 2520억원, 업황 부진으로 유휴설비 매각에서 발생한 감액이 2360억원이었다.
외환 손실은 총 6980억원이었다. 중국 위안화와 브라질 헤알화, 인도 루피화 등의 달러대비 환율이 상승하면서 손실폭이 커졌다. 중국에서는 외환 손실로 1150억원, 브라질은 2930억원, 인도 등에서는 138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달러-원 환율 상승으로도 총 152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자산손상과 외환손실 등 평가손실액만 1조5640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평가손실 6450억원 보다 두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여기에 일본의 신일철주금과의 합의금 2990억원, 차입금에 대한 순이자비용 5790억원, 법인세비용 등 3350억원 등이 포함됐다. 이영훈 포스코 재무투자본부장은 "작년 자산손상 중 원료 광산 투자에 대한 감액 손실이 가장 컸다"며 "올해도 원료 가격이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이지만 광산에 대한 감액 손실은 작년에 모두 처리해 올해 추가적인 감액은 없다"고 밝혔다.
◇ 재무구조 개선은 긍정적
포스코는 작년 사상 첫 순손실 기록에도 불구 재무건전성이 좋아진 것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시그널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철강 본원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개별 기준 실적에서는 상당히 좋은 실적을 거뒀다. 제품 가격 하락에도 불구,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를 앞세워 작년 사상 최다 판매를 기록한 것은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포스코는 작년 총 3533만7000톤을 판매했다. 이중 고부가가치 제품인 월드프리미엄(WP) 제품의 판매 비중은 38.4%였다. 이는 전년대비 5.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에 따라 개별기준 영업이익률은 8.7%를 기록하는 등 전년대비 수익성이 좋아졌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개별기준 순차입금은 지난 2014년 4조1840억원에서 작년 3620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부채비율도 지난 2014년 23.8%에서 작년 19.3%로 줄어들었다. 연결기준으로는 영업이익률이 전년대비 0.8%포인트 떨어진 4.1%를 기록했지만 재무구조상의 부채비율은 88.2%에서 78.4%로 줄었다. 순차입금도 지난 2014년 22조2310억원에서 작년 16조5490억원으로 감소했다.
포스코가 여러가지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수익성을 방어하고 재무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인 덕분으로 보인다. 특히 솔루션 마케팅을 통한 제품 판매량이 지난 2014년 130만2000톤에서 작년 242만톤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320만톤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WP 제품 판매 비중도 올해는 48.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포스코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꼽히는 부실 계열사 구조조정도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생각이다. 포스코는 작년 계열사 34개사, 자산 12건 등 총 46건의 구조조정을 완료한 상태다. 포스코는 오는 2017년까지 총 95개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 할 계획이다. 이미 38개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끝낸 상태다. 올해는 35개사, 내년에는 22개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항 예정이다.
최정우 포스코 가치경영실장은 "오는 2017년까지 95개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끝나면 총 5000억원 가량의 이익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올해 업황 부진 지속 등을 감안해 보수적인 목표를 세웠다. 개별기준 매출액은 전년대비 5% 감소한 24조3000억원, 연결기준으로는 전년과 거의 동일한 58조7000억으로 잡았다. 대신 순차임금은 연결기준 전년대비 1조9000억원 줄어든 14조6000억원으로 책정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계속하겠다는 생각이다.
◇ 낙관과 비관이 공존
시장에서는 이번 포스코의 순손실 기록에 대해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미 예상했던 바인데다 생각보다 포스코의 순손실 규모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철강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중국의 제품 가격 인상이 시작됐다는 점은 포스코에게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또 포스코의 부실 계열사 정리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제품 가격 상승에 따른 포스코의 이익 가시성이 높아졌다는 점도 포스코에게는 호재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포스코는 최근 대형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열연코일 가격을 약 2만~3만원 가량 인상했다. 유통시장에서도 포스코의 가격 인상에 대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는 향후 추가적인 제품 가격 인상을 시도할만한 기반을 다졌다고 볼 수 있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철강산업의 구조조정에 대한 기대감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작년 12월부터 상승한 중국내수 철강재 가격은 포스코의 1분기 평균판매가격을 전기대비 개선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개선된 평균판매가격은 오는 2분기와 3분기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시장에서는 포스코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비등하다. 낙관론자들은 최근 중국 철강업체들의 가격 인상 움직임에 따라 포스코도 가격 인상이 가능한 조건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제품가격 상승으로 중국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포스코의 사업 구조가 대부분 상품 시장과 연동돼있어 시황이 회복되지 않는 한 의미있는 회복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
하지만 긍정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철강업체들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이를 통해 중국 철강업체들 중 흑자를 내는 곳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은 경계해야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 업체들이 흑자를 내기 시작하면 다시 생산을 늘려 공급과잉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제품 가격의 추가적인 인상은 요원해진다.
또 포스코가 다양한 자회사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익 구조는 사실상 국제 상품 시장에 대부분 연동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작년 연결 실적이 좋지 않았던 것도 국내외 철강 사업부분, 대우인터내셔널의 가스전과 철강 유통업, 포스코건설의 수주, 포스코 에너지의 수익, 해외 투자광산 자산 가치 등이 모두 상품 가격과 연동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상품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달러 강세까지 발생해 외화환산손실도 증가했고 철강과 사이클을 같이 하는 업체들의 주식을 보유해 주식 손실도 컸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전승훈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제 상품 가격의 반등만이 포스코의 실적과 주가를 견인할 수 있다"며 "시황은 하반기 이후에나 회복이 시작될 수 있을 전망인 만큼 좀 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