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삼성 2·28 쇄신]①미래전략실 58년 영욕

  • 2017.02.28(화) 17:39

‘컨트롤타워’로서 적잖은 성과에도 불구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목 공중분해 비운

‘재계의 청와대’로 불렸던 삼성의 ‘심장’ 미래전략실이 ‘최순실 게이트’라는 격랑을 만나 60년에 가까운 영욕(榮辱)의 세월을 마감했다. 삼성의 컨트롤타워로서 재계 1위 삼성의 성장과 함께 해왔던 미전실은 적잖은 성과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목되면서 공중분해라는 비운을 맞았다.

미전실 해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 때 한 공언을 지키키 위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6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에 관해 많은 의혹과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선대 회장께서 만들었고, 회장께서 유지해온 것이라 조심스럽지만 국민이나 의원들의 부정적 인식이 있다면 없애겠다.”고 밝힌 바 있다.

 


◇ 1970~80년대 ‘최고 권부’로 부상

미전실은 1959년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 시절 회장 비서실에서 출발했다. 초기만 하더라도 삼성물산 과(課) 단위의 총수 보좌 참모조직이었지만 1970~1980년대 급속한 사세 팽창과 맞물려 규모와 역할 면에서 이 창업주 시절의 명실상부한 삼성 최고 권부(權府)로 자리잡았다.

반면 1987년 11월 이건희 회장이 부친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경영 대권을 물려받고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로는 기존 15개팀 250여명이던 조직이 10개팀 130여명 규모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이 회장이 계열사 자율경영을 중시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맞아 계열 구조조정이 재계의 현안이던 시절, 화려하게 부상했다. 계열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98년 4월 ‘구조조정본부’로 이름이 바꾼 것. 이 시기 구조본의 위상은 ‘재계의 청와대’, ‘삼성의 심장’ 등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다.

◇ 특검과의 악연

하지만 구조본은 2006년 3월 ‘전략기획실’로 문패를 갈았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 사건은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삼성그룹이 특정 후보에게 대선 자금을 불법적으로 지원하기로 공모한 내용 등이 담긴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불법 도청 테이프가 폭로된 사건이다.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인해 삼성은 2006년 2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공식 사과하고,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를 포함한 총 8000억원의 사회 헌납을 발표했다. 후속 조치로 1실 5팀 체제의 구조조정본부를 법무·감사 업무를 없앤 3팀 체제의 전략기획실로 바꾸고 인원도 150여명에서 100여명으로 33% 감축했다.

하지만 전략기획실 조직 또한 얼마가지 않아 위기를 맞았다.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 차명계좌 50억 비자금’ 폭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특검 때문이다. 특검 수사 결과 2008년 4월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이건희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퇴진했고, 경영쇄신안에 따라 전략기획실 또한 그 해 6월 완전 해체됐다. 

50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가 했던 전략기획실이 부활한 것은 2년 뒤인 2010년. 특검에 기소된 이건희 회장은 2009년 8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1100억원을 최종 선고받았지만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2월 단독 특별사면됐다. 이를 계기로 2010년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일선 복귀, 전략기획실도 2년 6개월만인 2010년 12월 ‘미래전략실’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 삼성 경영 ‘3대 축’의 공과(功過)

이병철 창업주의 비서실로 출발했던 미래전략실은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 현판만 달리했을 뿐 큰 역할은 그대로 유지됐다. 중장기 성장전략, 각 계열사들의 사업이나 인수합병(M&A) 대한 조율, 계열사 감사, 기획, 법무 등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현안들을 조율해왔다. 특히 다른 그룹과 달리 사장단·임원에 대한 인사권을 쥐고 있어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다.

현 미전실은 최지성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을 중심으로 전략팀, 기획팀, 인사지원팀, 법무팀, 커뮤니케이션팀, 경영진단팀, 금융일류화지원팀 등 7개 팀 편제로 운용돼 왔다. 소속 인원만 해도 계열사에서 파견된 ‘정예요원’으로 250여명에 달한다.

삼성의 성장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의 결정과 미래전략실의 기획, 각 계열사의 실행능력 은 이른바 삼성 경영의 ‘3대 축’으로 불려왔다. 이 회장의 경영도 미래전략실을 통해 꽃을 피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구조본 시절에는 삼성전자 중심의 제조와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부문이란 그룹의 양대 사업 축을 확고히 다지는 성과를 올렸다.

아울러 이재용 부회장 3세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미전실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됐다. 2001년 3월 이 부회장이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뛰어든 이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 ‘멘토’, ‘가정교사’로도 불리는 최지성 부회장을 중심으로 3세 승계를 안착시키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2014년 5월 10일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후로는 이 부회장을 도와 ‘위기의 삼성’을 이끌고 있는 주역이기도 했다. 2015년 9월 옛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와 옛 삼성물산 합병은 공식적인 3세 출범 시기를 보다 앞당겼다.

다른 한편으로 미전실은 구조본 시절의 정치자금 제공, 전략기획실 시절의 비자금 사건 등으로 인해 정부와 삼성의 창구 역할을 해왔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부인할 수 없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 및 최순실 씨 모녀 승마 지원을 주도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그룹 총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조직으로 쇄신 대상으로 지목받아온 이유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댓글 보기 )